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20 언저리
그중 정기 적금 150
장기 적금 15 보험 5 교통, 통신비 10
나머지 40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한 달 소비.
한 달을 40만 원으로 보낸다는 내 말에 친구들은 경악한다.
" 너 옷은 안 사??? 화장품은??? 약속은 안 잡아??? 적금은 왜 이리 많이 해??? "
옷도 사고 화장품도 산다. 약속도 잡는다. 데이트도 한다. 심지어 나의 소비에 큰 불만이 없다. 하지만 나의 소비가 당신에게 정답은 아니다. 나의 소비는 나에게만 That's right!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처럼 소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쓰인 게 아니다. 소비만큼 각자의 성향과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소비에서만큼은 '저축은 월급의 50%, 보험은 5% 해야 해요.' 하는 규칙이 우스울 지경이다.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자신만의 소비 법칙을 만들라는 말이다.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꼭 그래야만 한다.
나의 소비로는 세상을 멋스럽게 따라가기는 힘들다. 세상의 유행이 꼭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 나의 소비로는 아주 아주 최소한만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소비가 편하다.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소비와 물질에 관한 말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억지로 끼워 넣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말이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질 사이의 일치. 나와 소비의 일치. 거기서 얻는 안정감. 나같이 소비하고 풀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먼저 옷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옷 한 벌을 위해 낼 수 있는 최대 금액은 3만 원이다. 물론 질이 엄청 좋은 옷이라면 돈을 더 지불하겠지만 요즘 옷 시장이 질이 좋다고 비싸고, 질이 안 좋다고 안 비싼 건 아니더라. 같은 옷을 어디서는 싸게, 어디서는 비싸게 파는 행태를 목격하고 나서 가격이 질을 보장한다는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또한 삶의 일의 현장에 비싸고 고급진 옷을 입고 가는 게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비싼 옷에 연필 선이 그어져 있거나 먼지로 검게 그을린 자국을 볼 땐 맴찢 ㅠㅠㅠ 그래서 한 철만 입더라도 가벼운 옷을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아, 가끔 빈티지 옷(말이 좋아 빈티지지 남이 입던 중고 옷이다.)을 구매할 때도 있다. 잠깐 생각나는 에피소드, 한창 소비를 관리하겠다며 가계부 어플에 기록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에게 어플을 소개하며 소비 목록을 보여주는데 '의류' 부분에 '1000원'이 찍혀있는 거다. 친구는 다행히 "너 잘못 적었나 보다." 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1000원으로 옷을 산 게 맞다. 심지어 1000원으로 겨울 코트를 샀다. (ㅋㅋㅋ) 아직까지 너무 잘 입는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는 코트가 예쁘다고 두 번이나 말했다. 무튼 난 옷보다 몸매가 돋보이는 사람이고 싶다. 같은 돈이면 옷에 보다는 몸에 투자하는 게 더 만족스럽다. 나 같은 이들이여! 1000원짜리 코트에 주눅 들지 말자! 10만 원짜리 코트 구매도, 1000원짜리 코트 구매도 모두 정상이다.
다음으로, 신발 이야기이다. 신발도 비슷하다. 나는 여름용 샌들 하나를 7년을 신었다. 아주 튼튼하고 멋스러워서 끈만 헤지지 않았더라도 지금도 신고 다녔을 것이다. 7년을 신었다면 아주 좋은 명품이나 브랜드 신발을 사서 오래 신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기대를 저버려 미안한 마음이다. 그 신발은 집 앞 상가에서 샀다.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밑창은 아직도 닳지를 않았다. 다만 비도 많이 맞고 모래도 많이 맞아 끈과 겉면이 너덜너덜 헤져서 더 이상 신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똑같은 샌들을 하나 더 샀다. (ㅋㅋㅋ) 또 7년을 신을 생각에 신이 난다. 나의 20대와 30대를 줄곧 함께한 샌들이라. 다른 샌들을 찾아볼까 했지만 흔치 않은 내 발 사이즈에,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에, 마치 불멸인 것만 같은 튼튼함을 가진 샌들은 이 친구가 유일한 것 같아 큰 고민 없이 집 앞 상가로 향했다. 신발가게 아저씨가 놀라셨다. 신발을 너무 오래 신었다면서 대신 버려주고 싶어 하신다. " 아녜요~ 집 가서 제가 버릴게요" 하고 가지고 왔다. 비 오는 날은 헌 신발을 신을 테다. 여러분의 표정이 상상이 간다. 재밌다. (ㅋㅋㅋ) 여러분은 아마도 어머님들이 신으실법한 올드한 디자인에 길바닥에서 구르던 생쥐 같은 샌들을 상상하겠지만, 기대를 저버려 또 한 번 미안한 마음이다. 한 친구는 샌들이 예쁘다며 마치 버*스탁인 줄 알았다고 했다!
글을 쓰는데 너무 재미있다. 마음이 재채기를 할 것만 같이 '키득키득' 댄다. 여러분을 약간 놀리는 기분도 든다. 다시 정신 차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커플의 데이트 이야기이다. 이전 글을 보았다면 알겠지만 우리는 연애 9년 차 커플이다. 연애학 박사과정쯤 되겠다. 주변에 연애학 학사과정을 밟고 있는 많은 친구들로부터 문의가 잇따른다. 선물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얼마 정도로 해야 하는지? 기념일 날에 어떤 레스토랑에 가 보았는지? 그중에 추천할만한 곳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우리는 마치 등록금도 안 내고 박사 과정까지 올라온듯한 야릇한 기분을 느낀다. 연애 9년 차이지만 특별하고 비싼 선물을 한 적도, 좋은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없다. 막말로 고기를 썰어본 적도 없다. 처음엔 이런 질문에 멋들어진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억지로 '이번 기념일엔 꼭 비싼 레스토랑에 가봐야지.' 결심하고 예약까지 했었다! 그런데 우리 커플은 (불행히도) 레스토랑에서 팔지 않는 음식이 땡길 때가 더 많은 것을 어찌하겠나. 우리는 '그 날' 먹고 싶은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커플이다. 미리 '이 음식 먹자' 하고 만나도 갑자기 '저 음식'이 강력하게 땡기는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저 음식'이 먹고 싶은데 남들의 질문에 답하고자 '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당분간도 비싼 레스토랑에 갈 일은 없을 듯하다. 아직도 땡기는 '저 음식'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은 글을 여기서 끝맺고 싶다. '저는 이렇게 돈을 아끼는 대신 여행을 다녀요~' 하고 내게 편한 소비를 합리화하고 싶지 않다. 어떤 원대한 목적을 위해 나의 소비를 억지로 줄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박한 소비로써 불행한 것이 아니다. 참아내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소박한 나의 소비에 만족과 일치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돈을 모아서 대체 어디다 쓰냐고 질문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대비해서 돈을 모아놓고 있을 뿐이다. 물론 여행도 가겠고 결혼 자금으로도 쓰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주목적이 아닌 것이다. 나의 소박한 소비가 소박하고 좋다. 물질에 휩싸이지 않아 가벼운 이 느낌이 좋다. 상표에 연연하지 않는 나라서 좋다. 딱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루는 일치감.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이 균형감이 기분 좋다.
나와는 다를 여러분의 소비를 힐난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도 그 일치감을 느끼고 있다면 이 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혹시나 균형감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부류인데 타인의 눈을 신경 써 온갖 상표에 둘러싸여 있다면. 불일치 감에 기분이 좋지 않다면. 소비를 가볍게도 해보고 무겁게도 해 보면서 그 균형감을 찾아가는 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읽은 책에서 띵언을 발견했는데 오늘의 주제와 완벽히 일치한다. 이것으로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