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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플라톤과 충돌했나?

<철학 콘서트>

by 더굿북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한 것은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었다. 기원전 367년 마케도니아 출신의 영민한 소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할 당시 플라톤처럼 정통 아테네인이 아니었다. 그리스 북쪽 변방 출신의 촌놈이었다.


스승 플라톤은 인생의 풍찬노숙을 다 겪은 노인이었다. 61세의 플라톤은 이 소년을 보고 뭐라고 말했을까? 인생의 간난신고를 다 겪은 철인이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은 학생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난 것은 세계 철학사에 기록될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공자가 10대의 소년, 자하와 자장을 만난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으나 아무래도 후자는 전자에 비교할 것이 되지 못한다. 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을 넘어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승이 가리키는 하늘과 제자가 가리키는 땅을 대비하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싸움이 전개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미의 배를 발로 차는 배은망덕한 망아지’로 비유하는 때도 있다. 라파엘로 역시 스승과 제자 사이에 화해하기 힘든 사상 투쟁이 전개된 것처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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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말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따르는 열정적인 제자였다. 여든을 넘긴 플라톤이 유명을 달리하는 그 날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에서 줄곧 공부했다. 17세에 입문하여 스승이 타계하는 그 날까지 무려 20년 동안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과 다른 철학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 것은 소아시아 여행 이후부터였다. “친구도 소중하고 진리도 소중하지만, 친구와 진리가 다르다면 진리를 존중하리라(《니코마코스 윤리학》 중에서).” 이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는 스승 플라톤이었다. 스승과 진리가 충돌할 때 어느 편을 따를 것인가? 동양의 선비들은 스승을 따랐지만, 서양의 현자들은 진리를 따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부한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 그 자체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 못지않게 세계의 보편자를 추구한 철학자였다. 그렇다면 뭐냐? 그가 스승의 사상을 거부한 것은 이데아 그 자체가 아니었다. 견해의 차이는 이데아와 사물의 관계, 다시 말해 보편과 개체의 관계를 둘러싼 논점에서 벌어졌다.

플라톤에게 참된 존재는 이데아였다. 개개의 원이 아닌, ‘원의 이데아’가 참된 존재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참된 존재는 구체적인 사물, 즉 개별자였다. 플라톤에게 보편자를 떠난 개체는 맹목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개체를 떠난 보편자는 공허한 것이었다. 플라톤에게 개체는 보편자의 특성을 나눠 가지는 것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편은 개체 속에 실재할 때만 의미가 있다.

모란꽃은 아름답다. 모란꽃의 ‘아름다움’은 모란꽃으로부터 독립된 실체인가, 아니면 모란꽃의 한 특성인가? 플라톤은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설정한다. 이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모란꽃에 나눠 들어간 것으로 생각한다. 스승 못지않게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아리스토텔레스. 하지만 사물을 대하는 그의 눈은 냉철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란꽃의 아름다움은 모란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모란꽃의 한 속성이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선생님, 하나하나의 모란꽃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플라톤의 선배 피타고라스는 사물의 양적 특성을 표현한 ‘수’를 사물로부터 독립시켰다. “만물은 수로 이루어졌다.” 피타고라스의 우주관에서는 ‘수’가 세상을 독재했다. 피타고라스의 철학적 연출을 지켜본 플라톤은 ‘수’보다 더 강력한 군주를 등장시켰다. ‘이데아’다.

본디 사물의 ‘본모습’을 의미했던 ‘이데아’는 플라톤의 철학 무대에서 모든 사물을 호령하는 왕이 된다. 이어 플라톤은 이데아보다 더 강력한 이데아, 이데아의 이데아, 즉 ‘선(goodness)의 이데아’를 무대 위로 올린다. ‘선의 이데아’가 신적 지위로 등극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연출한 ‘이데아’의 독재를 끝내고 존재하는 사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발언을 하는 사물의 민주주의 시대를 연다.

그는 《범주론》에서 10개의 ‘범주’를 도입한다. 어떤 한 속성만으로 사물을 정의하지 않는다. 실체와 관계, 양과 질, 장소와 시간, 위치와 상태, 능동과 수동, 이 10개의 범주를 통해서 사물을 설명한다. ‘세상은 물이야’라고 했던 탈레스, 혹은 ‘세상은 불이야’라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처럼 하나의 아이디어로는 세상의 복잡성을 설명해낼 수가 없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10가지 범주를 쓰면 모든 사물을 완벽하게 서술해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는 독재자가 없다. 그는 플라톤이 하늘 저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간 철학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린 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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