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맛

by 책꿈지기 이영주

동글 납작한 모양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제사상에 올라오던 사탕이 있다. 한입에 들어가지 않아 조각내서 먹어야 했고, 가끔은 먹다가 혀를 베게 했던 사탕. 제사가 많았던 우리 집에는 항상 그 사탕이 있었다. 사탕을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그것을 내주셨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입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에, 예쁘고 맛도 가지가지인 사탕이었다. 엄마가 다른 사탕을 사주지 않으니, 나에게 그 사탕은 웬수같은 존재였다.


그 사탕이 우리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빨리 없애려고 했지만, 제사가 많아서인지 집에 그 사탕이 떨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제사상에 올리지 말자고 엄마를 조르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그 사탕.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제사상에서 정말 사라졌고 나의 기억 속에서도 함께 잊혀졌다.


그 사탕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은 《옥춘당》(고정순/길벗어린이/2023)이라는 그림책이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사탕의 이름이 ‘옥춘당’이라는 것도 그림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이름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옥춘당처럼 달달한 사랑 이야기와 가슴이 저리는 진한 그리움이었다.


이 그림책은 고정순 작가가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할아버지 고자동 씨와 할머니 김순임 씨는 전쟁고아였다. 둘은 기차역이 있는 작은 도시에 자리를 잡고 삼 남매를 낳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늘 다정했다. 정 많고 따뜻한 할아버지는 낯을 많이 가리던 할머니에게 남편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제삿날마다 할아버지가 입에 넣어 주던 사탕이 있었다.

“순임아, 눈 감아 봐.”

“아~.”

김순임씨가 천천히 녹여 먹던 사탕.

제사상에서 가장 예뻤던 사탕.

입 안 가득 향기가 펴지던 사탕.

옥춘당.


제사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사탕을 할머니 입에 넣어주던 할아버지. 그 시절의 어른들은 귀한 것을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마 김순임 할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일부러 옥춘당을 챙겨서 할머니 입에 넣어준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부모님 세대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일까? 이런 고자동 할아버지와 김순임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부럽게 느껴졌다. 그림책을 읽으며 우리 부모님을 떠올렸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엄마는 양장점을 운영하시기도 했고, 집에서 한복 바느질을 하시기도 했다. 게다가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우리 삼 남매와 한두 명의 객식구까지 늘 함께 살았으니,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아버지가 따뜻한 말이니 행동을 하시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연세가 드시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무뚝둑했던 아버지. 그러나 마음속에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시고 얼마 뒤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안마기를 구입하고 싶다며 적당한 것을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네 엄마한테 사주고 싶어서 그런다. 내가 없으면 어디가 아파도 만져주고 주물러줄 사람도 없는데...”


아버지는 마음은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살았던 시대였고, 어른을 모시고 살았으니 더욱 표현이 힘드셨을 것이다. 그랬던 아버지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끼시며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으셨던 건 아닌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안마기는 엄마 집 안방에 아버지대신 자리를 잡고 있다. 엄마는 몸이 불편하시면 그 위에 앉아 안마를 받으시며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고자동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김순임 할머니는 상실감에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종일 동그라미를 그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는 할머니. 입에 옥춘당을 넣어주던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던 것이리라. 쓸쓸하고 그리움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 있다는 것에 김순임 할머니는 행복하기도 했을 것 같다.


사랑은 여러 가지 맛이 있는 것 같다. 옥춘당처럼 달달한 맛도 있고, 우리 부모님처럼 쌉싸름하지만 단 맛이 남는 도라지정과 같은 맛도 있다. 함께 하는 동안의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 부부마다 저마다의 맛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우리 부부의 추억은 어떤 맛으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달달한 맛일까? 쌉쌀한 맛일까?


부부로 살면서 가끔은‘한날한시에 죽자’라는 말도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누군가는 홀로 남아 떠난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움과 함께 후회되는 기억도 많겠지만, 그런 기억보다 아름답고 예쁜 기억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예쁜, 한편에서는 그리움에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읽으며 예전에 먹었던 옥춘당이 그리워졌다. 지금 다시 먹어본다면 웬수 같았던 옥춘당이 사랑의 맛으로 느껴질까? 시장에 가면 옥춘당 파는 곳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지금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