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몰랐습니다.

by 책꿈지기 이영주



“엄마, 오늘 점심은 배달시켜 먹을까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아무거나…."


엄마는 좋아하는 음식이 뚜렷하지 않으시다. 가리는 것도 많고, 입도 짧으신데다가 의견을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셔서 메뉴를 정할 때마다 고민이 된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뭐 드실래요? 골라보세요.”

"아무거나…. 나는 잘 모른다. 알아서 시켜. "


엄마의 이런 대답을 들으면 괜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들먹이곤 한다.


"아니, 아버지는 엄마한테 이런 것도 안 사주셨어요?"


우리 가족은 할머니, 아버지, 엄마, 그리고 우리 삼 남매만 해도 여섯 명이었다. 게다가 집에는 늘 아버지의 사촌들이나 이모, 외삼촌 같은 객식구들이 함께 살았다. 많은 식구가 함께 살았으니 형편이 넉넉할 리 없었고, 외식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어쩌다 외식이라며 먹는 중화요리도 행사가 있어야 먹는 음식이었으니, 고를 메뉴의 폭도 넓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옛날 경상도 남자였다. 연세가 드실수록 다정해지시기는 했지만 180도 달라지시기야 했겠는가. 엄마와 단둘이 오붓하게 맛있는 음식을 드시러 다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께서 메뉴를 고르는 것을 어려워하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외식이야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돌아오는 주말에 우리에게 돈가스를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돈가스의 가격이 800원이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자장면 가격이 150~200원 정도였으니 돈가스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처음 가보는 경양식집이 어떤 모습일지, 돈가스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맛있게 잘 먹고 와.”


신나게 대문을 나서는 우리를 보고 빨래를 널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는 왜 함께 가지 않느냐고 물었던 기억은 없다. 포크와 나이프는 어떻게 쥐는지 가르쳐주시던 아버지의 미소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어색하고, 설렘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던 기억만 있다.


돈가스를 먹고 돌아온 우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아버지가 돈가스를 4인분 시키셨는데 다 먹지 못해서 남기고 왔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아버지께

“애들도 어린데 사람 수대로 다 시켰어요? 남은 건 싸달라고 하지 그냥 두고 왔어요?”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그런 엄마의 잔소리에 아버지는

“그런 데서 어떻게 그렇게 해.”라며 맞받아치셨다. 철없던 나는 엄마가 좋은 기분을 망친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때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하고 싶지만, 자신까지 누리기엔 형편이 되지 않으니 참으셨을 거란 걸.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이 당연했던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의 그런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엄마는 여전하시다. 과일을 먹으면 맛있고 좋은 부분은 우리에게 주신다. 편한 것, 예쁘고 좋은 것은 늘 우리에게 먼저 내미신다.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려도 바뀌지 않는다.


《안녕, 나의 엄마》(박선아 글, 김재환 그림/달빛북스/2021)라는 그림책이 있다. 딸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과 엄마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대화체로 풀어 놓은 그림책이다. 그 그림책 속에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말, 감사의 말, 엄마에게 바라는 말들이 적혀있다. 꼭 내 마음 같은 문장들도 많이 있는데, 그중 한 구절을 옮겨본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엄마 자신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조만간 엄마랑 돈가스를 먹으러 가야겠다. 그리고 그 돈가스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여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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