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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07. 2016

솔직하고 지질하고 신랄하다... 서른 살의 남자사람

배우 박정민 작가인터뷰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생각, 심지어는 말투까지도. 배우 박정민을 영화 '파수꾼'의 백희준, '전설의 주먹'의 어린 임덕규, '동주'의 송몽규, 드라마 '안투라지'의 이호진으로 알게 됐다면, 그의 첫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인간 박정민을 이해시켜줄 새로운 물꼬를 터준다.

<쓸 만한 인간>(상상출판, 2016)은 그가 지난 2013년부터 매거진 <topclass>에 매달 연재했던 칼럼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를 모은 책이다. 그 속에는 힙합을 좋아하고 야구에 열광하며 짝사랑에 아파했던 소년이 있고, 누군가와 척을 지지 못하는 성격 탓에 감춰둔 감정을 연기로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한 배우가 있다. 하고 싶은 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남들의 뜻대로는 살아가기 싫은 반골 기질의 청년은 또 어떤가. 솔직하고 때로는 지질하며 신랄한 서른 살의 남자 사람 박정민의 일상이 독백처럼 이어진다.

시시콜콜한 일상과 실없는 농담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 내기를 주저않는 모습은 그의 독백을 오래 곱씹어봐야 할 이유가 돼준다. 청춘들의 능력을 간단하게 가격 매겨지는 바코드쯤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116쪽)나 유기동물에 대한 당부(152쪽) 등,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문제들도 외면하지 않는다.

짧다면 짧은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매번 몇 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자기 검열을 거친다는 그의 신중한 성격은 인터뷰에서도 오롯이 드러났다. 데뷔 6년 차의 배우로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기도 했고, 타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말할 때면 그 시절의 소년처럼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어쩐지 정작 인터뷰가 끝난 후에 그가 더욱 궁금해졌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나, 그리고 또래의 또 다른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발 담그는 척하는 놈' 되지 않으려 여기까지 왔다"

Q 글이 굉장히 금방 금방 읽혀요. 반면 쓰는 입장에서는 고민이 좀 될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면 격을 갖춰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잖아요.

쉽게 읽히도록 쓰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제가 작가도 아니고 엄청난 고찰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뽐내면서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아마 초반에 썼던 글과 최근의 글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좀 느끼실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 와중에 초반에 추구했던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을 해서 몇 장 안 되는 글인데도 탈고하기까지 꽤 오래 걸려요.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이거 아닌 것 같아'하고 두세 번은 쓰다가 지워버리기를 반복하고. 매번 그런 강박을 느껴서 처음에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을 하죠.

Q 아무래도 산문집이다 보니 사생활에 대한 글이 대부분인데, 배우라는 직업을 고려했을 때 부담이 되는 부분은 없었을까 싶더라고요. 소속사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될 정도의 사생활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거고요. 오히려 배우가 아니라 글만 쓰는 사람이라면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더 풍부해지겠지만 배우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가 연기를 할 때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입장은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다'라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더러 있는데, 사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내가 너무 많은 걸 보여준 건 아닌가. 과연 이 사람들이 내 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런데 뭐 걱정은 걱정이고… 금방 잊었어요. 이야기한 것들이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니까요. 회사에서는 제 글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그냥 저를 믿어주세요. 오늘 여기 혼자 온 이유도 "글에 관련된 것은 제가 알아서 하겠다"라고 말씀을 드렸기 때문이고요. 매니저도 그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정민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있어서 믿어주는 것도 매니저의 일인 것 같다"라고. 고마웠어요. 

Q 글이 한 편씩 끝날 때마다 긍정적인 문구 하나씩을 남겨두었어요. '다 잘 될 거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저는 이게 정민씨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이 책도 굉장히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잘될 거라고 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느낌이었어요. 그 짧은 문장에 힘을 얻는 분들도 더러 계시니까 더 신경을 쓰려고 한 것도 있죠.

Q 그런 의미에서 후반부에 나왔던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이 말은 조금 더 특별했어요.

'마이너리그(220쪽)'편에 실렸던 문장일 거예요. 당시 '동주'라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던 때였는데 홍보도 하러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던 때거든요. "주류에 편승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멋지다"라는 말과 "널 좋아한다고 하면 나까지 마이너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얘기들을 그맘때쯤에 들었어요. 사실 되게 웃으면서 진행됐던 얘기였는데, 그 말을 듣고 집에 갔을 때 뭔가 '훅' 밀려오더라고요. 내가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쳐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지어 회사나 우리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작아지더라고요.

배우는 마이너한 감성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놓지 말아야 된다고 봐요. 저도 마이너한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더 깊고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마이너한 감성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알리고 싶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고요. 하지만 상업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한이 돼 있고, 그 메이저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서 저 역시 담금질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생각할 거리가 굉장히 많아지더라고요. 그때 참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던 와중이라 그런 글을 썼나 봐요. 그래서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으면 제가 약간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요.(웃음)

Q 부정적인 편이라고 하셨는데 현실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상황이나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타입은 아닌가 봐요.

네, 아예 아니에요.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을 하려는 게, 결과가 나쁘면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에 대비를 할 수가 있는 거고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면 기대를 안 하는 상황에서 기분이 두 배로 좋으니까요. 이 습관이 언제부터 생겼냐 하면 중학교 때 시험기간이었어요. 첫 날 시험 본 과목을 가채점 했는데 다 100점이 나왔어요. 그런데 집에 가서는 엄마에게 다 80점밖에 못 맞았다고 말을 했어요. 혹시나 남은 과목에서 점수가 낮게 나오면 평균이 내려갈 수도 있으니까. 혼나기 싫어서 최악의 상황을 미리 준비하는 거예요. 설레발을 치지 않으려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잘 된 건 잘된 다음에 이야기하고 싶어요.
 
Q 이런 신중한 성격이 득이 될 때도 독이 될 때도 있겠어요.

사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연기하기 어려워질 때도 있거든요. 이 성격이 예전에는 정말 싫었어요. 배우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배우는 충동적이어야 하고 술도 잘 마셔야 한다고 생각해서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던 적도 있는데, 본성은 어디 가지 않더라고요.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제가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할 줄도 알게 되고. 이제는 이 성격이 좋아졌어요. 카메라 앞에 서면 연출자와 동료 배우를 믿고 가면 되지만 작품 준비를 할 때는 이 성격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겁이 많으니까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고.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 타인의 삶 인터뷰 해보고 싶다"

Q 정민씨에게 여러모로 계기가 되어준 분들과의 일화가 나오잖아요. 배우 박원상씨(72쪽)도 계시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면접 때 만났던 김성수 감독(54쪽)도 그렇고요. 극단원 시절에 함께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가 뜬금없이 쓴 소리 하셨던 극단 형(14쪽)도 그렇고.

네.(웃음) 그분은 제가 극단에 있을 때 제일 무서워했던 형인데, 지금은 극단 형들 중에서 제일 잘 지내요. (기자 : 본인이 했던 그 한마디가 정민씨에게 그만큼의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알까요?) 모를걸요. 제가 얘기를 안 했어요. 갑자기 포스터 달다가 "너 같은 놈 많이 봤어. 발 좀 담그는 척 하다가 다 없어져." 그 말을 하더라고요. 뭔가 아니꼬았겠죠. 영화 한다는 애가 와서 뭐 좀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하는 게. 그 말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나요.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 들었겠지만 오기가 생겼고 그냥 치기 어린 생각이 아니기를 바랐어요. 그때는 그 '영화 하는 애'라는 게 저의 콤플렉스였기 때문에 굉장히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난 발 좀 담그는 척 하려다가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계속 생각을 한 덕분에 10년 동안 끈질기게 뭐라도 하려고 노력해온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가 한다고 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Q 굉장히 신중한 만큼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는 성격인가 봐요.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단 한 번도 제 선택에 대해서 갈등하거나 고민을 했던 적이 없거든요. 하고 싶으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든 생각이 뭐냐 하면 정말 용기 있던 사람은 저희 아버지였다는 생각이 확 드는 거예요. 당시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한예종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때 이걸 허락해주셨으니까. 

정말 많이 반대하셨거든요. 쓰러지시기까지 했어요. 한예종에 합격하고 "저 이 학교 다니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저에게 딱 한 번 물어보셨어요. "전에 다니던 학교 다니면 안 되겠니?" "아니요. 저는 이 학교 다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너 알아서 해라." 이 한마디가 사실 얼마나 용기 있는 말이에요. 아마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셨겠죠. 얘가 이미 이걸 너무 하고 싶어한다는 걸. 그 순간에는 내 용기는 없었고 부모님의 용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최근 들어 들더라고요.

Q 인터뷰어가 된 에피소드(176쪽)도 있어요. 매번 인터뷰이의 입장이었을 텐데, 인터뷰어가 된 경험은 어땠나요?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고충까지는 아니지만 기자님들이 질문을 준비하실 때의 기분을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작품 인터뷰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똑같은 질문들 있잖아요. "이 영화는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이런 질문은 안 할 수가 없구나, 기자를 탓할 수가 없구나 생각했죠. 그분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질문이니까요. 가장 무난하면서도 정확한 질문인 거죠. 그 와중에도 새로운 질문들을 하고 싶은 욕구도 생겼고.
 
Q 책에는 장난스럽게 표현된 부분들이 있지만, 인터뷰를 직접 진행해도 참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보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외국 책 중에 <빨간 의자>라고 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의자에 앉혀놓고 인터뷰를 한 책이 있거든요. 영화나 드라마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저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으니까요. 

만약에 제가 농부라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를 해야 해요. 그런데 농부가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거든요. 길거리의 잡초 하나도 저의 시선과 농부의 시선은 완전히 다르겠죠.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농부의 첫 사랑은 어땠을지. 중소기업을 차린 대표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온전히 다 알지 못하잖아요. 제 나름대로 기획을 해서 진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대신 인터뷰어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숨기고. 인터뷰를 읽는 사람에게 편견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솔직하고 지질하고 신랄하다... 서른 살의 남자사람 '배우 박정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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