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남편과 나는 시골집에 간다. 도착하면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한다. 봄 한철 내내 우리는 화단을 만들고, 나무를 사다 심고, 텃밭을 일궈냈다. 흙을 일구고 돌을 고르고 거름을 주고…. 이젠 제법 화단이 화단 같아지고 텃밭이 텃밭다워졌다.
주말 내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주말이 되면 서둘러 시골집으로 향한다. 남편과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농사도 지어본 적이 없다. 그런 우리에게 시골집은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을 느끼는 게 해주는 곳이다.
텃밭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르는 것투성이다. 인터넷도 뒤져보고 동네 어른들께 여쭤보기도 하지만 어설프기만 하다. 동네 어른들이 보시기에 우리가 하는 일은 소꿉장난 같은가 보다. 지나가시다 말고 멈춰 서서는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신다.
“비잡게 숭가서 잘 클랑가?”
“비좁나요? 그럼 뽑아서 다시 심을까요?”
“고마 나 나. 자꼬 웅기면 뿌리 상해.”
“새순을 따줘야 잘 큰데이.”
“아~ 그래요?”
“그기 아니고... 새순! 거는 잎이고...”
“아! 이거 아니고요?”
동네 어른들의 농사 가르침에 시원한 음료수 한잔 대접하며 함께 하는 대화가 즐겁다.
자연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대로 시골집에는 TV를 두지 않았다. 일이 없을 때는 옛날 팝송이나 7080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름도 모르는 새소리가 들린다. 저녁을 먹고 나면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동네를 산책한다.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자리를 찾기도 한다. 말없이 그냥 걷기만 해도 좋다. 시골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우리에게 보물 같다.
시골집에서 남편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인생은 지금》(다비드 칼리 글/세실리아 페리 그림/오후의소묘)이라는 그림책이 떠오른다. 은퇴를 한 남편이 아내에게 여러 가지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여행을 가보자고, 밤낚시는 어떠냐고, 함께 외국어나 악기를 배워보자고 말한다. 이것은 그동안 꿈꿔왔던 그의 버킷리스트가 아닐까? 남편은 그것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중에’, ‘내일’이라며 자꾸 미룬다. 이런 아내의 말과 표정에 기분 나쁠 만도 한데 남편을 끝까지 아내를 설득한다.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다 놔두고 가자.”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부부의 대화가 낯설지 않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보았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매일 무언가를 미루며 살고 있는 나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뒤로 미루며 살아왔다.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하고 싶은 것들을 나중에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 책은 그런 내 생각을 바뀌게 해 준 책이다. 남편에게도 이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미루지 말자고, 오늘을 즐기자고 함께 다짐했었다.
남편은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늘 안쓰러웠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배워보라는 나의 권유에 남편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만 했다. 그런 남편이 TV 프로그램 속 출연자가 시골집의 한쪽에서 나무로 의자를 만드는 장면을 보다가
“내가 하고 싶은 게 저런 거야”
라고, 무심한 듯 말을 던졌다. 시골집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집에 필요한 작은 물건들을 직접 만들며 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의 이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남편은 퇴직 후에 마련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림책을 보며 했던 다짐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날부터 시골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뜬 부동산 정보가 있으면 찾아가 보고, 시골 마을을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동네가 나오면 돌아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부동산에 연락도 했다.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시골집을 보러 다녔다. 거의 1년을 찾아다니다 지난여름에 남편의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발견했다.
남편은 시골집에 간다는 생각에 금요일이 되면 즐겁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도 즐겁다. 지난주에 꽃망울이 맺혔던 영산홍에는 꽃이 피었을까? 고추는 얼마나 자랐을까? 상추는 얼마나 컸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남편 말대로 퇴직 후로 미루었다면 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우리의 인생에서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즐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은 다 지나가 버린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보다 오늘에, 나중보다 지금에 집중해 보려 한다. 남편과 함께 버킷리스트를 적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실행할 것이다. 인생은 지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