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한 권의 고전 속에 내장된 가치를 인류가 발견하기까지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글귀를 읽고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까지 나에겐 또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여!’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고들 하는 오십의 고개에 이르러서야 그 ‘내장된 가치’가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다.
《논어(論語)》는 공자의 어록이다. 동시에 이 고전은 공자의 선대들이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이룬 정신적 성취의 보물단지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국가》는 플라톤의 선대들이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이룬 정신적 성취의 보따리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엉뚱하게 ‘시가 검열제’를 주장한다.
플라톤은 왜 ‘이상국가’에서 시인들의 작품을 엄격히 검열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그 이름, 호메로스가 빠지면 아예 《국가》라는 저작이 성립하기도 어려울 만큼 시인의 시를 수백 번 인용하고서 정작 ‘시인들은 믿을 게 못 된다, 언제 사고 칠지 모르니 감시 잘하라’며 시인을 의심한 플라톤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수백 년 동안 그리스의 아이들은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암송하면서 전설적 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그리스인의 세계관을 배우며 자랐다. 호메로스가 그린 영웅들의 자질들을 계발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인의 교육 목표였다. 시인 포프는 “호메로스의 작품은 모든 종류의 씨앗을 담고 있는 못자리와 같다. 사람들은 거기서 원하는 식물을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고 말했다. 또 철학자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카이사르가 로마 군대에 준 그 막대한 금품도 호메로스가 인류에게 준 선물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교과서였다. 《일리아스》는 인간이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인생독본’이었다. ‘시가의 검열’을 제창한 플라톤의 심리 이면에는 호메로스의 꺼지지 않는 인기에 대한 불같은 질투심이 있지 않았을까?
“파렴치하고 교활한 자여, 누가 당신 말에 복종하겠소?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오로지 당신 동생 메넬라오스의 원수를 갚아 당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함이었소. 그런데 당신은 이런 사실도 잊고 내 명예의 선물을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다니!”
《일리아스》는 으르렁거리는 두 영웅의 싸움으로 시작한다. “파렴치하고 교활한 자”로 비난받는 이는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고 아가멤논을 ‘파렴치한 자’로 몰아붙인 이는 여신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다. 그리스군의 대장이요, 사실상의 왕인 아가멤논에게 삿대질한 이는 아킬레우스였다.
전쟁을 개시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트로이를 함락하지 못한 것은 아가멤논 혼자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킬레우스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 영웅의 공동 책임이다. 역병이 돌았다고 한다. 느닷없는 전염병으로 그리스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가는 것 역시 아가멤논 개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점쟁이 칼카스의 혀를 빌려 사태의 책임이 아가멤논에게 있다고 추궁한 이는 아킬레우스다. 아가멤논이 제사장의 딸 크리세이스를 풀어주지 않고 욕보이고 있는 것이 사태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준다. 즉시 크리세이스를 배에 태워 아버지에게 보낸다. 이는 그리스군 공동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포기한 행위다. 그렇다면 문제 제기의 당사자인 아킬레우스도 그에 상응하는 희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었던 미녀 브리세이스를 내놓으라고 한다. 아킬레우스에게 일침을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로서는 억울했다. 아킬레우스는 12개 도시를 점령하면서 그 많은 보물을 아가멤논에게 바쳤고 아가멤논은 안전한 후방에서 보물을 받아 챙겼다. 그런데 자신의 애첩 브리세이스를 내놓으라고? 이 도둑놈! 순간 아킬레우스의 심장 속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대는 아킬레우스. 그는 아가멤논을 주정뱅이이자 겁쟁이라고 비난하고는 헥토르가 그리스군을 도륙해도 절대로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대단하다. 왕에게 주정뱅이라니. ‘주정뱅이’는 아가멤논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언어라고 하자. 그러나 ‘겁쟁이’라는 표현은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지금 아가멤논은 왕이나 다름없는 대장이고 아킬레우스는 일개 장군이다. 일개 장군이 상관에게 ‘겁쟁이’라고 욕했다면 볼 장 다 본 셈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일리아스》 동네에선 별 이변이 없다.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삿대질하고 대들고 치고 다투는 것이 저들의 관례였던가?
누구 앞에서든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거침없는 자유의 용사, 이것이 호메로스가 그려내고 있는 영웅의 모습이다. 강자의 횡포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것은 노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영웅의 기개다. 그리스의 아이들은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암송하면서 호메로스가 그린 영웅의 모습을 모방하고자 했다. 아킬레우스의 이 호쾌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영웅은 투쟁한다. 그리고 정복한다.
만일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그리스인의 가치관과 특성에 영향을 미쳤다면 아가멤논의 부당한 요구에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대항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이 그 예일 것이다. 불의 앞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맞서라. 부정(negation)은 자유인의 권리이자 덕목이다. 철학의 자유를 포기하면 방면시켜주겠다는 아니토스의 제안을 비웃어버린 소크라테스의 선택에도, 알고 보면 《일리아스》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부정의 정신은 모든 권위에 맞서고 대든다. 저항하고, 투쟁하며, 창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부정했다. 다시 갈릴레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정한다. 이제 뉴턴이 나와 갈릴레이를 넘어선다. 근대과학이 완성된다. 그렇게 과학의 역사는 종국에 이르렀던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은 없다’며 뉴턴을 뒤엎어버렸고 양자론의 과학자들은 다시 아인슈타인을 부정해버린다. 부정의 부정. 지난 2500년간 서양인들이 보여준 정신사의 특성이다. 부정의 정신이 서양 정신의 한 특질이라면 부정의 원조는 호메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