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났다. ㄱㄴㄷ으로 만든 로맨스 그림책 《돌아온 고릴라와 너구리》(이루리 글. 유자 그림/북극곰/2024)이다. 전편에서는 고릴라와 너구리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더니 2편에서는 ㄱㄴㄷ으로 둘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글을 알려주는 그림책에서 이렇게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만날 줄이야.
ㄱ 고릴라 신부 알지?
ㄴ 너구리 신랑도 알지?
ㄷ 둘이 싸웠대!
ㄹ 라면을 끓였는데
ㅁ 면이 불었다고
ㅂ 불같이 화를 냈대!
겨우 라면 때문에 싸웠다고? 깔깔 웃으며 읽었지만 묘하게 공감된다.
“저녁 뭐 먹을까?”
“라면!”
휴일 저녁 메뉴를 묻는 내게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또 라면?’이라는 내 생각이 표정에서 보였는지 남편은 재빨리 덧붙인다.
“난 라면 먹을 거니까 당신은 빵 먹어.”
나는 빵 없이는 못 사는 빵순이, 남편은 라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라면돌이다. 남편과 나의 식성이 이것만 다른 게 아니다. 나는 고기를 남편은 채소를 좋아하고, 나는 심심한 음식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짭조름한 음식을 좋아한다. 과자도 나는 달콤한 것을 남편은 짭짤한 것을 고른다. 나는 스파게티에 피자를 좋아하지만, 남편은 비빔국수에 부추전을 좋아한다. 냉면을 먹으러 가도 나는 비빔냉면, 남편은 무조건 물냉면이다.
남편과 나는 성향도 다르다. 나는 외향적이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나 남편은 반대로 내향적인 편이라 사람을 만나면 많이 피곤해한다. 나는 밖에서도 사람들을 만나지만 매주 온라인 모임도 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곤 한다.
남편은 꼼꼼한 성격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남편이 빨래를 개거나 이불을 개면 각이 딱 맞는다.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해 오래전부터 물고기를 키웠고, 베란다의 화초도 남편이 관리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흥미도 없다.
남편과 가장 다른 것은 잠자는 시간이다. 아침형 인간인 남편은 아침 시간에 집중이 더 잘된다고 하며,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다고 늘 강조한다. 하지만 저녁형 인간인 나는 한밤중에 집중이 더 잘된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 좋았다. 가끔 남편은 내게 일찍 자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부족한 잠으로 피곤해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지만, 자신의 방식이 옳다며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이렇게 다르다 보니 싸울 일도 많았을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부부는 싸운 적이 없다. 물론 서로에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적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상대방이 마음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화가 가라앉고 마음이 정리되면 차분히 서로의 생각을 다시 나누었다. 서로 다른 점도 많았지만 싸움을 피하는 방법만큼은 같았다.
“여보, 그거 있잖아. 그거.”
“어. 이거?”
가끔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다 머뭇거려도 그게 무언지 단번에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가 오래 같이 살긴 살았구나.’ 싶다.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이 된다.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이 27년이니, 남편이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오래 함께 산 사람이 되었다. 서로 다르게 살던 두 사람이 만나 3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말자. 차라리 내가 변하자. 그것이 더 빠르다.”
여전히 남편은 아침형 인간이고, 나는 저녁형 인간이다. 하지만 이제 남편은 내게 일찍 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늦게까지 책을 보는 나를 위해 곳곳에 스탠드를 마련해주었다. 여전히 나는 화초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은 하지 않지만, 물고기의 밥은 내가 챙겨준다.
다른 점들이 아직도 많지만, 달라서 짜증이 나기보다 다르니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니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먹을 수 있어 좋고, 내가 못 하는 일을 남편이 잘하니 그것도 좋다. 자신의 취향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따라주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 주는 여유도 생겼다.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하는데 우리도 조금씩 닮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먼 훗날, 꼭 닮은 우리 부부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