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름 쉬지 않고 꾸준히 일한 것 같은데 연봉 상승 속도보다 내 노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그나마 월급이 꽤 올라서 기분이 좋았는데 뭐 때문인지 세금이 늘어 실수령액이 똑같아지는 조삼모사의 마법에 걸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 중소기업에서 시작했다
나의 첫 회사는 중소기업이었다. 그 당시 초봉은 동종업계 대기업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내가 취업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설레서 월급의 크기를 따질 생각도 안 했다.
경력을 쌓을수록 커리어에 갈증을 느껴 뒤늦게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규모가 크니 연봉도 더 많이 주겠지?라는 막연한 상상으로 협상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직한 회사는 연봉 테이블이 없었고 인사팀은 내 중소기업 연봉을 기준으로 새 연봉액을 책정했다. 낮은 연봉을 제시해도 아쉬운 건 나였다. 과제와 면접을 준비하며 힘들게 이직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내 월급은 귀여운 상태를 유지했다.
문득 ‘조금 늦더라도 대기업에서 시작할 걸..’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요단강을 건너 돌이킬 수 없는 연차가 되어버렸다. 이 회사는 저연봉 경력자를 위한 배려는 없는 건가! 혼자 푸념하며 서운함을 토로해 보지만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것 또한 내 선택인 것을 누굴 탓하랴. 월급 통장을 볼 때마다 시작이 중요함을 느낀다.
2. 운도 타이밍도 안 맞았다
업무를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주어진 업무의 성격과 결과에 따라 인사평가는 달라진다. 운이 따라주지 않아도 역량이 충분하다면 다년에 걸쳐 자연스레 드러나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일복이 없는 건 괜찮다. 참고 일했으니 이 일을 계기로 팀장에게 더 좋은 업무를 받을 명분으로 쓰면 되고, 작은 업무라 해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주변의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슬픈 건 상사(팀) 운이 없을 때다. 위로 올라갈수록 상사들의 영역 싸움은 필연적이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팀이 날아가고 찢어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전쟁 같다. 함께했던 팀장이 전쟁에서 패하면 나를 전리품으로 얻은 새 팀장에게 내 능력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업무 운도, 상사 운도 크게 없었다. 그렇게 나의 연봉은 남들보다 조금 더 천천히 올라갔다.
3. 남과 비교했다
연차 대비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면 부럽다. 그냥 부러움만 느끼면 되는데 뒤이어 현타가 따라온다. 굳이 잘 나가는 사람과 내 연봉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서는 자신의 연봉을 공개하며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는 평가 요청글들도 종종 보인다. 누가 봐도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괜찮냐고 묻는 걸 보니 고도의 자랑 글 같다.
나 또한 내 연봉이 업계 평균 이상은 되길 바라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너무나 천차만별인 연봉들에 진짜 평균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너무 높기도, 낮기도 한 다양한 연봉들을 보며 문득 '평균 연봉'이라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동종업계 종사자 모두의 연봉을 투명하게 조사해서 나눈 것이 아니고서야 진짜 평균 연봉을 알 수 있을까? 일부 타인이 인정하는 연봉이면 잘 사는 거고 적다고 하면 못 살고 있는 건가? 평균을 따라가다 보니 남의 의견에만 의존하며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천만 원을 1500억으로 불린 주식농부 박영옥 선생님은 말씀 하셨다. 투자하고 싶은 기업의 목표주가를 설정하고, 목표가에 도달하면 매도하라고- 등락을 거듭하는 주가에만 집중하면 탐욕과 공포에 시달리다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 경고하셨다. 연봉 또한 마찬가지다. 주식처럼 아무리 올라도 더 올리고 싶은 것이 연봉이다. 연봉을 보며 생기는 끝없는 불만 대신 외부 자극에 흔들리더라도 다시 마음의 평정심을 찾을 수 있도록 목표연봉가를 만들기로 했다.
나만의 연봉 기준을 만들자. 이 회사에서 승진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면 적당한 목표 연봉을 설정하고 적당히 마음도 챙기자. ‘내가 하는 일 대비 이 정도 금액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혹은 ‘이 정도면 적어도 거지처럼 살지 않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되는 나만의 현실적인 목표 연봉액을 설정해보자.
목표 연봉에 도달했다면 (나만 아는 거지만) 기분이 좋을 것이고, 도달하지 않았다 해도 목표액이라는 구체화된 계획이 있으니 끝도 없이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물론 목표액에 도달했다고 해도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 연봉을 더 받을 것이다. 연봉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남과 비교하는 마음은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얼마 전 목표 연봉액을 달성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보다 높은 연봉자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그건 그들의 삶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면 된다. 목표액에 도달하니 회사일에 너~무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좀 더 나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지금은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연봉을 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회사가 제안하는 연봉이 아닌 회사를 벗어나 내 스스로 마음껏 돈을 버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로또를 사곤 한다..)
더 자유로워질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