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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21. 2016

 "고착화된 언론 상황... 그래도 계속 싸운다"

'웹툰 해고' 권성민 PD 작가 인터뷰

                             

권성민 MBC 예능 PD는 그날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2014년 4월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어요. 당시 MBC의 상황이 조금 답답하기도 해서 많은 분들께 왜 MBC에서 좋은 보도가 나갈 수 없는지 상황을 설명해드리고 싶었어요. 참사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을 쓰게 됐죠."

2014년 5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MBC의 세월호 관련 보도 행태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그는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 제작 업무와는 무관한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발령을 받고 자신의 처지를 '유배'에 비유한 웹툰을 SNS에 올렸다가 2015년 1월 해고되었다. 그리고 2016년 5월, 법원은 회사의 정직 6개월과 해고 처분에 대하여 모두 무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듀엣가요제'의 AD(assistant director)로 제작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그동안 틈틈이 써왔던 글을 모아 에세이집 <살아갑니다>(오마이북, 2016)도 출간했다. 불확실한 많은 것들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을 위한 일종의 ‘응원가’다. 이 책에는 권성민 PD가 해고 기간 동안 한국프로듀서연합회에서 운영하는 'PD저널'에 기고했던 글도 절반 정도 실려 있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과 밖에서 목도한 우리 사회의 면면들이 예리하게 포착되어 있다. 

11월 12일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던 집회 현장에서 'MBC' 로고를 떼어낸 채로 취재를 해야 했다는 MBC 기자들의 소식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MBC 기자협회장은 사내 게시판에 반성문을 게재했고, 기자들 역시 연달아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문득 권성민 PD의 말이 떠올랐다. "현재 MBC에 남아서 버티는 사람들은 MBC가 원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여전히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직 6개월, 해고 그리고 복직… 그 시간을 기록하다

Q 공정 언론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오늘(10월 31일) 오후에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검찰 출두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는데요. 세 군데의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JTBC, YTN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현재 국민들의 신뢰도가 반영된, 언론 매체의 현주소를 설명하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상황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보도국이 지금의 모습이 된 건 2012년도에 있었던 170일 파업 이후인데, 사실상 회사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대부분의 직원들이 비제작 부서로 발령이 난 뒤에 새로운 기자들을 많이 뽑았거든요. 많은 현장 경험이 있는 기자들이 취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직원들도 현 상황을 많이 답답해하고 있죠. 기자들 중에서는 단순히 '특종을 MBC에서 전하지 못 했다'라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저 자리에서 보도를 조금만 더 제대로 했다면…' 하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보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분들은 대부분 현재 보도국 내에 있지 않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비제작 부서로 발령이 났거나, 노동조합 집행부에 계시거나, 해고가 되셨어요. 최근 영화 ‘자백’을 작업했던 최승호 선배(현 뉴스타파 PD)도 그중 한 명이고요. 그분들은 대학교에서 공정 언론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노동조합 집행부에 계시는 등 회사 바깥에 있더라도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계세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까 지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공영방송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든지, 저희 보도를 감시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계속 만들고 있어요.

Q 'MBC 보도'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안팎으로 체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안타깝기도 해요.

아무래도 예전에는 MBC가 그런 보도들을 앞장서서 해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더더욱 비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권력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더 컸을 것 같고요. 현재 MBC에 남아서 버티는 분들은 MBC가 원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Q 해고 기간 동안의 일이나 당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상세히 나와 있는데요. 그 시간이 오히려 PD님께는 여러 의미로 전환의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배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연차의 후배가 본인들이 나눠가져야 하는 부담을 혼자 떠안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회사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정직-해고 기간이 개인적으로는 복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복직 판결을 받고 회사에 돌아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기고했던 글에 해고 기간에 만난 좋은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뉴스타파에 있던 분들도 마찬가지고, 밖에서 싸우고 계신 선배들도 마찬가지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나 다른 언론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나 관계자분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중요한 것을 이뤄가려는 어른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을 허튼 데 쓰지 않고 잘 쓸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주변에 좋은 선배들이 계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사회 곳곳의 문제들을 인식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알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굉장히 적극적이시더라고요. PD가 되기 이전부터 지인들과 콘텐츠를 만들어 국제 구호활동에도 참여하셨고요.

우물을 판 적도 있었고, 도서관을 지어준 적도 있었는데 사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에겐 좋은 환경이 있었어요. 살면서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거나 삶의 방향성을 갖는 것에 있어서 특별한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항상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라마틱한 하나의 사건이 있기보다는 한 사람을 둘러싼 환경에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생각을 해요. 

책에 '비디오 가게' 이야기를 썼는데 어린 시절에 그곳에서 만난 소위 '사회에서 천대받는 분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저도 편견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희 역시 약자의 입장이었고요. 부모님도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들을 저에게 늘 보여주셨고 또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런 부분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고요. 

결정적으로 국제 구호활동들이 PD에 합격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면접 때도 관련 질문들을 받았었고요.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시간을 안 쓰고 이런 활동에 시간을 쓴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낭비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목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구나, 어떤 양분이 됐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까 여러모로 감사했죠. 

Q PD님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PD 공채 시험 당시의 합격수기가 그대로 게시되어있더라고요. 저도 잘 읽어보고 왔습니다.(웃음) 이 과정들을 상세히 공개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을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스펙을 쌓는 일이나 대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있는 애들을 보면 대외 활동이며 스펙이며 ‘좋은 뜻으로’ 정말 화려했어요. 그 친구들과 나를 비교를 해보니 뭐 아무것도 없는 거죠.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PD부문에 지원을 하게 됐는데, 이력서에 쓸 게 하나도 없어서 허겁지겁 토익도 보고 그랬죠. 

그때 '내가 너무 순진했나.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개인적으로 초조한 마음이 많이 들었었는데 MBC 면접 때 한 단계씩 합격을 할 때마다 큰 위안이 됐어요.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 틀린 일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합격 후기를 썼던 이유는 저와 같은 아이들 때문이었어요. 자신이 몰두하는 것,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는 아이들에게 격려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당시의 과정을 상세하게 적었던 건데 그렇게 많이 읽을 줄 몰랐어요.(웃음) 

Q 대학교에 강의를 나간 일화들도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가까이서 본 ‘요즘 친구들’은 PD님의 학창시절과 많이 달랐나요? 

잘 알고 지내는 교수님이 부탁을 하셔서 모교 1학년들 상대로 직업이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기회가 있었어요. 사실 아이들과 코드도 안 맞고 괜히 ‘노땅’ 취급 받는 거 아닌가 싶어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는데(웃음) 다시 가서 얘기를 해보니 여전히 고민은 비슷하더라고요. 애들은 여전히 애들이에요. 가끔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애들이 변했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향유하는 문화 같은 것들은 조금 달라졌을 수 있지만.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웹툰 해고' 권성민PD "고착화된 언론상황...그래도 계속 싸운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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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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