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

- 5장 노예

by 북다이제스터



노예제는 이제 모든 나라에서 불법이며, 국제협약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1807년 영국은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1833년 노예 소유자에게 2천만 파운드를 보상하며 노예제를 폐지했습니다. 1848년 프랑스는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노예제를 철폐했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 후 1865년 수정헌법 제13조로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1962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법으로 금지한 나라입니다.


노예제 폐지에 관한 첫 국제협정은 1926년 국제연맹의 ‘노예제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노예제를 ‘인류에 대한 범죄’로 선언하고, 노예 무역상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어느 나라든 형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해 모든 형태의 노예제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인권 보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누구도 노예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와 매매는 금지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디서든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각국 법과 국제협약으로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종식됐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는 노예를 “인간이 도구로 전락한 상태”라 정의하며, 현대 노동자를 사실상 노예로 보았습니다. 사회는 노예인 노동자가 상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하고 싶다는 욕구를, 한층 더 노력하겠다는 욕구를 끝없이 만들어 내도록 관리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예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노예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노예는 자신의 의지를 상실한 채 타인에게 통제를 받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사람이 이곳을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반드시 물리적인 폭력이 전제되지 않습니다. 노예는 늘 사슬에 묶여 있어 기회만 되면 도망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황 때문에 ‘노예’ 상태와 그 역할을 받아들이고 주인 뜻에 따르기 시작하면, 굳이 물리적인 통제가 필요 없게 됩니다. 노예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해(害)를 이상하거나 부당하다 여기지 않고, 싫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다른 계층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하고, 그 구조가 법으로 제도화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노예제입니다.


이제 제조업자는 자신 공장 노동자를 진짜 노예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겉으론 자유 시민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자기 권리 일체를 부정당한 사람들이 벌이는 경쟁 덕에, 제조업자는 값싸고 손쉽게 노동자를 구할 수 있어 굳이 노예를 부릴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 ‘노예’는 일회용품처럼 쓰이고 버려집니다. 바로 이점이 과거 노예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현재 ‘노예’는 저렴해 영구 소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예’ 고용 기간은 짧고, 길어야 정년까지입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늙은 ‘노예’를 계속 부리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엥겔스는 노동자가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자본을 소유한 계급의 노예라 지적했습니다. 노동자가 시장에서 상품처럼 거래되고 몸값이 상품 가격처럼 오르내리는 사실을 보면, 노동자는 사실상 노예입니다. 과거 노예는 노예로 불렸지만, 오늘날 노동자는 그 사실이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어떤 소유자도 노동자를 팔지 않지만, 대신 노동자가 스스로를 팔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는 로빈슨 크루소와 그의 노예 프라이데이의 관계를 예로 들어 엥겔스의 주장을 설명했습니다. 소설에서는 크루소가 프라이데이를 노예로 삼았지만, 이제 그를 인간이자 형제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크루소는 미국 수정헌법 제15조(인종이나 피부색, 이전의 예속 상태(노예)에 근거해 사람을 불평등하게 대하면 안 된다고 선언한 헌법)를 읽어주며, 프라이데이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임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크루소는 단 한 가지 조건을 덧붙입니다. 자본으로 상징되는 그 섬은 크루소가 배타적으로 소유한 사유재산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랬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자유인’ 프라이데이는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바다로 헤엄쳐 나갈 수 없으니,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크루소가 섬[자본]을 소유한다는 건, 결국 프라이데이를 노예로 소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링컨 역시 임금노동자가 사실상 노예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자본]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 구성원은 남의 생산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밭을 일구는 농부나 직접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기술자, 손수 일하는 목수가 그 예입니다.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남에게 생계를 의지하지 않을 수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링컨은 임금노동자가 진정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독립적인 자영업자가 될 때로 보았습니다.


“남부 사람들은 북부 임금노동자가 평생 그 계층에 머무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작년에 고용되어 일하던 사람이 올해는 독립해 일하고, 내년에는 다른 이를 고용할 것이다. 따라서 자영업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의존적인 성격이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어리석은 자이거나, 드물게 불운한 자일뿐이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 생산 노동자의 3분의 2는 생계를 남에게 의존하는 임금노동자였습니다. 독립성과 자영업을 중시하는 사회였지만, 자기 농장에서 일하거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겨우 세 명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남북전쟁 직전, 사회비평가 오레스테스 브라운슨(1803~76)은 북부 임금노동 체계를 ‘임금 노예제’(wage slavery)라 불렀습니다. 그는 임금 노예제가 실제 노예제보다 더 나쁘다고 비판했습니다. “임금노동 체계는 실제 노예 소유자가 감당해야 할 온갖 비용과 말썽, 증오 없이 노예제의 모든 이점을 죄책감 없이 누리게 하는 교활한 악마의 장치”라고 했습니다. 임금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고통받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될 가능성도 희박해, 임금노동자가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사회이론가 조지 피처(1806~81) 역시 임금노동자가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하며, “노예주가 노예를 부리듯 자본이 노동을 부린다”고 말했습니다.


“자본가 당신은 자본 덕분에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리는 한 노예주다.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노예주에 불과하다. 당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 소득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당신의 노예다. 그것도 노예가 누릴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노예다.”


피처에 따르면, 끊임없는 가난과 불안 속에 사는 임금노동자는 오히려 노예보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노예는 적어도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으며, 늙거나 병들면 노예주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유노동자는 일을 하든, 굶어 죽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유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노예처럼 살아간다. 노예보다 더 오래, 더 힘들게 일하고도 더 적은 돈을 받으며, 노동이 끝난 뒤에야 겨우 자신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노예주가 노예를 대하는 것보다 한층 더 강력하고 완벽하게 강제력을 행사한다. 자유노동자는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지만, 노예는 일하지 않아도 노예주가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자유노동자는 주인이 없는 노예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인이 너무 많거나 아예 없는 것만큼이나 상황이 나쁜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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