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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23. 2016

"최순실을 '아녀자'로 비판, 여성혐오 작동한 것"

정희진 작가인터뷰

                

(사진 제공 : 정희진)

"저는 페미니즘이 일종의 인식론,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환경, 평화학, 여성학은 좁은 의미로 정의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나 여성은 개념이 없습니다. 경합하는 과정 자체가 평화학, 여성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학자, 평화학자인 정희진이 정의한 ‘페미니즘’이다. 그녀가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시론이나 영화․책에 대한 글에는 어김없이 여성주의적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자극적 주제를 다루거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지만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다. 강렬한 호응 반대편에는 그만큼 강렬한 비판이 있다. 정희진은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논쟁적인 학자 중 하나다. 그녀가 2005년에 펴낸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은 한국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불린다. 


정희진이 15년 전에 쓴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하나의문화, 2001년)는 고통스러운 가정폭력을 정면에서 다룬 책이다. 이 책이 지난 10월 말 <아주 친밀한 폭력>(교양인, 2016년)이라는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보통, 가정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단위이며, 최후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가정이 가부장제 사회의 성 차별 의식과 성별 권력 관계를 구현하고 학습하는 사회적, 정치적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나온 지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하루 평균 약 700건(2015년 기준, 경찰청 통계)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될 정도로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문화계 성폭력' 이슈로 한창 뜨겁던 지난 11월 초 저자와 이메일을 통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정판 <아주 친밀한 폭력>에 대해 또 사회 곳곳에서 불거진 '미소지니(misogyny,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 현상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정성스러운 답변을 보내주었다. 



"남성은 인간, 여성은 여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부장제" 


Q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폭로가 연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몇몇 문인들은 사과하고, 책 발간을 미룬 일도 있었는데요. 이 상황을 어떻게 지켜보셨는지요? 


너무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동시에 "이제서/야 말할 수 있다"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피해 자체는 물론 자신의 진로 자체를 바꾸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을 생각해보세요. 문화예술계는 폭력이나 성폭력을 '풍류'나 자신들만의 커뮤니티 문화로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그 내용도 밝히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황당한 내용이 많습니다. 


Q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과실에 대해서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저잣거리 아녀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으로 조롱을 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남성은 인간이고, 여성은 여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부장제 사회죠. 그야말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여자인, 제2의 성이라고 여겨집니다. 분명 여성혐오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현실 비판에 젠더 메타포(성별 은유)나 동물에 대한 비하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서브 컬쳐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적절치 않죠. 저는 글을 쓸 때, 제가 비판하는 사람도 반드시 공식 명칭을 붙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 이런 식으로요. 


"문화계 성폭력 이제야 말할 수 있는 현실 안타깝다" 


Q <아주 친밀한 폭력>은 2001년에 나온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의 개정판입니다. 15년이 흐른 지금 초판이 나왔을 때보다 세상은 어느 정도 바뀌었다고 보십니까? 


한국사회는 하루하루가 다르지요. 그러나 아내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내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의 매트릭스[母型]로, 거의 몰(沒)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변화가 적습니다. 그 점이 젠더 문제 중에서 ‘아내폭력’의 가장 독특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피해 실태는 큰 변화가 없지만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Q 집필 당시 45명의 피해여성과 5명의 가해남성을 만나 인터뷰를 하셨지요. 책에서는 증언자(피해자) 입장뿐 아니라 연구자와 증언자 간의 관계나 윤리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셨는데요. 


이런 글쓰기 방법론 자체가 저의 정치적 입장이고 여성주의적 글쓰기라고 배웠습니다. 다른 글쓰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과정 자체가 정치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르포’ 형식의 글, 인터뷰 방법을 사용한 일부 글쓰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학자든 소설가든 수십 년간 훈련이 필요한 방법론인데, 우리는 대개 사회적 약자인 ‘말하는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거나 녹취록을 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석이 없는 겁니다. 연구 대상과 연구자의 관계는 영원한 논쟁 주제죠. 일부 미국 학계에서는 아예 인터뷰이에게 소정의 고료를 지불합니다. 


제가 평소에도 많이 하는 말인데, 글에는 논문, 칼럼, 기사, 일기에는 위계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담론이죠. 윤리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로 엄격함에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이 고민을 놓는 순간 연구자(필자)는 “끝”이라고 봅니다. 


Q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여성들이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폭력을 당한 아내를 위한 쉼터나 여성단체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내에 대한 폭력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여성에게는 일상이 전쟁 상태이지요. 이에 반해, 여전히 사회의 인식은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에 대한 폭력과 그 과정에서 살인이 가부장제 사회의 대표적인 여성 살해(femi/cide)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피살자일 경우 60% 이상이 범인이 남편이나 파트너입니다. 최소한 동(洞) 단위 정도에 아내폭력 쉼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전문적 인력도 필수적이고요.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문제인데, 우리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아내폭력, 원인은 많지만 대책은 없다" 


Q 가정폭력의 원인과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을 한계로 내세우셨습니다. 현재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 또 그러한 폭력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책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제게 '아내폭력의 원인과 대책'을 말해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대책은 없다”고요.(웃음) 저는 "실태, 원인, 대책" 식의 사고방식에 회의적입니다. 그렇게 간단한 사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책은 국가의 몫입니다. 이제까지 한국사회는 젠더 문제 전반,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운동과 피해자 스스로에게 떠넘긴 ‘무임 승차’ 정책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아내폭력도 성폭력처럼 대비책은 '없습니다'. (* 저자는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여 폭력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한다는 의미에서 '아내폭력'이라는 용어를 책에서도 사용했다-기자 주) 


성폭력, 가정폭력 자체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함으로서 대응 방식을 바꾸는 것이지요. 아내폭력도 그러한데, 아내폭력 현상은 결혼 제도 자체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대책이라고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단, 결혼 후 첫 폭력이 발생했다면, 그때가 가장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죠. 첫 폭력을 용인하면 계속됩니다. 그러나 첫 폭력으로 이혼하는 여성은 드물지요. 


Q 사회문화 전반에서 예전보다 여성들의 문제제기가 보다 활발해진 요즘입니다. 남성들의 성차별 발언이나 행동이 이슈화되고 여성이 직접 저항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2016년 말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여성학 연구, 페미니즘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제가 올해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책을 묶어내는데(편저자), 여성주의가 '양성'과 '평등' 개념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대칭적으로 보는 현재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법 제정 중심의 운동이 한계가 왔고, 온라인이라는 다른 영역이 생겼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젠더와 계급 문제 등 고민 과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제 생각에 한국사회에는 여성주의 연구자 풀(pool) 자체가 너무 적다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여성학은 어쨌든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학문입니다. 연구 영역이자, 운동, '헌신'의 영역인데 여기 투신하는 여성주의자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젊은 여성들에게 기대가 큽니다.  


"'여혐 vs. 남혐' 이분법, 여성 저항 어렵게 만들어" 


Q 지난 10월 6일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주관 강연에서 "'미소지니'가 '여성혐오'로 번역된 것은 유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이 부분은 제가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해제에서 처음 지적했습니다. 저는 "남존여비" 정도로 번역하거나 "미소지니" 그대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혐오는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이 단어는 최근에서야 한국사회에 알려졌지요. 


'미소지니'가 꼭 '여성혐오'로 번역되어야 했을까요?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 <여성을 싫어하는 일본의 미소지니(女ぎらいニッポンのミソジニ-)>가 한국에서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로 나왔습니다. 출판사로서는 불가피했겠지만, 상업적 번역이죠. 문제는 상업적이라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여성혐오는 분명한 현상이고 정확한 말이죠. 하지만 미소지니가 여성혐오로 번역되면서 본뜻이 왜곡되는 한국의 남성 중심적 문화가 있었고, 이 문제는 여성에게 난관을 가져왔어요. 


혐오라는 단어의 어감이 너무 강력해서 남성들로 하여금 '혐오'를 방어해야 한다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갖게 했고, 무엇보다 '여성혐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성혐오라는 대칭적 용어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혐 vs. 남혐'이라는 이분법이 그것이죠. 여성들의 저항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Q 선생님의 현재 관심 분야와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공부하고 싶은 주제나 계획은 너무 많습니다. 저출산과 감군(減軍) 혹은 징병제의 변화 등 국방정책의 관련성, 그리고 신자유시대의 자살과 우울증, 각자도생 사회에서 뻔뻔하고 ‘강한’ 인간형의 탄생에 관심이 많습니다. 온라인이 가상 세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현실 세계가 된 현상과 ‘현실’과의 각축, 성매매에서 노동의 개념, 군 위안부 연구와 운동의 탈식민화,  인터섹스와 몸이 제 관심 분야입니다. 


논문과 책 계약이 밀려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시대 윤리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쁜 사람 전성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행히(?) 별다른 취미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해서 온전히 24시간이 제 시간입니다. 바쁘지도 않고 시간도 많습니다. 술, 담배도 전혀 못해서 글 쓰는 친구들이 부러워합니다(웃음). 일중독 문화를 비판하는 일중독자입니다. 물론 바람직한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죠.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정희진 "최순실을 '아녀자'로 비판, 여성혐오 작동한 것" ]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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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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