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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3. 2017

03. 스티브 잡스는 나르시스트였다?

<오늘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

“오늘은 내가 2년 반 동안 기다렸던 날입니다. 때로는 혁명적 제품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순간이 있습니다. 애플은 그래왔습니다. 한번이라도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정말 행운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매우 운이 좋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킨 몇 가지 제품을 내놓았거든요. 1984년 매킨토시를 발표하였고 그것은 애플뿐만 아니라 컴퓨터 산업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2001년에는 아이팟을 소개하였고 음악을 듣는 방법뿐만 아니라 음악산업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세 번째로 혁명적인 새 제품을 소개하려 합니다.”_스티브 잡스, 2007년 아이폰 발표회에서 

아이폰 출시와 함께 엄청난 성장을 했던 2007년 애플에서 일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나의 경력으로는 애플에 취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7년 당시 (내게) 운 좋게도 애플은 배터리 품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 실제 설계 및 생산 개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엔지니어 대부분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유명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제부터 애플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애플은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약 140조 원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애플은 브랜드 순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애플 로고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이름을 어떻게 정할까 고민했던 잡스가 마침 책상에 놓여있는 사과를 보고 즉흥적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사과를 한입 베어 먹은 모습을 넣은 이유는 bite라는 발음이 컴퓨터 데이터의 기본 단위인 byte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사실 애플 로고는 지금과 같은 사과 모습이 아닌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서 생각하고 있는 형태였는데 후에 무지개 색깔이 들어간 사과 로고로 변경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무지개 색은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애플이 동성애자를 옹호하고 컴퓨터의 기본 콘셉트를 발명했던 앨런 튜링(Alan Turing)을 추모하기 때문이라는 루머도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애플에 의해 확인된 바는 없다. 튜링은 2차대전 시 독일군 암호체계인 애니그마를 해독했던 천재 과학자였다.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어 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사과를 베어 먹고 자살했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그는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린다.

애플은 ‘사용자 경험’과 ‘첫인상’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30일 이내 무조건 제품을 반품하거나 교환해준다. 한창 온라인 구매가 유행일 때도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고급스런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었다. 이제 애플스토어는 세계 각처의 가장 고급스럽고 비싼 곳의 아이콘이 되었다. 제품 포장만 전문적으로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팀이 별도로 있어서 처음 애플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신선한 첫 느낌을 갖도록 한다. 사람들이 단지 용도를 위해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용도만 놓고 생각하면 가격이 2~3배 비싼 제품을 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제품을 사용하면서 특별한 애착이 생기거나 쓸수록 차별화된 가치를 발견하면 충성고객이 되어 계속해서 제품 구입뿐 아니라 홍보 역할까지 한다. 애플 제품은 재구매율이 매우 높고 사용자가 제품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브랜드’라 말한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디지털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국내에서는 LG의 프라다폰을 베낀 디자인이라는 조롱이 있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왜 LG 프라다폰은 먼저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폰과 같은 대작이 되지 못했을까? 애플이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휴대폰 사업에서 선두를 달리던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 LG 등은 무척 긴장했다. 드디어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자 삼성은 “기대 이하의 제품 디자인과 성능 때문에 안심했다”는 반응을 보였고, 한국 언론은 LG 프라다폰을 베낀 디자인이라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부각시켰다. 사실 아이폰의 잠재력을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2년 약정 4GB $499)은 일반 휴대폰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거기에다 삼성과 LG를 옹호하기 위한 한국의 언론 플레이가 더해지면서 찻잔 속의 태풍으로 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실제 애플의 첫 번째 아이폰 판매량은 140만대 정도에 불과했으니 2007년에는 다들 아이폰을 무시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아이폰은 속칭 ‘애플빠’들의 전용 장난감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아이폰의 숨겨진 잠재력을 관찰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기술적 혁신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폰에 적용된 기술들은 이미 휴대폰 업계에서 쓰여진 기술들이었다. 심지어는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의 성공과 보급화를 위해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꺼내들었다. 휴대폰 통신업계에서 3인자였던 AT&T와 독점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비즈니스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기존 관행에 창조적 파괴를 시도했다. 아이폰을 독점 공급하는 조건으로 WiFi를 처음으로 스마트폰에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통신업체가 ‘갑’이었고, 이익을 위해 무선 WiFi를 휴대폰에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두었다. WiFi를 사용할 수 없는 스마트폰은 이메일이나 간단한 웹브라우징 용도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기존 스마트폰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터치 방식의 제품들이 LG 프라다폰을 포함해 여럿 있었지만 느리고 정확하지 않아 인기가 없었다. 스타일러스를 써야 하거나 아주 불편한 작은 키보드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애플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를 정확히 파악했고, 첫 아이폰을 통해 총알을 날려보면서 사전 포석을 깔아둔 것이었다. 휴대폰 시장이라는 거대한 판을 뒤집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었다. 애플은 정전압 터치기술을 보유한 작은 벤처회사를 인수해서 처음으로 아이폰에 적용시켰고, 전용 운영체제를 개발해 쉽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데이터 걱정 없이 마음껏 아이폰을 쓸 수 있도록 WiFi라는 걸림돌을 비즈니스 전략으로 해결했다.

그러자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똑똑한 유저들을 중심으로 아이폰을 해킹해서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애플은 OS를 개방하지 않고 폐쇄적 운영을 하면서 앱을 직접 개발해 탑재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희한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해 사용자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했다. 그러면서 아이폰의 용도가 아주 다양해졌다. 재미있는 게임도 생기고 이런저런 프로그램과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운영체제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애플 직원들도 일부러 아이폰을 탈옥시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만약 애플이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면 아이폰은 정말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2008년 두 번째 아이폰 3G가 발표되었을 때 애플은 과감히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앱스토어(App Store) 생태계를 만들었다. 개발자들에게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개발툴을 제공하고 앱 판매수익을 나누는 모델을 제안했다. 대신 App 유통은 애플이 책임지고, 사용자와 개발자들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 애플의 생태계 전략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전체 파이를 키우고 폐쇄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이자, 스마트폰 앱 개발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애플은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약 1,200만 대를 팔았으며, 2009년에는 2000만 대를 넘기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제야 삼성, LG를 포함한 기존 휴대폰 업체들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애플은 독보적인 스마트폰 운영체계(Operating System), 미려한 제품 디자인과 탁월한 하드웨어 성능, 막강한 앱스토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거침없이 휴대폰 시장에 창조적 파괴를 일으켰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콜럼버스 달걀이겠지만, 이를 간과한 노키아는 끝없이 추락해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합병되는 수모를 겪었다. 한때 휴대폰의 대명사였던 모토로라도 명맥만 유지하는 회사로 전락했다. 결국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기술 자체의 혁신보다 중요한 셈이다.

사실 애플의 전략에는 위험요소가 많았다. 새로운 시장 개척의 프런티어 역할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애플이 전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과 콘텐츠를 중요시하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개발에서 내부적으로 디자인팀에 우선순위와 결정권을 부여하므로 디자인팀은 강력한 힘을 갖는 무서운 팀이기도 하다. 또 자니 아이브를 주축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직접 보고하는 특권을 갖고 있었다. 디자인팀의 콘셉트가 완성되면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은 반드시 그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곧장 집으로 가야 하는 분위기였다. 중요한 프로젝트들은 회사 내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모든 엔지니어가 집중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수를 최소화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최종적으로 완성된 프로토타입 제품이 당초 기획했던 완성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과감히 취소했다. 

실제로 아이패드는 출시되기 5년 전부터 기획했던 프로젝트였고 낮은 완성도로 인해 여러 차례 중도에 취소된 적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각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직원들이 말은 안 해도 잡스를 포함한 경영진의 결정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과연 경영철학이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도 그런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잡스가 나르시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잡스의 전기를 읽어보면 괴팍한 행동도 많고, 자신의 결정에 심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과 엔지니어들을 대할 때는 대부분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극단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은 심하게 몰아붙였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잡스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뒤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 좋은 부모와 워즈니악 같은 훌륭한 친구를 만나 강점과 직관을 극대화시켰지만 운이 나빴다면 크게 실패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도 높다. 과대한 자아 이미지를 바탕으로 ‘현실 왜곡장’을 만들어 사람들을 한계까지 몰아부쳤고, 결과적으로 정말 운 좋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성공 이면에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IT산업의 태동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완벽한 제품에 대한 광기와 예술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기업 철학으로 승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잡스를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영웅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엄청난 성공은 대부분 진짜 운 좋게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사람을 만나 탁월한 선택을 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회사에 있는 동안 갑작스런 잡스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비록 그가 필요 이상으로 포장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 잡스의 상징적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가 말한 것들은 정말로 이루어진다고 다들 믿고 따랐다. 가끔 구내식당에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고, 새로운 제품을 발표하던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만약 잡스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애플은 지금과는 또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그가 생전에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남겼던 명연설 중에 아직도 늘 가슴에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직 그의 연설을 접하지 못했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잡스의 마지막 연설문과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나로 하여금 결국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말대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 덕택이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훌륭한 관계들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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