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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12. 2016

직장 밖은 지옥? 이영롱이 전하는 '사표'의 이유



직장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하나 간직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노동인지 착취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직장생활에 ‘이게 사는 것인가’ 회의를 느끼지만, 사표를 집어던지며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상상만 할 뿐 정말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대신 온갖 힐링이 붙은 자기계발서에서 위안을 얻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직장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면서도 직장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직장 밖은 더한 지옥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회학 연구자 이영롱이 쓴 <사표의 이유> 속에는 피로하지만 안정된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빠져 나온 11명의 직장인이 있다. 고소득 전문직종의 엘리트 직장인부터 ‘열정’노동자까지 그들이 ‘적극적 낙오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직장 밖으로 탈출한 그들은 정말 더한 지옥에서 살고 있을까? 혹은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을까?

11명의 고민은 ‘유별난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직장인, 그리고 직장인이 되고 싶은 청년들의 고민과도 일치한다. 이 책이 노동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저자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유령’을 대면할 가능성을 ‘더 깊이 협력할 능력’에서 찾고 있다.


Q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책을 쓰셨는데, 청년노동 문제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 때부터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 대안적 활동, 주류 밖에 있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처음 논문의 주제는 지금과 달랐어요.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청년세대들의 삶, 거처를 옮긴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데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직장을 중심으로 거처도 정해지잖아요. 일하는 공간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또 제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게 다운시프트(downshift)인데요, 현재의 삶에서 하차해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다룰 때, 이들이 왜 나오게 됐는지 물으려면 그 현장이 어땠는지 살피는 것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논문 주제가 노동으로 좁혀졌죠.


Q 다운시프트가 무엇을 의미하나요? 


2010년 즈음에 제주도로 이주, 귀농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다운시프트라는 용어를 많이 썼어요. 줄리엣 쇼어(juliet schor)라는 미국 사회학자가 ‘돈을 적게 벌더라도 시간과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을 설명하면서 이 용어를 소개했는데, 생산성과 속도 중심 사회에서 속도 대신에 다른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쉬울 것 같아요. 나의 시간, 나의 가치관에 중점을 두는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사람을 다운시프터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 개념이 한국에서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난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야’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평범함이 뭘까 들여다보면 너무 얻기 어려운 것들이에요.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들이 높잖아요. 그래서 그 평범함이 어디로부터 왔나, 정말 평범한 것이 맞나, 우리 스스로에게 또 사회에 물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Q 세대론에 대한 책이 아닌데도 세대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나요?


세대에 대한 프레임이 전혀 없었는데, 필연적으로 30, 40대를 만나게 됐어요. 참여자를 선정할 때 기준이 있었는데, 몇 년간 회사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그중 하나였거든요. 인터뷰하면서 참여자들의 지금 삶이 예전의 경험과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특히 90년대라는 시공간이 그때 10대 청소년기부터 20대 청년기를 보낸 참여자들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줬다는 걸 알게 됐죠. 물론 세대론으로 한 사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신세대라는 특수한 정체성이 참여자들을 이해하는 한 축이 됐어요.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참여자들의 20대는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이 있던 때이고 그런 사회, 정치, 문화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단계가 있었어요. 그런 공통적인 요소가 있었고, 그게 90년대 신세대의 특성이었어요.





11명의 직장인이 ’적극적 낙오자’가 되기로 한 까닭


Q 11명의 인터뷰 참여자를 만나셨는데, 인터뷰 전에 예상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인터뷰 전에는 참여자들의 삶의 전환에 대해 그저, 무조건 이전보다 행복하고 전혀 다른 대안적 삶일 거라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복잡하기도 하고 어긋나는 지점들이 많았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참여자들은 재사회화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됐고, 거기서 오는 혼란이나 심적 어려움이 있는 거죠. 그런데 저는 예전 삶, 그리고 그 다음만 생각했어요. 중간이 없었던 거죠.

삶의 전환이나 변화라는 게 깨끗하게 마무리되고 매끈하게 이어지지 않잖아요. 새로운 선택 앞에 늘 새로운 갈등이 있고, 그런 어려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매끈한 얘기를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위험한 것 같아요. 그럼 삭제되고 주변화 되는 이야기가 반드시 생기잖아요. 매끈하지 않아도 그 과정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연구 참여자를 고소득 전문직종과 열정노동으로 구분하셨는데, 두 직종으로 구분한 이유가 있나요?


참여자들은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창의와 문화 산업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언뜻 보기에도 두 공간은 다른 가치와 슬로건이 지배하는 공간이잖아요. 같은 틀로 보면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었어요. 직종이 갖는 지배적인 회사 성격이나 특성을 나눠서 보면 노동현장의 경험이 명확하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분했는데, 결국은 합쳐지더라고요. 다르게 보이긴 하지만 어느 직종이 됐건 현재의 노동공간은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지배적인 경제체제 아래에서 공간의 분리마저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죠.

특히 문화산업 노동자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회사에 들어갔거든요. 지금은 ‘열정’이 우스꽝스러운 말이 돼버렸지만 실은 좋은 가치잖아요. 그런데 그런 순수한 열정과 자기 동기로 선택한 직종조차도 대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절망스러워요.


Q 한 참여자가 직장인인 자신을 ‘쥐’에 비유한 게 충격적이었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그분은 자신의 직장에서의 삶을 ‘미저러블(miserable)’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했어요. 여러 가지 압박과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죠. 일단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없고요. 자신이나 주변관계를 생각할 수 없는 여유가 없는 거죠. 그런데다 성과 스트레스나 언제 잘릴지 모르는 스트레스가 겹쳐진 거죠. 저도 그분 얘기가 인상적이었는데, 회사에 있을 때 자신은 쥐의 상태였고 어떻게 해야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하셨는데, 실은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몰랐던 거죠. 하루하루 모면하고 사는 게 일상이 된 지 십 년이 넘었는데, 가슴 뛰는 삶을 잊고 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Q 11명의 참여자들이 회사를 그만둔 공통적인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첫 번째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참여자들은 그런 자기성찰에서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건 윤리적인 고민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이에요. 회사를 정거장이라고 여기게 되는 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미 회사에서 나를 떠날 사람으로 여기도록 종용하니까 그런 거예요. 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두 번째는 저는 ‘반자본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데, 요즘은 경쟁력, 성과, 능력을 반드시 돈과 직결시키잖아요. 누군가를 밟아야만 하는 초경쟁사회에서 경쟁력을 담보하지 않은 노동자라는 걸 스스로 아는 사람들인 거죠. 이 게임을 하고 싶지도 않고 승산도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자기뿐 아니라 우리를...’ 협동 통해 다른 삶과 노동 만들어"


Q 사표를 내고 ‘전환’한 뒤에 주로 비영리단체나 협동조합으로 옮긴 분들이 많아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먼저 고민의 내용들이 구조에 대한 고민일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회사만의 문제라기보다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 거죠. 회사를 나온 건 이 게임을 안 하겠다는 건데, 그럼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때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길이 비영리단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회사에서는 회사님과 주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잖아요.(웃음) 자기 행복에 대한 고민도 하지만 사회 안에서 자기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하거든요. 그게 가능한 게 비영리단체나 협동조합인 것 같고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그런 사회적 의미를 일로써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게 협동조합이니까, 자연스러운 경로라고 생각해요.


Q 위에서 사표를 쓰기 전의 삶과 후의 삶을 단절해서 생각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래도 참여자들이 새로운 삶에 만족하는지 궁금해요. 


인터뷰가 2013년에 기반하고 있어서 후속 인터뷰를 통해 후기를 같이 넣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 인터뷰가 특별한 딱 11명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중의 어떤 상태에 대한 포착이기를 바랐어요. 이후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선택이 삶의 한 과정이었고 앞으로도 진행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실패와 성공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전한 삶의 형태를 지금은 알 수 없더라도 삶에 대한 이상이 구체화 되고 정교화 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의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연구 초기 단계에 가정한 삶의 모습이 어쩌면 환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것 아니면 저것, 이거 끝나면 드라마틱한 새로운 것을 기대하잖아요. 상상한 것보다 조금 더 진부하고 기대와 어긋나는 지점들이 연구과정에 발견되지만, 그게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를테면 성공가도를 달리는 삶이 아닌 다른 ‘좋은 삶’을 고민하는데, 이때 ‘좋음’이 단일한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행복할 수 있고 좋을 수 있는 삶이 생각보다 다양할 수 있고, 또 화려하지 않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능력 아닐까 생각해요.


Q 그럼에도 다른 삶은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그건 ‘협동과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마무리를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선택하게 되는 모든 삶이 대안적 삶으로 불릴 순 없을 거예요. 사업을 할 수도 있고, 협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고 여러 경로가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이전의 경쟁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삶을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 의문에서 ‘협동’의 가치를 발견했는데요, 지금의 삶에서 즐거움, 자본화 되지 않은 생산력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분들의 공통점이 ‘협동’이었던 거예요.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과 노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거죠. ‘자기’뿐 아니라 새로운 ‘우리’를 상상하고 고민해온 사람들이 협동을 통해 길을 찾는 것을 보고 저도 많이 배웠어요.


Q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었으면 하시나요? 그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두 직종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다른 직종의 노동자도 비슷한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고민을 하는 분과도 읽고 싶고요. 물론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참여자들조차도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던졌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과거의 그 참여자들처럼 살기를 바라잖아요. 좋은 회사 다닌다는 얘기를 듣는 게 꿈이 돼버렸는데, 그 꿈이 과연 평범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가, 더 나아가서 삶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잃는 것보다 많은가,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지금도 많고 앞으로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청년세대들과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회사를 그만둔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렇다면 회사 안에서는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그런 고민을 저도 하게 돼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지만 적자생존 경쟁구조에서 동료라고 느낄 만한 연결고리가 다 끊겼죠. 이런 구조 안에서 그 고리를 어떻게 이을 것인지도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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