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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07. 2016

'아재파탈' 영화평론가 최광희, 문제적 감독들을 만나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 중에 제법 흔하게 쓰이는 것이 바로 '아재'다. 중년의 남성을 일컫는 말인 아재는 때에 따라 '꽃중년'으로 통하기도 하고, 막무가내의 '꼰대'로 불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 둘을 가루는 결정적 한 방은 바로 소통방식에 있지 않을까.

까칠한 독설로 유명한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나이로만 따지면 아재임이 틀림없지만 고집불통 꼰대와는 거리가 먼, 조금 특별한 아재였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꺼내놓으면서도 촌스러운 면모나 권위적인 자세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는 영화판의 이야기를 진솔한 대화로 이끌어가며 말이 좀 통하는 '아재파탈'의 매력을 여실히 뽐냈다. 

평론가는 태생적으로 누군가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비평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이에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모든 이들과 친하지 않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름난 감독들에게도 박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판에 입문한 지 올해로 16년째. 거침없는 비평으로 인해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 하나 없다지만, 오히려 이런 그에게서 강인한 직업적 신념과 투철한 소신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평론가 최광희가 쓴 <천만 관객의 비밀>(책비/ 2016년)은 수많은 영화의 흥행 성패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그가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의 비밀을 파헤친 책이다. 단순히 흥행 영화를 분석한 비평서라고 생각하면 오해. 천만 명을 사로잡은 영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그에 얽힌 제작과정, 흥행 감독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분모, 그들이 가진 흥행비결을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감독 이준익('왕의 남자', '동주'), 윤제균('해운대', '국제시장'), 최동훈('도둑들', '암살'), 양우석('변호인'), 우민호('내부자들') 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이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조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짚었다.

<천만 관객의 비밀>은 삼성그룹의 직장인 대상 교육콘텐츠 전문 기업 '멀티캠퍼스'와 손을 잡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조직생활의 미덕을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재미있게 전달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비롯됐다.

이에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을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인터넷 강의와 함께 책을 펴냈다. 책의 큰 갈래인 '열정', '협업', '공감'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라고 할 정도로 뻔한 소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광희는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는지 흥행영화의 사례를 통해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영화 제작 과정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

"인터뷰를 할 7명의 감독은 철저히 제가 선정했어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감독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는데 다들 흔쾌히 응해줘서 감사했죠. 그중에서도 가장 의외였던 분은 윤제균 감독이었는데요. 지금껏 나온 그의 작품 중에서 제가 좋다고 평가한 것이 '1번가의 기적' 정도였고, 대체로 '후지다', '너무 얄팍하다', '우익영화 같다'고 평했거든요. 그분한테 빚을 진 것도 아닌데 괜히 찔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전화번호를 어디서 얻기는 했는데 당최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꼭 해야겠다 싶어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는데 곧바로 전화가 왔어요.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제 상황을 이해한다면서, 차별화된 자기 신념으로 평가하는 게 비평가의 본분 아니겠냐고 하더군요. 참 감사했죠. 최동훈 감독은 인터뷰를 잘 안 하는 분인데요. 꼭 만나고 싶어서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분께 먼저 연락을 취했어요. 그랬더니 바로 이튿날 연락이 와서 흔쾌히 하겠다고 답변을 주시더라고요."

<천만 관객의 비밀>이 차별화된 점은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이 영화 관계자나 영화 애호가가 아닌 일반 직장인이라는 점이다. 흥행 영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내용을 다룬 비평서도, 영화 산업만을 다룬 경제 분야의 서적도 아니다. 직장인의 자기계발서를 표방하면서 흥행 감독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균형 있게 제시하고, 직장인들이 자신의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화제작 과정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기획과 제작, 유통의 과정이 일반 기업에서 제품 하나를 만들어 파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누가 촬영을 하고 누가 주연을 맡을지 인적 자산을 배분하는 과정도 일반 기업의 인사과정과 흡사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원활히 협업해야 한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그는 영화산업이 훨씬 더 첨예하고 민감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조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판단했다. 

그는 특히 현장에서의 모든 사항을 진두지휘하는 감독의 자리를 통해 우리 사회 리더의 역할을 되짚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에 소개된 감독들은 모두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수평적 연대를 통해 리더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이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감독들은 일종의 모범 사례에 속하는데,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감독이 제왕으로 군림하는 문화가 팽배했다고. 그는 19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감독들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도태된 이유를 당시의 현장 문화를 버리지 못한 데서 찾았다. 

"최근에는 드물지만, 감독이 폭행하는 경우도 있어요. 모 감독은 폭행하기로 유명해서 충무로에서는 아무도 영화제작의 기회를 주지 않았죠. 그런데 최근 외국의 제작사가 이 감독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새로이 기회를 줬는데 결국은 흥행이 됐어요. 뭐 사실 이런 예는 극단적인 경우고요. 흥행 타율이 높은 감독 대부분은 수평적 연대의식에 근거해 비권위적인 방식의 소통을 중요시하죠.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잘 쓰면서도 현장에서 배우나 스텝들을 잘 이끌어가는 리더의 역할을 동시에 잘하는 감독은 아주 드물어요.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감독들은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분들이죠. 어떠한 분야든 혼자서만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없다고 봐요. 예술 분야라 할지라도 협업을 해야 할 때가 분명 있잖아요. 협업은 공동체 내부의 공감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고요.

이준익 감독은 자신을 스태프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이 최대한 즐겁게 흘러가도록 노력하죠. 보통의 감독이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 데 반해 이준익 감독은 첫 장면에서 바로 좋다고 해요. 대충 찍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계속해서 신뢰의 느낌을 주면 배우든 스태프든 다들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준익 감독은 굉장히 여우 같은 사람이죠."


취재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아재파탈' 영화평론가 최광희, 문제적 감독들을 만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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