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방울토마토 자란 것 좀 봐.”
“오이랑 호박도 달렸다.”
“지난주보다 많이 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철망 사이로 텃밭부터 살핀다.
3년 전 성주에 마련한 시골집 마당 한편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봄이면 그곳에 상추, 오이, 호박, 가지, 방울토마토 같은 모종을 심는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곳이라 갈 때마다 눈에 띄게 자라있는 작물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텃밭으로 나간다. 성장을 방해한다는 곁가지도 따주고,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도 세워준다. 그러고 나서 마당에 있는 다른 나무들을 둘러본다.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가 얼마나 컸는지, 대추나무의 가지들은 얼마나 더 뻗어나갔는지도 살펴본다. 석류나무에 핀 석류꽃 개수를 세어보며 올해는 석류가 많이 달리면 좋겠다는 기대도 해본다.
작은 텃밭이지만 해야 할 일은 늘 있다. 잡초도 뽑아야 하고, 물도 주어야 한다. 가끔은 거름도 주고, 약도 쳐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이 처음이라 서툴고 힘들만도 한데 남편의 표정은 늘 행복해 보인다. 햇볕에 그을려 얼굴은 까매지고 가끔은 목뒤나 팔이 벌겋게 익어 따갑기도 하지만 시골이 처음인 남편에게 이 모든 것은 다 즐거운 일이다.
나도 시골에서 살았던 적은 없다. 하지만 외가가 시골이라 여름방학의 절반은 시골에서 지냈다. 외삼촌을 따라 밭에 나가 참외도 따고, 참새를 쫓으려고 냄비를 두드리며 논두렁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밤이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별을 보며 별자리를 찾기도 했다.
외가의 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많은 먹거리가 있었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토마토였다. 동생들과 뛰어놀다 목이 마르면 텃밭으로 들어가 빨갛게 익은 토마토 하나를 뚝 땄다. 흐르는 물에 쓱쓱 씻어 그 자리에서 한입베어 먹었다. 햇볕에 달궈진 뜨뜻한 토마토였지만, 갈증이 싹 가시면서 정말 시원하게 느껴졌다. 외할머니의 텃밭은 우리들의 놀이터이자 보물창고였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은 늘 부러워했다. 어린 시절에도 여름방학 때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했다. 교과서에서조차 외할머니 댁은 왜 항상 시골인지 모르겠다며 나중에 우리 손주들에겐 시골 외할머니 댁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시골에 집을 마련한 이유 중 하나였다.
남편과 나는 가끔 손주들이 시골집에 놀러 온 모습을 그려본다. 함께 텃밭에서 먹거리도 수확하고, 나무와 꽃의 이름도 알려주고,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 호들갑스럽게 아이를 불러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더운 날이면 집근처 냇가로 함께 물고기도 잡으러 갈 것이다. 도시에서 보지 못한 자연의 모습을 맘껏 보고 즐기며 깔깔거릴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콩닥거린다.
이런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다. 《할머니의 뜰에서》(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책읽는곰/2023). 이 그림책은 조던 스콧의 자전적 이야기로 작가와 외할머니의 추억을 담고 있다. 작가의 외할머니는 폴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작가는 할머니를 ‘바바’라고 부르는데, 폴란드어로 할머니가 ‘바바’라고 한다. 바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캐나다로 이주해서 유황 광산이 있는 바닷가 마을의 양계장에 터를 잡았다.
조던 스콧의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길에 조던을 바바의 오두막에 데려다주었다. 조던은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바바와 함께 등하교했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표정, 그리고 손짓에서 바바의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는 토마토 앞에
오이 앞에, 당근 앞에
사과나무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고 있어요.
그러고는 유리병이 빌 때까지
지렁이를 땅에 내려놓고
흙으로 덮어 주어요.
이것이 바바와 내가
해 온 일이에요.
바바는 텃밭을 가꾸었다. 비 오는 날이면 조던과 함께 지렁이를 주워 모아 텃밭에 풀어주었다. 바바와 나란히 텃밭에 앉아 있는 그 모습이 무척 정다워 보인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작가를 보며 미래의 내 손주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사랑과 함께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같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나중에 마당에 풀장을 놓아도 좋을 것 같아.”
“왜? 손주 생기면 여름에 거기서 수영하라고?”
“응, 그리고 저기 잔디밭에는 작은 그네도 하나 놨으면 좋겠어. 흔들흔들 그네 타면서 하늘도 보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러자. 근데 손주 생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