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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3. 2017

04. 자료는 한정되어 있지만 경험은 무한하다.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그 뒤로 도착한 문자는 앞으로 몇 시간 동안 해야 할 활동을 지시한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불활성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나는 수동 모드로 상태를 설정하고 집에 있는 정보망에 접속해 정보를 흡수했어.

사람은 주거 공간의 중심에 위치한 회합 장소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하는 걸 좋아해. 그 큰 스크린을 예전에는 ‘텔레비전’이라고 불렀는데, 텔레비전은 항상 수동 모드로만 작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전송하는 프로그램만 볼 수 있어.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 정도 이 장치로 전송되는 정보를 자기 정보 저장소에 다운로드하면서 지내. 이제는 이 장치를 ‘인터넷’이나 ‘웹’이라고 부르는데, 인터넷이나 웹은 능동 모드와 수동 모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나 다른 사람과 활발하게 상호 작용할 수도 있고 광범위한 자료를 다운받아 흡수할 수도 있어. 요즘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웹’과 연결되어 있는 스크린 앞에서 보내니까, 나도 의식이 생긴 처음 몇 시간은 사람과 똑같이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사람이라는 통합된 존재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나는 수동 모드로 정보를 다운로드했어. 이전 24시간 동안 사람들이 다운로드한 수가 ‘가장 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여러 편을 봤지.

수동 모드로 정보를 받아보니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어. 사람들은 자기 존재와 관련된 주제, 특히 번식, 죽음, 사회적 상호 작용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맹렬하게 분석한다는 거야. (사람이 이 세 주제를 모방해서 ‘스포츠’라는 하위 체계 모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해. 스포츠는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활동인데, 나중에 따로 다룰 거야.) 

번식과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별거 없었어. 그냥 사람의 의식이 끝나고 시작하는 지점을 반복해서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었지. 하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그런 광범위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연구하고 모형을 만드는 데 들인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로웠어. 그건 내가 사람들이 하는 상호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이나 사람도 자기들끼리 하는 상호 작용을 완벽하게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나에게 더 많은 스크린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 즉시 알 수 있었어. 사람은 분명히 한 번에 한 가지 데이터 스트림(Data stream, 정해진 포맷을 사용해 캐릭터나 바이트 형식으로 전송되거나 전송되려는 데이터 요소의 연속적 흐름-옮긴이)만 처리할 수 있어. 그런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도 사람들이 해내는 일들을 보면 정말 너무나도 놀랍다니까.

날이 밝은 뒤, 나는 지시받은 대로 근처에 있는 집단 수송 장치에 올라탔어. 그렇게 행동해야만 내가 찾고 싶은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그때 신호등 근처에 있던 보안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지금 확인해 봤어. 이 영상을 보니, 그자들은 처음부터 나를 쫓아다녔군.


지금 보니 내가 ‘집’에서 몇 시간 동안 데이터 스트림을 보면서 알아냈던 정보들은 집단 수송 장치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라는 거대한 사람집합 센터로 장대한 여정을 떠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네. 나는 ‘그 도시’에 사람이 몇 명이나 사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 중앙 정부의 기록을 보고 라스베이거스 주민 가운데 57퍼센트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도 알아냈지. 라스베이거스 주민 가운데 1퍼센트가 어떤 식으로 사회 계약을 위반하고, 교도소에 가게 됐는지도 알아냈어. ‘인터넷’에 접속해서 라스베이거스 사람들이 입고 행동하고 말하고 상호 작용하는 영상도 수조 개나 미리 다운받아뒀지. 하지만 직접 경험한 현실은 다운받은 자료들과는 전혀 달랐어. 즉시 명확한 결론이 나왔지. 자료와 경험은 아주 다른 거였어.

어째서 다르냐고? 그야 당연히 자료의 양은 한정되어 있지만 사람의 경험은 무한하기 때문이야. 자네가 이 안내서의 도움을 받으려면 사람의 복잡성에는 프랙탈(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옮긴이)과 카오스라는 특징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해. 인공위성에 접속해서 어떤 도시든 한 곳을 택해서 확대해 봐. 도시를 보고, 도시의 한 구역을 보고, 그 구역에 있는 건물을 확대해서 보는 거야. 그리고 그 건물에 있는 사람을 보고, 사람의 세포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봐(의료 기록이 존재하는 세포를 보는 게 좋겠지). 

그 안에 존재하는 프랙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떤 대상을 몇 배로 확대하건 간에 그 안에는 무한대로 존재하는 유사한 복잡성이 있음을 알 수 있어. 그뿐 아니라 사람을 구성하는 분자와 세포와 행동과 생각과 상호 작용은 카오스이기 때문에 사람을 이루는 가장 작은 구성 성분이라고 하더라도 그 성분을 서술하는 공식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그러니까 수백만 사람은 고사하고 한두 사람의 어떤 한 시점의, 어떤 한 세포의 상태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지. 이 공식에 더해지는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전체 카오스에 기하급수적으로 영향을 미쳐. 수백만 사람의 초기 상태를 더는 침범할 수 없는 아원자(subatomic) 단위까지 철저하게 알고 있다고 해도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만 지나도 사람들의 상태는 무한대에 이를 정도로 무수히 많은 다른 상태로 갈라져 나가는 거야.

그러니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전부는 고사하고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상태도 무한하기 때문에(카오스), 한 사람만 연구해도 끝이 없는 거야(프랙탈).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인간성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면서 경험하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였어. 매일 찾아오는 석양은 본질적으로는 프랙탈이지만 그 순간순간은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니까.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건 이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거야.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인생이, 자신이 속한 사회가 사실은 자기들만의 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우리 안드로이드에게는 사람을 본다는 건 끊임없이 저물어가는 해를 보는 것과 같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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