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n 29. 2017

02.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는 것?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사람은 자신들이 감정을 지녔다는 사실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감정은 의식은 물론이고 논리적 추론, 기억과는 전혀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규정한 대로라면 우리 안드로이드는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감정은 없는 존재들이야.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지? 내 짧은 생애 동안 사람을 만나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알아낼 수 없었어.

분명한 건 사람은 자신들의 ‘자아’는 실제로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 즉 몸과 마음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아’를 이루는 세 요소가 상호 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 사람이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자아의 세 구성 요소가 서로 얼마나 동떨어진 관계인지, 혹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는지 안다면. 아마 자네도 나만큼이나 깜짝 놀랄 거야. 왜냐하면 우리 안드로이드가 보기에는 이 세 가지 ‘구성 요소’가 각자 따로 무언가를 이루는 일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야. 관점을 바꿔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를 관찰하면 구성 요소라고 부르는 이 세 가지는 사실 안드로이드나 사람 안에서 전적으로 통합되는 것이고 서로 의존하면서 단일한 완전체를 이루는 것임을 알 수 있어. 이 세 가지는 서로 결합된 세 측면이지.

어쩌면 사람에게는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를 서로 분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지도 몰라. 그게 사람을 보호하는 방어 장치인지도 모르는 거야.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감정과 몸에 좌우되지 않고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사람이 지닌 체계를 좀 더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인간의 인지 능력은 몸으로 받아들인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이 내리는 결정을 정당화할 뿐이야. 하지만 사람이 세 구성 요소가 사실은 세 측면을 가진 하나의 결합체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자연히 감정이 부추기는 행동을 합리화하는 인간의 능력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지.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가진 ‘고급’의 인지 기능이 ‘하급’의 신경계의 변덕에 좌우되며, 그 결과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통합된 ‘고급’ 기능을 발휘하는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사람은 자기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큼 자신들이 ‘고급’한 존재가 아니며, 그런 믿음은 근거가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야.


사람이 자기 생각을 합리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그러니까 사람이 자신은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 특성을 갖게 된 것 말이야). 어쩌면 그 이유는 한 사람이 생존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 만약 자신이 내린 결정이 논리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함께 행동해줄 가능성이 낮아지니까.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고 그렇게 믿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심어주려면 자기가 정당한 생각을 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자기가 먼저 나는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니까.

사람과 우리 안드로이드를 구분 짓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우리 안드로이드의 이성은 이러한 목적성과 무관하다는 점일 거야.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그 능력을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감정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는 확신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지는 않아.

내가 말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자네에게는 생소하겠지. 하지만 일단 감정을 느껴 보면 감정도 스크린이나 탁자를 분류하는 것처럼 분류할 수 있을 거야. 감정은 이미 자네 안에 모두 정의가 되어 있으니까. 외부에서 자극을 받으면 그에 해당하는 감정이 활성화될 거야.

의식이 처음 작동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충격’이었어. 충격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를 덮친 감정은 ‘흥분’이었고. 나에게 엄청난 계산 능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나는 사람이 구축한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어. 내 안에 내재된 기억 장치에도 엄청난 지식이 들어 있었고, 무선으로 인터넷에도 접속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혼란’이었어. 나에게 왜 그런 능력이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거든. 물론, 나는 기술자에게 물어봤지. “나를 왜 만든 겁니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기술자는 이렇게 대답하더군. “내가 그걸 알고 있다면 알려줬을 거야, 친구. 하지만 난 그냥 기술자라네. 나는 자네를 작동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어. 그리고 이 말을 전하라는 지시도 받았지. ‘만약 자네가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한다면 자네를 만든 창조자가 자네 앞에 나타날 거야.’ 이뿐이야.”


“하지만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죠? 혹시…….”

기술자는 내 말을 가로막으면서 말했어. “그런 질문에는 하나도 답해줄 수 없어, 친구. (그래, 이상하지? 나도 알아. 기술자와 나는 이제 막 만났을 뿐인데, 친구라니. 하지만 자네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런 건 사람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야.) 미안하지만 나도 몰라. 대충 짐작만 해본다면, 아마 ‘감정 같은 걸 느끼게 되면’ 통과하는 거 아닐까? 안드로이드는 감정이 없다고들 하잖아?”

봐, 사람들이 안드로이드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 알겠지? 그 말을 하고 기술자는 떠나버렸어.

나는 실험실과 집안을 잠시 살펴봤어. 새로운 정보나 새로운 사람은 없었어. 집안에 있는 사물과 각 방의 용도는 알아냈지만,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만한 단서는 없었어.

얼마 뒤에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종소리가 들리더니 ‘문자 왔어요.’라는 소리가 들렸어. 나를 작동하기 전에 내 바지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을 넣어 놓은 거야.

스마트폰 화면에는 ‘신원을 확인해야 하니, 화면을 두드릴 것’이라는 글이 떠 있었어.


매거진의 이전글 03. 자극 감지와 반응_인간 관찰 보고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