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플라톤은 '동굴의 우화'로 무엇을 말할까?
<철학 콘서트>
동굴의 우화
“여기에 지하 동굴이 있다. 동굴 속에는 죄수가 갇혀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인 채로 동굴 벽만 보고 산다. 목도 결박당하여 머리를 좌우로도 뒤로도 돌릴 수가 없다. 죄수의 등 뒤 위쪽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죄수는 횃불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산다.”
플라톤의 《국가》에 장치된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적인 ‘동굴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말만 들어도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지하 동굴은 우리의 현세다. 플라톤은 지금 우리를 동굴 속의 죄수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 팔과 다리를 포박당한 채, 목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죄수가 바로 당신이다.
“죄수와 횃불 사이에는 무대 높이의 회랑이 동굴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다. 이제 이 회랑 뒤에서 누군가가 인형극 놀이를 한다고 상상하자.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동물 모형, 사람 모형을 담장 위로 들고 지나가는 것이다. 죄수는 횃불에 의해 투영되는 모형의 그림자만을 볼 뿐, 실재의 모형을 본 적이 없지. 인형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대사를 읽으면 죄수는 모형의 그림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인식할 거야.”
죄수는 동굴의 일그러진 벽면에 비친 어둠침침한 그림자를 사물의 실재로 착각하며 산다. 그 죄수가 바로 당신이다.
“이제 죄수의 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주자. 그리고 모형을 죄수에게 보여주자. 당신이 보아온 동굴 벽의 이미지는 모형의 그림자였음을 설명해주자. 죄수는 악을 쓸 것이다. 평생 그림자만 보아온 죄수는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고집할 것이다.”
사물의 그림자를 사물의 실재(reality)보다 더 실재적인(real) 것으로 고집하는 동굴의 죄수. 당신도 마찬가지다. 지금 플라톤은 우리가 진리라고 알아온 모든 관념에 대해 회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회의하라,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
“이제 죄수의 손목을 이끌어 동굴 밖으로 연결되는 가파른 통로로 안내해봄세. 햇빛이 찬연히 부서지는 곳으로 그의 몸을 끄집어낸 순간, 죄수의 눈은 너무 밝은 광채 앞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 거야. 그가 지상의 사물을 분별하려면 상당한 적응 기간이 필요해.”
여기에 나오는 적응이란 철학적 사유의 훈련을 말한다. 아무도 철학자로 타고나지 않는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 최소 5년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철학적 사유의 훈련을 의미한다.
“동굴의 어둠에만 익숙한 죄수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그림자겠지. 한참 후 호수에 비추어진 나무의 영상을 볼 수 있겠지. 다음으로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게 될 것이고. 이제 대낮의 태양을 볼 차례지. 태양이란 사계절과 세월을 만들어내고 모든 사물을 다스리네. 태양은 모든 사물의 원인이지.”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 속에 자신의 철학적 장치들을 주도면밀하게 배치해놓았다. 동굴 속은 현실의 세계이고 동굴 밖은 이데아의 세계다. 밤하늘의 달과 별은 이데아의 달과 별이다. 마침내 태양을 본다는 것은 이데아의 태양을 본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의 원인인 태양의 이데아, 너는 무엇이냐?
두 개의 선분
이제 동굴의 비유를 개념적으로 정리하자. 먼저 옆으로 금을 긋자. 플라톤에게 세계는 둘로 나누어져 있다. 금의 아랫부분은 인간의 눈과 귀로 감지하는 ‘가시계(visible world)’다. 금의 윗부분은 인간의 이성으로 인지하는 ‘가지계(intelligible world)’다. 세계는 가시계와 가지계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 그 유명한 플라톤의 이원론적 존재론이다.
존재론이 무엇인가? 영어로 ‘ontology’인데, 알고 보니 그리스어 ‘onto’는 영어로 ‘to be’란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철학적 견해가 존재론이다. 동양으로 치면 가시계는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이고 가지계는 형이상(形而上)의 세계다.
이제 위에서 아래로 금을 긋자. 왼편이 존재의 세계라면 오른편은 의식의 세계다. 가시계를 인지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sense, aisthesis)이다. 가지계를 인지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reason, nous)이다. 이렇게 인간의 인식 능력을 감각과 이성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플라톤의 인식론(epistemology)이다. 철학자의 이성은 가지계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인지하는 것이란다. 플라톤에게 생성과 소멸의 운명 속에 있는 가시계의 사물은 가짜다. 진짜는 이데아의 세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