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의 함정

- 5장 노예

by 북다이제스터



오늘날 노동자 임금은 너무 낮아 굳이 실제 노예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전 세계 노예제가 폐지된 건 인권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구 증가와 이민, 여성 노동력 유입으로 노동자 몸값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 노동 참여가 크게 늘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70년 여성 소득은 가계소득의 2~6퍼센트였지만, 지금은 40퍼센트를 넘습니다. 과거엔 남성 혼자 벌어도 가정을 꾸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맞벌이를 해도 생활은 빠듯합니다. 기업이 쓸 수 있는 노동력은 두 배로 늘었지만, 한 사람 임금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오른 물가에 비해 한 사람에게 충분한 임금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기업만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맞벌이 가정은 한 세대 전 외벌이 가정보다 더 많은 돈을 법니다. 그래서 부부가 모두 직장에 다니면, 경제적으로 더 안정돼야 합니다. 하지만 파산 가정 대부분은 맞벌이 가정입니다. 두 번째 월급을 거의 저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이 일터로 나섰지만, 저축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이는 낭비 탓이 아닙니다. 자녀를 좋은 유치원이나 학교, 대학에 보내기 위해 ‘좋은’ 지역에 집을 사고, 학원비로 두 번째 월급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맞벌이 가정은 주택 대출이나 자동차 할부, 세금, 보험, 학원비를 내고 나면 한 세대 전 외벌이 가정보다 쓸 돈이 적습니다. 어려울 때를 대비한 저축도 거의 못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맞벌이의 함정이 생겼습니다. 엄마들은 집안일과 직장 일을 모두 해내고 있지만, 남는 돈은 더 적습니다. 엄마의 월급은 자녀가 나중 중산층으로 사는 데 필요한 ‘준비’ 비용으로 다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열심히 일하고 자녀를 돌본 결과가 파산 위험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자녀가 나중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으로 살길 바라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이를 위한 수단도 있습니다. 바로 맞벌이와 대출입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욕구와 수단을 갖고 있어, 집값이나 학원비는 끝없이 오릅니다. 높아진 물가 탓에 중산층 삶은 여유가 없습니다. 삐끗하면, 즉 실직이나 질병, 사고, 이혼 같은 어려움에 처하면 파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맞벌이의 함정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중산층 엄마들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일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가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합니다. 많은 여성이 대학을 나오고 바깥일을 해도, 가정은 오히려 더 깊은 재정난에 빠졌습니다. 국가총생산(GDP)은 늘었을지 몰라도, 가정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됐습니다. 엄마들은 월급을 기대하며 일터로 나섰지만, 그 월급에 깃든 위험은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중산층 엄마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일을 계속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여성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 혼자 벌어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여성을 포함한 더 많은 노동력이 일터로 나가면 노동자 임금은 낮아집니다. 또한, 토지나 공장의 생산성이 올라도 임금은 오르지 않습니다. 기계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숙련 고임금 노동자는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로 쉽게 대체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생산 과정에서 생긴 부가가치 중 노동자가 차지하는 몫은 점점 줄어듭니다. 생산성 향상과 임금은 반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임금을 결정짓는 건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지가 아닙니다. 노동자가 얼마나 쉽게 값싼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기술 혁신 같은 생산성 향상은 노동 시간을 줄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전기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전기톱은 벌목꾼이 손으로 나무를 베 때보다 열 배 빠르게 작업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한 벌목회사는 노동자에게 일을 일찍 끝내고 쉬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시간에 열 배 많은 나무를 베게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생산성 향상이란, 노동시간 단축이나 임금 인상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을 위한 투자로 이어집니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를 비롯한 무산계급)는 라틴어 ‘프롤레스’(proles)에서 유래한 말로, ‘자식 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법적 지위는 다를지 몰라도,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예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노예라 부르든 노동자라 부르든, 일은 늘 그들 몫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예나 노동자가 아닌 계급, 곧 신관이나 영주, 귀족 같은 상층계급은 왜 그토록 일하길 기피했을까요? 노동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요?



미켈란젤로 <아틀라스 노예>(1536)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 대부분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를 ‘논 피니토’(non finito)라 부릅니다. 완성된 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미완성된 거친 돌덩어리가 그 완성도를 더 돋보이게 합니다. 마치 노예가 돌 속에 갇혀있다가 '풀려 나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미켈란젤로는 “내 조각 작품은 돌 안에 이미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는 대리석 속에서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는 노예를 발견하고, 정으로 돌을 쳐내 그를 해방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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