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지중해의 보석 니스에서 펼쳐진 색채의 마술

<잠에 취한 미술사>

by 더굿북
%E9%87%89%EB%9A%AE%EC%9C%B4%E7%A7%BB%EF%BF%BD.jpg?type=w1200


마티스 <시에스타, 니스>, <꿈>

미술사에서 베르메르처럼 여성을 중점적으로 다룬 화가들은 매우 많다. 앙리 마티스도 그런 화가들 중 하나인데, 그는 주로 아내와 딸을 그렸고 여러 여성 모델들을 고용해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이런 경향은 마티스가 1917년 말에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Nice)로 온 이후에 더욱 강해졌다. 1921년에 그는 니스의 구시가에 작업실을 얻어서 마치 작은 극장처럼 꾸몄다. 그 무대 위에서 모델들이 자세를 취하면 분위기에 따라 배경이 되는 무대장치를 바꾸면서 그림을 그렸다. 오랜 기간 계속된 니스 시절에 그린 작품 중에는 잠자는 여인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 <시에스타, 니스>와 <꿈>을 예로 들 수 있다.

앙리 마티스, <시에스타니스>, 1922



시에스타(siesta)는 스페인어로 점심식사 후에 자는 ‘낮잠’을 뜻한다. 낮잠은 보통 ‘꿀맛 같은 단잠’으로 묘사된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밀려오는 나른함과 졸음을 견디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마티스의 1922년 작 <시에스타, 니스>를 보면 한낮의 나른한 분위기가 그림 전면에 흐른다. 화면은 실내임에도 어둡지 않고 전체적으로 매우 화사하다. 화병과 책이 놓여 있는 책상 앞에 한 여인이 소파에 반쯤 누운 편안한 자세로 낮잠을 즐기고 있다.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맑은 하늘과 야자수들이 보인다. 그 창문으로 싱그러운 바람이 들어와 꽃잎과 여인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는 듯하다. 게다가 벽지, 양탄자, 소파의 장식적인 무늬들도 부담 없이 느슨하게 공간을 꾸며주고 있다. 이런 마티스 그림의 장식성은 니스 시절에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마티스 그림의 밝은 분위기는 베르메르의 <잠이 든 여인>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베르메르가 그린 실내의 분위기는 빛이 은은하게 퍼져 있지만 마티스 그림에 비하면 꽤 어둡기 때문이다. 이는 대체로 어둡게 그려진 옛날 그림과 분방한 현대 회화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작품이 제작된 지역의 기후 역시 실내의 밝기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맑은 날씨가 많지 않은 북유럽의 네덜란드에 비하면 지중해 연안 도시인 니스의 기후는 눈부시게 밝고 온화하다. 마티스는 주로 여름엔 파리에서 보내고 가을부터는 니스에서 작업을 했는데, 니스로 돌아오는 이유에 대해 1월의 투명한 은빛 햇살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마티스의 1940년 작 <꿈>은 탁자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08-2_%EC%95%99%EB%A6%AC_%EB%A7%88%ED%8B%B0%EC%8A%A4%2C_%EA%BF%88%2C_1940.jpg?type=w1200 앙리 마티스, <꿈>, 1940


마티스가 구한 하얀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모델에게 입히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05년을 전후해 강렬한 색과 거친 터치로 야수파로 불리게 된 마티스가 꾸준히 단순성과 장식성을 추구해오면서 두 요소를 조화롭게 통일시킨 시기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여인의 머리와 등 그리고 소매의 무늬들이 서로 경쾌하게 호응하며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색채 역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강약의 리듬을 가진 선의 맛, 화면을 구성하는 형태와 색채, 이 모든 것이 조화롭다. 언뜻 보기에는 마티스가 일필휘지로 그려낸 것 같지만, 사실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수많은 드로잉을 한 끝에 잠자는 여인의 형상을 얻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대충대충 그려진 것으로 보일까봐 걱정했다. 그리고 이 형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단순하고 함축적인 선으로 그리기를 바랐다. 물론 그런 회화의 경지는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마티스는 그 경지에 이르렀다. 단순하고 명료하면서도 편안한 그의 그림이 그것을 증명한다.

<꿈>이 제작된 1940년은 마티스가 70살이 되는 해였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이혼한 후에 러시아 출신으로 자신의 모델이자 비서인 리디아와 생활하고 있었다. 2차 대전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지만 그는 프랑스를 떠나지 않고 니스에서 작업에 매진했다. <꿈>과 함께 마티스의 니스 시절도 서서히 막을 내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04. 태연자약(泰然自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