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 옳았다

13장 진보나 발전

by 북다이제스터



3부 이데올로기의 산물




“단 하나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황스러울 만큼 많은 가능성 가운데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 유발 하라리





13장 진보나 발전




“최근에 쓰인 것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

나중이 이전보다 더 낫다는 생각,

모든 변화가 곧 진보라는 생각만큼 큰 착각은 없다.”

- 쇼펜하우어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 온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진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늘날 거의 종교와 같은 신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난했던 옛날을 경멸하며 비웃습니다. 지금 우리는 고대 로마 황제보다 더 큰 힘을 지녔습니다.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이러한 진보를 더욱 확고히 증명한 듯 보입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이루어낸 성취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 우리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진보와 발전을 믿지 않는 현대인을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서 현대인의 사유 한계가 드러나는지도 모릅니다. 2005년 미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조너선 휴브너는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주요 발명을 조사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인류가 이미 1873년에 혁신의 정점을 찍은 후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문명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발명 대부분은 1867에서 1881년 사이, 불과 15년 동안 등장했습니다. 내연기관이나 전화, 마이크, 무선전신, 전등, 실내 배관, 가전제품, 자동차, 대중교통, 항공여행, 공기 타이어, 자전거, 에어컨, 텔레비전, 합성섬유, 인조견, 플라스틱 등이 그 시기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현대적인 삶’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설계된 틀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휴브너는 인류가 과거와 달리 혁신이 정체된 ‘대침체 시대’에 들어섰으며, 머지않아 혁신이 완전히 멈출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연구 투자는 1930년대보다 20배 이상 늘었지만, 새로운 발명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양질의 교육과 훈련을 받지만, 진정한 혁신과 진보는 과거보다 훨씬 드뭅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윌리엄 노드하우스(1941~ )는 “발명은 더 어려워지고, 연구는 더 비싸지며, 성과는 더 미미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대다수의 믿음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1940~ ) 역시 오늘날의 발명이 전기와 내연기관만큼 급진적이지 않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전기는 인간의 생활 리듬과 노동 구조를 재편했고, 내연기관은 도시와 공장, 식량, 공급망, 국가 시스템까지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2016)에서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미래의 혁신’은 엘리베이터나 에어컨만큼 혁신적이지 않으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다시 오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전기와 내연기관이 이끈 2차 산업혁명은 음식과 의복, 주택, 교통, 엔터테인먼트, 정보, 통신, 건강, 의료, 노동 환경 등 거의 모든 생활 영역을 바꿔놓으며 유례없는 성장을 만들어냈습니다. 반면 정보통신기술 중심의 3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과 엔터테인먼트 등 일부 분야에 국한된 변화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1970년 이후 생산성 증가 역시 이전 100년에 비해 크게 둔화되었습니다. 고든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란 낙관에도 회의적이며, 오히려 젊은 세대의 삶이 부모 세대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혁신이 정체되고 있다’는 휴브너와 고든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비관이 아닙니다. 경제학자 찰스 존스(1967~ )는 1950년부터 1993년까지의 경제 성장의 80퍼센트가 완전히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기존 아이디어의 정교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인류는 1969년에 오늘날 휴대용 계산기 수준의 연산 기술로 달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후 연산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지만, 혁신의 속도는 예전만 못합니다. 같은 해, 스탠리 큐브릭(1928~99)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린 미래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는 “1960년대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가 오늘보다 더 미래적이었다”고 말하며, 인류가 과거의 급진적인 상상력을 잃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세계관은 사실상 역사가 자연법칙처럼 진보하고, 과학기술은 반드시 발전하며,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념은 자연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근대 이후에 형성된 특정한 역사관의 산물입니다. 계몽주의의 ‘이성의 진보’라는 신조, 산업혁명 이후 경험한 폭발적인 성장, 사회진화론적인 사고가 결합해 우리가 반드시 진보할 수 있다는 강력한 관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특정 시대가 겪은 경험을 일반화한 결과입니다.


진보나 발전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현대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드문 생각이었습니다. 18세기말 이전만 해도, ‘세상은 끊임없이 나아진다’는 믿음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진보나 발전은 꾸준히 지속되는 현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항상, 필연적으로 더 나아진다는 믿음은 실제 인간의 경험과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나빠지거나, ‘그날이 그날일 뿐’이라 여겼습니다.


반면 현대인은 진보를 믿습니다. 이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현실의 불행을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습니다. ‘미래가 더 좋을 것이니 지금의 불행은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는 경제성장 담론에서, 국가 정책에서, 기업의 목표에서 반복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사로잡혀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합니다.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1923~2006)은 이러한 상황을 ‘지나간 미래’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현재를 희생하고, 결국 현재는 항상 결핍된 상태로 남게 됩니다.


고대 문명은 세상이 끝없이 반복된다고 믿었습니다. 초기 히브리인의 세계관을 담은 성경에도 이러한 인식이 드러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난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전도서> 1:9)라는 구절은 세상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질서 속에 있다고 여겼던 고대인의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순환적인 세계관은 약 5천 년 전 지중해 주변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물론, 남미의 마야 문명에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은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과 그에 맞춰 돌아가는 농경 생활을 보며, 세상의 질서도 이처럼 영원히 반복된다고 믿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인 역시 신들의 분노와 은총이 순환하듯, 인생과 역사가 반복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지중해를 넘어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에서도 확인됩니다. 노르드 신화의 라그나로크는 세계의 멸망과 재탄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신화로, 종말과 재생이 순환한다는 북유럽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남아메리카의 마야 문명 역시 세상을 창조와 파괴가 거듭되는 거대한 순환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정교한 달력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마야의 ‘장기달력’은 세상의 종말과 재생이 예정된 시간표처럼 이해되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역사가 순환하는 질서 속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문명은 한때의 황금시대를 지나 점차 타락하고 몰락한 뒤, 일정한 주기로 다시 시작합니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예컨대 군주정은 시간이 지나 참주정으로 타락하고, 이어 귀족정과 과두정, 민주정, 무정부 상태를 거쳐 다시 군주정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을 이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라는 생명’이 순환하는데, 그 주기가 인간의 일생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순환을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BC 63~AD 14)와 아우렐리우스(121~180) 역시 인간 역사에 진보나 구원의 길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쇠락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의 몰락’이라는 논의의 핵심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현실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모든 악덕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잘못된 현실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졌고, 철학자들은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지목한 로마 몰락의 원인은 시민 도덕성의 붕괴나 계층 갈등, 교역 침체, 관료의 폭정, 과도한 세금, 소모적인 전쟁 등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 또한 미래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중세 교회는 현세의 삶을 덧없고, 구원과 무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상가들은 완전한 지식이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걸 알았으나, 이브와 함께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뒤 아담의 지혜가 점차 잊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중세 사상가들에게 진보라는 개념은 없었고, 지식은 과거 사람들의 지혜를 찾아내 복원하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아담과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사상가일수록 아담의 지혜를 더 많이 기억한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세 학자들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옛 사상가의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16세기 근대 초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여전히 고대 로마를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로마의 농업과 의약품, 군사기술, 토목 기술은 당대 유럽이 따라잡지 못한 이상적인 기준이었습니다. 실제로 로마의 도로망은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좋은 도로로 사용되었습니다. 17세기까지도 로마가 이룬 성취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의 콘크리트입니다. 고대 로마인이 처음 사용한 콘크리트는 심지어 오늘날의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했습니다. 화산재를 섞어 만든 로마 콘크리트 건축물은 2천 년이 지나도 거의 손상되지 않았으며, 철근 없이 지어진 판테온 신전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로마 제국이 몰락한 뒤, 콘크리트 제조 비법은 1천 년 넘게 잊혔다가 19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다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순환적인 역사관은 중국에서도 19세기 후반까지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왕조 교체는 단순한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천명(天命)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자연스러운 반복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역사란 새로운 걸 창조하는 과정이 아니라, 잃어버린 도덕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사상가들은 고대의 황금시대를 재현하려 했습니다. 공자는 자신이 당대 지혜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주나라 초기나 그보다 앞선 은·하 시대, 나아가 전설적인 삼황오제 시대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으며, 과거를 참고해 당대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묵자(BC 480?~390?)도 현재보다 과거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문명의 진보 자체를 의심했습니다. 그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욕망과 혼란이 가중된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도구를 많이 가질수록 국가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교활하게 빈틈없이 행동할수록 간계도 많아진다. 법을 내세울수록 도둑과 강도가 늘어난다. 사람들이 옛날로 돌아가면 거친 음식도 맛있게 느껴지고, 검소한 옷도 아름답게 보이며, 누추한 처소도 안식처가 되고, 평범한 일도 즐거움의 원천으로 여길 것이다.”


18세기 중반에도 역사가 순환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럽 지식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1748)에서 “모든 인간사에 끝이 있듯 국가도 언젠가 자유를 잃고 종말을 맞이한다. 로마도, 스파르타도, 카르타고도 그랬다. 국가는 입법권이 집행권 이상으로 부패할 때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옛 사상가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현대인보다 뛰어났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호모 데우스’, 곧 잠재적인 신으로 여기기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고대 사상가들은 더 현명하고, 더 정직했습니다. 물질을 축적하거나, 덕을 쌓고 이성을 갈고닦는다고 해서 가치 있는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으로 이를 달성한다는 ‘발전’ 개념은 근대적인 시간관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우리가 발전이나 진보를 추구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진보라는 개념이 우리 육감이나 남겨진 유산,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어긋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이룬 걸 한순간에 잃을 수 있습니다. 지식은 늘어도, 그 결과 문명 수준이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언제든 야만적인 행동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지식이 쌓여 물질적인 조건이 나아졌음에도, 인간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심해졌습니다.


프로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이 그 이전 19세기 문명이 이룬 눈부신 성취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성취는 극심한 억압이 누적된 상태였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불만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문명이 발전하고 질서를 요구할수록 불만이 빠져나갈 틈이 줄어들고, 결국 문명은 폭발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인류가 자신의 야수성을 통제하려 했지만, 수천 년이 지나도 진정한 문명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 내면에는 여전히 야만적인 동물이 살고 있다. 다만 그 야만이 문명의 놀이를 배워 흉내 낼뿐이다. 문명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를 개조하지 못했다. 인류는 문명이 정한 예의범절과 질서에 따라 자신의 공격성이나 폭력성을 제거하지도 못했다. 문명은 우리가 가져선 안 된다고, 가지려 해선 안 된다고, 가지게 되어선 안 된다고 여기는 것들을 어두운 곳 깊숙이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자크루이 다비드 <적선을 받는 벨리사리우스>(1781)



그림 속 구걸하는 노인은 벨리사리우스입니다. 그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로마 제국의 영토를 되찾은 전설적인 장군이었습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정치 음모에 휘말려 눈을 뽑히고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이 작품은 세속적인 성공의 덧없음과 인간 몰락의 허망함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일시적인 물질 성취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