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된 의지

- 10장 선거

by 북다이제스터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가능한 한 많은 재화를 소유하려 하고, 이런 이기성은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이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이런 자연 상태에서 “고독하고, 비참하고, 잔인하며, 짧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서로 사회계약을 맺고, 자신의 정치적인 권리를 국가라는 주권자에게 양도합니다. 이 관점은 선거를 통한 대의정치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8~2023)는 이를 전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그는 선거를 통한 권력 위임을 “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는 자발적인 복종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선거로 권력을 대표자에게 넘기는 순간, 우리는 권력을 잃고 사실상 노예가 된다. 반면 권력을 넘겨받은 대표자는 과도한 권력을 지니게 되어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다. 자발적인 권력 양도가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막는 장애물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대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의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인 자율성과 능동적인 권력 행사를 봉쇄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이 스스로 정치 주체로 나설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대의 민주주의는 대중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소수 엘리트가 다수를 통치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 위임을 통한 자발적인 복종 체계’에 불과합니다.


데이비드 흄 역시 사회계약론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사회계약은 평등하고 이성적인 개인들이 자유롭게 맺는 계약이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가난한 농민과 장인을 예로 들어 지적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어 어떤 계약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국가나 사회를 떠날 수 있을 때만 진정한 사회계약이 가능하다.”


이 점이 바로 흄이 당시 유행하던 여러 사회계약 이론 모두가 허구라고 비판한 핵심 근거입니다. 우리는 국가나 사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주어진 국가나 사회에 맹목적으로 던져져 길들여질 뿐입니다.


국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국가라는 해약 불가능한 계약에 묶입니다. 하지만 계약이 정당하려면, 자율적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국민 누구도 이 계약을 자발적으로 체결하지 않았고, 해약할 자유도 없습니다. 국가는 공권력을 통해 계약 준수를 강제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성립한 계약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계약은 본질적으로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오쿠다 히데오(1959~ )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2007)에서 주인공 이치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에 태어나면 선택의 여지없이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가 생긴다니, 이상하지 않아?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건 지배받는다는 뜻이야.” 따라서 이러한 모순은 홉스의 ‘사회계약론’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전제 위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사회계약은 결코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개인은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국가나 사회, 법, 교육 등 외부 질서 속에 편입되어 길들여지는 존재입니다. 계약이라는 외양을 띠고 있어도 실상은 억지로 체결된 계약일 뿐입니다. 흄은 바로 이런 점에서 당시 유행하던 모든 사회계약 이론을 “철학적인 허구”라고 비판했습니다.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은 이미 성립된 권력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일 뿐입니다.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1756~1836)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동의해서 지배받기로 했다는 사회계약론이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정당화 장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한 인간이 지상의 다른 인간이나 집단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는 것보다 더 단순한 진리는 없다.”


루소는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 체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거를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권력을 위임함으로써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인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 의원을 뽑을 때만 자유로울 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곧 노예가 된다.”


마르크스는 민주주의 헌법 자체에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헌법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투표권을 부여해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인 불평등 구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특히 부유한 부르주아 계층은 ‘사유 재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을 헌법으로 보호받고 있기에, 불평등한 사회 질서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선거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기엔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습니다. 사회운동가 엠마 골드만(1869~1940)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여성참정권 운동을 지지하면서도, 선거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보통선거권은 현대의 미신입니다. 여성이 투표권을 가진다고 해서 지금까지 남성들이 실패한 일을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에 맹목적으로 동조할 수 없습니다. 남성들의 정치사가 증명하듯, 선거로 성취한 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성취한 모든 권리는 끊임없는 투쟁과 자기주장으로 얻은 것이지, 참정권으로 얻은 게 아닙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주요 정치 개혁은 선거가 아니라, 거리에서의 시민 불복종이나 시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야말로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이었고, 때로는 그 변화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반면 대의기관이나 선거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시민이 투표해도 정치가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의회정치나 선거는 개혁의 수단이이라기보다, 무력과 무능의 상징에 더 가깝습니다.


선거는 흔히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의견’은 과연 무엇일까요? 유권자는 종종 충분한 정보나 비판적인 성찰, 깊이 있는 토론 없이 투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의 선택은 숙고된 판단이라기보다 순간적인 ‘견해’에 가깝습니다. 견해는 쉽게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선거 과정은 마치 최면에 가깝습니다. 후보자들은 선거 전략과 홍보로 유권자의 사고를 흐립니다. 그 결과 유권자는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가 선출되어도 곧 실망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이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유권자가 정치인의 영향력 때문에 자유로운 정치 의지를 갖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광고와 홍보가 난무하는 환경에서, 우리가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치 과정을 분석한 결과, 유권자는 진정한 자기 의지가 아닌 ‘가공된 의지’(manufactured will)만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이 정치인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다고 가정해선 안 된다. 대중의 선호는 정치인들이 그 선호를 만들어낸 뒤에야 존재한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 역시 군중이 스스로 추론한 의견이 아니라, 강요된 견해만을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학식 있고 교양 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조차 감정과 당파심에 이끌려 투표하며, 독립적인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보통선거의 한계는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르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나라 선거든 똑같다. 세대가 바뀌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로버트 위브(1930~2000)도 선거의 본질을 비슷하게 설명합니다. 그는 선거가 시민에게 “자신의 자유의지로 새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할 권력을 쥔 듯한 착각”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보통 선거권과 다수결 원칙은 자유로운 개인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이미지를 사람들의 상상 속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자신이 살아갈 정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장엄한 모습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투표장에서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선거는 자유의지의 행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설계한 무대 위에서 각본대로 움직이는 몸짓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으며 자유롭게 한표를 행사했다고 느끼지만, 바로 그 착각이 선거가 주는 가장 정교한 환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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