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페이크북>
취직하기 힘든 시대다. 하고 싶어도 못해 보는 직상생활 또는 하기 싫어도 그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후배 세대에게 일부 책임감을 느낀다. 또한 곧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입해야 하는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도 참 안타깝다.
내가 취업을 했던 1990년대 중반은 대졸자에게 취직이란 단어는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니었다. 각 회사들은 가을 정기 공채 철마다 학교에 들어와서 취업 설명회를 하고, 제발 우리 회사에 입사하라며 입사 원서를 각 학과 사무실에 뿌렸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다. 그만큼 취직이 쉬워서였는지 그 당시 대졸 예정자들에게 취직은 졸업 후 항상 제일 나중에 선택하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하다가 안 되면 취직이나 하지 뭐’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대졸 예정자에게 취직할 곳은 널려 있었다. 당시엔 벤처 창업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갈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 대학원 학력은 취직을 할 때, 경력으로 인정해 줄 뿐 아니라 연봉도 기존 대졸자보다 조금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또는 고시나 공무원 경쟁률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진로에 대한 선택지가 다양하니 당연히 취업 경쟁률이 느슨한 것이 당연했다.
결국 예전엔 인기가 없어 마지막 선택지로 남았던 ‘취업’이 이젠 진로 선택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지가 되어 버렸다. 백 년을 살아야 하는데 겨우 이십 년 만에 진로 선택지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남은 인생 동안 또 얼마나 큰 변화의 물결이 밀려올지 우리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 현실에 살고 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어쩐지 서글프다.
취업의 바늘구멍을 힘들게 뚫은 직장인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취업했지만 대체로 입사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정신적 고비가 오게 된다. ‘내가 이거 하려고 취업했나? 자괴감이 든다. 나랑 맞지 않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앞이 안 보여, 비전이 없어, 너무 지쳐서 그냥 좀 쉬고 싶어’ 등의 갈등이 엄습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그저 경영 연습이나 해 보고 사회 경험을 위해 취업한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대부분의 ‘흙수저’들은 직장이란 항상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다. 그나마 취업에 성공하여 몇 년 직장생활을 경험한 우리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마치 미로에 빠진 쥐 신세가 된다. 미로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간간이 치즈가 눈에 보인다. 그걸로 배를 채우지만 왠지 모를 허기가 남는다. 미로를 빠져나갈 길을 찾기도 힘들지만 출구를 찾아도 매월 꼬박꼬박 내 앞에 놓이는 치즈 때문에 용기 있게 미로 밖으로 나서지도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늙는다. 결국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대장장이 다이달로스가 만든 월급쟁이의 미궁에 갇힌다. 그 미궁엔 인간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르스가 있다. 미노타우르스를 때려잡을 수 있었던 용사 태세우스의 용기와 힘이 없다면 우리는 여간해선 직장생활의 미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정말 딜레마다. 입사하기조차 힘든 직장에 막상 들어가도 직장인은 항상 그곳에서 탈출을 꿈꾼다. 가진 것 없이 흙수저로 태어나 이 나라에서 사는 것 자체가 다이달로스의 미궁 속 생활이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의 미궁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모든 것을 바쳐 거기서 장렬하게 죽는다. 아니면 신화 속 태세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리아드네 공주로부터 실타래를 얻고 실천적 계획을 바탕으로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아무 대책도 없는 중도 포기는 논외로 하자. 그건 수많은 취업 준비생에게 책상 한 자리 기회를 없애는 일이라 게임의 규칙에 어긋난다.
미로를 빠져나가게 해 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바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새끼 백조인지도 모르고 오리들 품에서 평생 자신이 오리라고 생각하며 살기도 한다. 이런 경우 직장에서의 일이 잘 풀리거나 재미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흥미검사나 적성 검사 따위로는 부족하다. 흥미나 적성 검사 또는 성격 검사는 몇 가지 틀을 만들어 놓고 그 범주 안에 사람을 구분 짓는다. 그 많은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사는데 내가 남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답을 체크하는 자기 보고식 지필 검사는 참고는 하되 맹신은 말자.
영화에서 찾은 밥벌이 가이드
상처 받은 정신의 치유 과정을 그린 영화
‘경험을 통해 나를 제대로 알기’라는 주제로 글을 적으면서 문득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 생각났다.
중년을 훌쩍 넘겨서야 비로소 느껴 보는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제대로 직면하는 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지만 너무 흔한 말이라 어쩐지 잘 와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피지기’ 하지도 못하며 또한 ‘백전백승’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