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 10장 선거

by 북다이제스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선거 핵심은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입니다. 이 방식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모든 의석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49.99퍼센트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라도 의석을 전혀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소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장치에 불과합니다. 선거 대의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기보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제도 설계는 미국 대통령 선출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미국 건국 아버지들은 하층민에 대한 불안 때문에 대통령선거인단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고안해 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권자가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대통령제 국가입니다. 이 제도에서는 전국 득표 1위 후보가 반드시 대통령이 되지 않습니다. 각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고,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한 후보가 대통령이 됩니다. 흑인처럼 전국적으로 인구가 많아도 각 주에서 소수라면, 승자독식 제도 아래에서 선거인단 확보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선거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대통령선거인단 제도는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민주주의의 과도함을 막고자 만든 장치입니다.


실제로 미국 시민의 절반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지역 시장 선거처럼 덜 중요한 선거에선 투표율이 2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들은 유권자의 20퍼센트도 참여하지 않는 선거로 선출됩니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투표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정부를 신뢰하지 않거나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답합니다.


많은 미국 유권자가 투표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자동으로 유권자를 등록해주는 방식과 달리, 미국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등록해야 투표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투표 자격이 있음에도 유권자로 등록되지 않아 투표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특정 집단의 투표권을 제한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흑인과 일부 이민자를 배제하기 위해 인두세나 영어 문해력 시험, 조부 조항(할아버지가 투표할 수 없었던 사람은 유권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조항) 같은 장치를 마련해 유권자로 등록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사실상 특정 집단의 정치 참여를 막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유권자로 등록하려면 대개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보통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분증이 있는 비율은 집단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백인이 흑인이나 남미계보다 신분증을 보유한 비율이 세 배나 높고, 부유층 역시 빈곤층보다 그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가난한 사람과 흑인은 교통 범칙금이나 벌금을 내지 못해 운전면허증을 빼앗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흑인 거주 지역의 차량국(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기관)이 아예 폐쇄된 사례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항의로 주(州) 정부는 차량국을 다시 열었지만, 한 달에 하루만 운영되었습니다. 또한 흑인과 이민자가 많은 어느 주에는 전체 카운티의 3분의 1만 차량국을 운영해, 면허증을 발급받으려면 40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유권자 등록과 투표 과정에는 이 밖에도 여러 장벽이 존재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유권자 등록 기간이 선거 직전 매우 짧게 며칠로 제한되거나, 투표소 운영 시간이 평일 근무시간에만 집중되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흑인과 가난한 시민이 하루 결근하고 긴 줄에 서서 투표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미국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투표 참여율에 큰 차이가 나타납니다. 연 소득 15만 달러가 넘는 사람들의 투표율은 80퍼센트를 웃도는 반면, 연 소득 2만 달러 이하인 사람들은 5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정치 과정에서 부유층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반영됩니다. 미국의 정치권력은 부유층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미국 정치사상의 형성에는 존 로크의 『통치론』(1689)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퍼슨과 메디슨, 애덤스 같은 건국 아버지들은 로크의 저작에 심취했습니다. 이 영향은 특히 미국 ‘독립선언서’에 잘 드러납니다. 선언서는 형식과 문구, 내용 면에서 『통치론』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 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이 표절했다는 비난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로크의 정치사상은 서양 정치사의 획을 그은 근대 주요 혁명들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크가 진정 민주주의를 지지했는지, 그를 과연 민주주의 사상가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로크는 당대 부상하던 영국 신흥 자본가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 자본주의 사상가이거나, 기껏해야 소유에 집착한 개인주의자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로크는 인간을 경제력으로 판단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만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인간적인 속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오직 재산을 소유한 자만이 사회가 인정하는 ‘인격’을 지닙니다. 로크는 소유권을 자연권으로 간주하며, 통치자조차 소유자의 동의 없이 재산을 침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이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이전의 정치철학 전통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중세 정치사상에서국가는 시민이 공동체 속에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실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유재산의 보장보다 공동체의 윤리적인 질서와 덕 있는 삶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사유재산 보호는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로크가 재산 보호를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 건, 당시 부자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근대 민주주의 전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로크가 맡은 역할을 언급하며, 그가 18세기 영국 휘그당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휘그당은 상인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었고, 로크는 이러한 입장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그의 『통치론』입니다.


“휘그당의 목적은 국왕 권한을 헌법으로 제한하고, 하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로크는 휘그당 입장을 정치 이론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통치론』이다. 19세기 영국 민주주의가 소수 재력가에게만 선거권을 허용했던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로크의 이론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본가 계층이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했습니다. 휘그당이 추구했던 정치 체제는 대중의 정치 참여가 아니라, 국왕의 전제 권력을 제한한 뒤 상인과 부르주아 계층이 의회를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 구조였습니다. 로크는 바로 이런 정치 질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발전시켰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오늘날의 정치 체제를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까요. 예를 들어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했던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현대 서양 국가, 특히 프랑스나 영국, 미국에서 애초에 민주주의가 존재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분명히 ‘아니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현대의 선거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단지 권력을 누구에게 맡길지 선택하는 역할에만 머뭅니다. 시민이 대표자를 뽑는 순간, 그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행사될지는 더 이상 시민의 손에 남지 않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력은 선출된 소수 대표와 관료,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소수 엘리트 집단에게 집중됩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눈으로 본다면, 현대 대의 민주주의는 민중이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가 아니라, 민중의 이름을 빌려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장 자크 루소는 자본주의 사회가 미국이 내세우는 공화주의 이상과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공화주의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공적인 문제를 우선하는 정치 원리입니다. 여기서 ‘공화주의’란 말은 라틴어 res publica, 곧 ‘공적인 것’에서 유래합니다.


오늘날 미국 사회를 보면 흄과 루소의 통찰이 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공화국의 이상(理想)보다 자본주의 질서를 우선시해 왔습니다. 그 결과 공화주의가 강조했던 공공성과 시민 덕목은 점차 약화되고,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시장 경쟁과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 질서를 규정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각에서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절충한 이른바 ‘개인적인 공동체주의’ 같은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서로 모순된 개념을 억지로 이어 붙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흄과 루소가 지적했듯이, 공동체주의는 소박함이나 상호연대, 평등이라는 조건에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약화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 구조가 복잡하고 사회적인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어, 공동체주의가 요구하는 평등과 연대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 같은 민주공화국은 사실상 민주주의 국가도, 공화국도 아닙니다. 그저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쓴 자본 과두정치에 더 가까운 체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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