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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14. 2016

신영복 "관계에서 답을 찾아라"

<담론> 출간 기념 인터뷰

신영복 교수의 2014년 하반기 강의 녹취록과 강의 노트를 저본으로 만든 책 <담론>은 동양고전들을 오늘날의 과제와 연결시켜 현대 사회를 읽어내는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0년의 수형생활 중 느끼고 깨달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됐다.


과거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성돼 20년 간 복역한 신영복 선생은 출소 이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의 저서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 성찰, 역사와 사회 현실, 세계 인식에 대한 깊은 사유로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번 <담론>에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존재론을 뛰어 넘는 관계론과 역사를 바라보는 탈근대적 인식,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주체성에 대해 언급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화려한 영상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게 포획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잃어간다.

이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누군가 저한테 어제 뭐하셨냐고 물어봤어요. 한참을 생각하다 ‘아, 속눈썹으로 무지개를 만들었습니다.’ 라고 했어요(웃음). 저는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을 굉장히 잘 보내요. 주체성을 가지려면 아무것도 안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하면서도 담담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신영복 선생. <담론>의 출판 간담회 현장에서 들려준 책과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근대사회의 대안이 될 담론 '관계론'


Q 이번 책에서 관계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생각해왔던 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 관계론이에요. 감옥에서 고전 공부 외에도 사람공부를 했는데, 그런 공부들을 하면서 늘 화두로 떠올랐던 것이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었어요. 소위 말하는 서양근대사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인 존재론을 뛰어넘는 대안적인 새로운 담론의 핵심이 관계론이라고 구상을 하게 되었어요.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인데, 자본(資本)의 ‘자(資)’ 자에 자신을 증식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는 자기를 증식하고 개인의 존재성을 강화해 나가는 논리가 내재돼 있는데요, 이것이 근대사회의 문제점이 되고 있거든요.

이런 사유로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담론을 관계론으로, 강의의 키워드를 ‘관계’라고 말한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관계라는 것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세계인식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인간적인 관계를 뜻하는데요. 이는 관계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는 논리로 단순한 인간관계를 뛰어넘는 본질적인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관계 조직’이라는 말을 했고요.

Q 소재가 동양고전인데 전통적인 가치가 아니라 탈근대적인 가치를 발견하셨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는 고전 공부를 실증주의적인 독법으로 하는 것은 반대해요. 역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역사에서’ 공부한다고 하잖아요. 역사뿐 아니라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인데 이런 관점으로 고전을 볼 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현재의 문제의식을 갖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근대사회에 대한 대안담론의 문제의식을 갖고 고전을 봤어요. 특히 관계론적인 담론이 풍부하게 담겨있는 부분에 주목하게 되고, 그걸 중심으로 고전 독법을 만들게 되었어요. 

Q 요즘은 공부는 많이 하지만 정보를 얻는 차원 외에 자기 생각을 찾는 공부는 아닙니다. 공부의 순서가 ‘머리-가슴-발’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공부의 방법인가요?

순서이자 방법입니다. 언젠가 서울대학교에서 특강을 했는데, 교수 패널 한 분이 “인류 역사는 발에서 가슴, 머리로 발전해왔는데 선생님은 왜 반대로 얘기하느냐”고 했어요. 맞아요. 원시사회에서 발로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이 정서적인 것으로 가슴, 나중에는 머리로 발전해 왔어요. 하지만 저는 세계 운동이라는 것은 Overdetermination(중층결정) 즉, 이쪽 화살표도 있고 저쪽 화살표도 있고, 여러 개의 화살표가 여러 방향에서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반드시 역사가 발에서부터 머리로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중간에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죠.

특히 ‘머리-가슴-발’의 순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소위 근대사회의 주체라는 것이 자기의 주체적인 주체가 아니잖아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포섭 기제가 엄청난 힘과 정교성을 가지고 개인을 포획하기 때문에 오히려 머리로부터 탈문맥하는 것이 근대사회를 뛰어넘는 가장 출발점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책도 대학교 교수들이 하는 강의 형식을 많이 무너뜨렸어요. 처음부터 “일단 계몽주의 프레임을 깨트리자”고 했죠. 계몽주의라는 것은 낡은 프레임이에요. 노인 권력이라고 보면 되죠. 학교 강의도 마찬가지에요. “학생들이 갖고 있는 ‘강의’라는 프레임도 깨자”고 했어요. 학생들은 뭔가 정답이 있어 야해요.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형태의 지식 외에는 소화하거나 발견하지 못하죠. 그래서 책에서도 어떤 데는 익숙한 논리적인 형식이 있는가 하면, 어떤 데는 조금 애매한 시(詩) 적인 서술 형태도 있고, 아니면 소설처럼 이야기로만 말하는 부분도 들어가 있기도 해요. 우리들의 사유를 책 전체로써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자녀들 일에도 일체 관여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은 제가 학교 선생이기도 하고 경험이 많아서 자녀 교육에 굉장히 많이 관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에요. 아내와 논의를 했어요. 늦게 낳은 아이기 때문에 나이들 때까지 봐줄 수 없으니까 일찌감치 자기가 다 발견하고 컨트롤할 수 있게 하자고요. 그랬더니 훨씬 잘해요. 50년 후에 살아갈 아이를 우리 부부의 50년 전의 생각으로 컨트롤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Q 계몽주의 멘토에 반대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갇히지 말라는 뜻이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고전은 읽어야죠.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책은 멀리서 찾아온 벗입니다’라는 말도 써놓았어요. 멘토에 갇히면 안 되고 다시 뛰어넘어야 해요. 책에도 썼지만, 저자는 끊임없이 죽고 독자는 부단히 탄생해요. 그런 방식으로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은 저자에게 불손해도 돼요. 왜냐면 독자와 저자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페이지 글을 저는 한 달 동안 썼잖아요. 그런데 독자는 2~3분 만에 읽어요. 독자들은 저자가 굉장한 사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고, 반대로 저자는 은근히 그것을 숨기면서도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과시하는 게 있어요. 독자는 대단히 불손해도 돼요. 그런 차원에서 이런 계몽주의적인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 깨트리라고 말하는 거예요. 

Q 선생님께서는 개인이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주체성을 먼저 회복해야 해요. 물론 우리가 사표(師表)가 있으면 좋지요. 사람의 형태로 배우는 게 제일 쉽잖아요. 그러나 한 사람에게 전인격적인 게 다 들어있는 경우는 없잖아요. 다 들어있으면 좋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늘 주장하지만 당대 사회는 사표가 없어요. 충무공 이순신도 당시에는 죄인이었죠. 지금은 그 시절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그 시대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이고 위로잖아요. 하지만 그 시대에는 사표가 아니었어요. 당대 사회에는 적대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용납되지가 않아요. 시대가 지나가고 역사적으로 조명하면 ‘아, 옳았구나’하는 것을 알죠. 그만큼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게 어렵습니다.


<담론>을 쓰면서...


Q 강의를 마친 소감은 어떠신가요?


강의가 사실은 참 중요해요. 영화배우와 연극배우의 차이가 있거든요. 영화배우는 조명, 세팅, 음향 담당들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라 현장성이 떨어지는데 비해 연극은 관객들과 그 자리에서 호흡하잖아요. 마찬가지로 글 쓰는 게 영화배우의 정서라면 강의는 연극배우들이 ‘없이는 못 사는’ 그런 생동감의 현장 경험이 있는 게 사실이죠. 강의를 하는 동안에 일정한 사고의 발전도 있어요. 서로 교감하는 동안 불분명했던 것이 구체화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강의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강의를 하지 않으면 강의를 대신할 만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갖는 것도 필요하고요. 아마 강의했을 때 느꼈던 특유의 경험들이 그리워서 교실이 아닌 다른 형태의 만남이나 담론의 장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해요. 될 수 있으면 안 만들고 쉬려고 하지만. (웃음)


Q 원래 책을 안 내려고 하셨다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웃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요. 일단은 자기 생각을 다 담을 수 있는 책을 만든다는 게 참 어려워요. 이번에 이 책도 쓰면서 제가 자기 검열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되는지 그런 고민을 했고요. 그리고 자기 책이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이유로 ‘파인딩 포레스터’라는 영화에서 작가가 절필했잖아요. 그런 이유도 있고요. 


Q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교도소에서 쓴 글이어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고 하셨고, 그래서 독자를 만나면 부담스럽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번 <담론>에는 선생님의 솔직한 글을 쓰려고 한 것인가요?


이번에 비교적 많이 넣어두었어요. 예화도 그렇고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짧은 엽서 글이라면 그 글과 행간에는 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누구를 만나고, 생각하고, 받았던 충격을 정리한 것도 있고요. <담론>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글을 교재로 해서 쓴 것이 6편 정도 있어요. 글이 쓰인 배경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했고요. 2부가 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다 담지 못 했던 여러 가지 일화들을 많이 담았어요.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의 심경과 상황 등을 많이 포함했어요. 


Q 자기 생각을 다 담을 수 있는 책을 만든다는 게 어렵다고 하셨고 그래서 책을 안 내려고 했다고도 하셨는데요. 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관계를 대단히 중요시하는 사람. 그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자기를 부단히 재조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게 미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 속에서 계속해서 조직, 구성되고 있는 거예요. 만나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신영복 선생에게 시대적 질문을 묻다 


Q 오늘날 인문학이 주목 받는 이유와 현대사회에 필요한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가 200~300년 동안 근대사회를 살아오는 동안 그야말로 그림자를 초월해야 될 정도의 질주를 해왔잖아요. 인문학이라는 것이 이 과정에서 생긴 반성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농담이지만 인문학 강의는 병석에 누어있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 많이 시키고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톨스토이가 묻듯이 과연 빵은 얼마만큼 필요한지, 우리는 왜 사는지, 이런 대단히 중요한 질문들을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감옥에 오랫동안 계셨기 때문에 수형인(受形人)으로서의 감각을 생각하게 됩니다. 출소 후에도 그런 감각을 놓치지 않고 내가 포획되는 지배담론이나 작용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이 그런 것을 깨닫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오랜 수형기간 때문에 바깥에 나와서도 자유에 대한 감각이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걸 한번 깨달아서 득도하는 경우는 없어요. 감옥에 안 간 사람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죠. 책에 미셸 푸코 얘기한 부분이 있죠? 푸코가 말한 감옥에 대한 정의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어요. 감옥이라는 건 우리가 알기에는 범죄자들을 격리하는 윤리적인 시설로 주로 규정을 하잖아요. 


<감시와 처벌>을 보면 푸코는 감옥을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인 공간’으로 표현해요. 우리가 스스로 갇히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Q 지금 일어나는 일들도 후에는 역사적인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지금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역사적인 관점으로 현재를 본다는 게 참 어려워요. 지난 다음에 보면 잘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언젠가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 ‘이 시대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분 할 것인가?’ 라는 관점이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에 어떻게 포획되어 있는지 알아야 해요. 우리가 접하는 외신도 전부 미국 중심의 통신들이 주는 것만 듣잖아요. 리영희 선생이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외신들이 주는 것에서 구별되는 세계정세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역사를 얘기하고, 역사적인 관점으로 현대를 본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런 노력을 해야죠. 그러려면 우리가 갇혀있는 문맥에서 탈문맥해야 한다고 봅니다. 


Q 항상 깨어있고 주체적이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혹시 타인이 가치 있게 판단해 주고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로서도 완벽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면 근대 사회가 자유를 획득했지만, 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교회나 특정 신부들보다도 더 엄청난 신(GOD)이라는 포획 기제 속에 자기를 통째로 헌납하잖아요. 과연 나 자신의 자유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신감과 전투성이 없는 경우에는 자기를 다른 어떤 것에 복속시키게 돼요. 노예의 길로 다시 가는 거죠. 그게 반드시 중세적인 신이 아니라고 해도 신을 대체하는 여러 형태의 근대 사회 가치들이 많이 있잖아요. 좋은 직장, 패션 이런 것들이 그렇죠. 이것들과 구별되는 ‘나’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고, 있다면 그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회적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굉장히 복잡한 의문에 싸이게 될 거예요. 그 점에서 나는 철저하게 사회화할 필요도 없고, 철저하게 개인화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일정하게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소위 말하는 신이라는 엄청난 대상에 자기를 노예의 길로 복속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게 있거든요. 그 중간에서 어떻게 자기를 주체화할 것이며, 그것과의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대개는 자기 철학을 가져야 한다느니 개성시대라느니 아주 어중간한 교조적인 답변 밖에 안 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자기가 어느 정도 고민해야 해요. 고민하고, 방황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것들을 서서히 만들어가는 거죠. 


Q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행복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은 아니잖아요(웃음). 행복이란 것도 생명 논리로 들어간다면 DNA가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일단 생명의 본질은 죽는 것은 아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선 자기가 행복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겠죠. 단순히 행복하다는 것이 자신의 생존으로 국한해선 안 돼요. 삶이 행복하기 위해선 자기희생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해요.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에 필요한데, 이것도 관계가 주는 거죠. 분명히 개체 사이에 단절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끈끈한 사회성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껴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야겠죠. 



[추모전] 우리 시대의 참스승 故신영복


[작가인터뷰] 신영복 “관계에서 답을 찾아라”(2015.4.27)


[북콘서트 스케치] 신영복,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담론’을 꺼내 들다(201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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