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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03. 2018

05. 중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홍치

<중국 디자인이 온다>



홍치(红旗)는 마오쩌둥(毛泽东) 전 주석의 지시로 개발된 중국 자동차 브랜드로 역대 주석들이 관용차로 이용하면서 유명해졌다. 홍치라는 이름은 중국 오성홍기의 붉은 깃발을 의미하며 로고의 글씨 역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친필로 쓰인 것이다. 




중국 럭셔리 세단을 대표하는 홍치의 최신 모델은 10억 원을 호가하며 벤틀리나 롤스로이스보다 비싸 중국 내에서도 간부 외에는 쉽게 타지 못하는 차로 알려져 있다.

중국 권력자들의 대표적인 자동차인 홍치의 역사는 중국 민족 자동차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에는 자체적인 기술로 제작한 자동차가 전무했고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차를 수입하던 실정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오쩌둥 전 주석은 1956년 ‘10대 관계(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이후의 국가 건설 정책에 관한 이념과 구상에 대한 발표)’를 발표할 때 “언젠가는 우리가 생산한 승용차를 타고 대회에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본격적인 자체 자동차 개발의 포문을 열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58년 <동펑(东风)>이라는 자동차가 개발되며 시운전에 성공하였으나 작고 가벼운 승용차에 불과하여 관용차와 의전차량으로는 쓸 수 없었다. 그러자 <동펑>이 등장한 지 한 달 반이 지나고 홍치의 새로운 개발 계획이 세워졌다. 홍치는 미국 크라이슬러의 럭셔리 세단 모델인 <임페리얼 C69>를 바탕으로 베이징의 고궁, 베이하이北海, 이화원 등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 예술과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술은 서구의 것을 따르더라도 외형만큼은 중국의 전통을 반영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다섯 차례의 시운전을 거쳐 드디어 홍치의 완성 모델인 <CA72>가 탄생하였다. 10주년 건국기념일 때 마오쩌둥 전 주석이 <CA72>를 타고 퍼레이드를 펼쳤으며 1960년에는 라이프치히 국제박람회에 참가하여 국제적인 호평을 이끌어냈고 세계 자동차 연감에도 등재되었다. 본격적으로 중국 자동차가 세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홍치를 바라보고 있는 마오쩌둥 전 주석


홍치를 타고 있는 시진핑 주석



1965년에는 <CA72>를 개조한 2세대 모델 <CA770>이 탄생하였다. 이 모델은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홍치 시리즈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홍치의 대표적인 모델로 손꼽힌다. <CA770>은 최고급 나무와 장식을 사용했고 내부는 중국 전통 문양의 마감재를 사용하여 중국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또 차체 길이 5.83미터에 5600CC의 V8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속도 165km/h를 자랑했다. 그야말로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슈퍼카였던 셈이다. 이러한 최고급의 사양과 크고 긴 외형 덕분에 중국에서는 이 모델을 일명 따홍치(大紅旗)라고 불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바티스타 파리나는 “동방 예술과 자동차 기술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극찬했다.

홍치 2세대 모델 



더욱 놀라운 사실은 <CA770>의 디자인을 맡은 수석 디자이너, 지아이엔량(贾延良)의 나이가 고작 24살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가장 우수한 미술교육기관 중 하나인 중앙공예미술학원(현 중앙미술학원) 출신이며, 졸업작품으로 베이징 시내버스 디자인을 하며 운송 디자인계에서 유명세를 탔다. 졸업과 동시에 홍치를 제작한 이치(一汽) 자동차 회사에 입사하였고 홍치의 2세대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되었다.

당시 홍치의 1세대 디자인에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했다. 차체 외장에 고궁의 창문, 중국의 길상문 등을 모티브로 사용하였지만 이는 미국 크라이슬러 외형에 중국적인 요소를 더한 것에 불과했다. 이에 홍치의 2세대 디자인 팀은 기존의 디자인을 전면 개편하면서 럭셔리 세단의 위상을 잃지 않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당시 구소련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홍치에서 전원 철수하면서 기술 도면이 사라진 데다 남아 있는 디자인 팀 인원도 고작 5명 뿐이었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중국 공산당 원수였던 천이가 당시 중국에 한 대밖에 없던 벤츠 <600 Pullman>을 이치에 기증하면서 홍치 디자인 팀은 활력을 얻었다. 그리고 홍콩에서 롤스로이스를 한 대 구입하며 럭셔리 세단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지아이엔량이 이끄는 홍치 2세대 디자인 팀은 본격적인 디자인에 들어가기 앞서 명나라 가구들을 먼저 분석했다. 가구들의 조형적인 디테일, 짜임새, 구성, 재료, 인체공학적 요소 등 많은 부분에서 자동차에 적용할 요소들을 추출하였고 이를 자동차 디자인에 도입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CA770>의 프로토타입에는 차의 사이드라인, 차문 손잡이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중국적인 요소가 적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형적인 완성도에서도 지아이엔량은 양보가 없었다. 그는 홍치의 완벽한 비례미를 위해 <CA770>의 벨트라인(옆면 유리창 아래의 라인)이 100mm 더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적인 이유로 반대 의견들이 나오자 지아이엔량은 회사 대표에게 직접 달려가 자신의 주장을 가감 없이 내세웠다. 이에 대표가 프로토타입을 살펴보았고 벨트라인을 80mm까지 내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홍치의 2세대 디자인은 지아이엔량의 구상이 거의 완벽하게 표현된 디자인으로 탄생되었다. 당시 <CA770>의 슬로건은 “10년은 뒤쳐지지 않는다(十年不落后)”였다. 이 슬로건답게 오늘날에도 <CA770>은 조형적 완성도 측면에서 매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한편 중국에 개혁 개방의 물결이 시작되고 해외 자동차와 합작한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홍치의 인기는 다소 시들해졌다. 당시 홍치는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애용하던 고급 차량이었지만 다른 고급 세단들이 등장하면서 점점 대중에게 잊혀져 갔다. 그러자 2012년 홍치는 새로운 반격을 시작했다.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대형 럭셔리 세단 <H7>을 선보이며 최고급에서 한 단계 내려가 고급 소비자들을 공략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미국의 자동차와 합작한 자동차들이 고급 세단 시장을 선도하고 있었고 홍치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참담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홍치  2012년식



그로부터 5년 뒤, 2017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홍치는 젊은 세대를 공략한 중형 세단 <H5>를 선보였다. 차량의 전면과 후면, 핸들 중앙에는 중국의 국기를 형상화한 홍치의 로고와 마오쩌둥 전 주석의 필체가 적힌 로고가 삽입되어 트렌디한 외관에서 드러나는 기품 있는 위상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모델들과 달리 매우 날렵하고 세련된 외관을 갖추었고 후면도 최근 유행하는 해치백 스타일로 디자인되었다. 또 실내를 모두 붉은색으로 장식했던 기존의 홍치 모델들과 달리 검은색 배색으로 활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변속기 디자인, 버튼 스마트키, 전자 브레이크, 자동 주차, 통풍 시트 등 기능면에 있어서도 최신 자동차의 것을 따랐다. 이러한 홍치의 파격적인 변신에 대중들은 다시금 홍치를 주목했고 중국 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H5>의 성공과는 별개로 중국에서 홍치의 디자인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홍치는 중국 스타일의 자동차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초기 중국 공업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는 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었지만 다시 새로운 디자인으로 돌아와 대중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한 홍치. 마오쩌둥 전 주석의 의전차량에서 중국 대중의 국민차량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그들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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