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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08. 2018

04. 편지를 쓰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미래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면
비록 몸은 사라져도 마음은 평온해진다.
  
메구미 재택 클리닉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분들에게 ‘존엄 치료(dignity therapy)’를 하고 있습니다.
  
존엄 치료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 등 아홉 가지 질문을 활용하여 환자분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도록 하는 치료 기법입니다.
  
그리고 질문의 답을 기초로 하여 스태프가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환자분과 함께 완성하죠.
  
‘존엄 치료’에는 두 가지 큰 목적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은 환자분이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억을 되살려야만 하죠. 그리고 혼자서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서서히 윤곽이 뚜렷해지게 마련이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인생을 긍정할 수 있게 되는 분이 많을 겁니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줄곧 ‘죽고 싶다’고 울부짖던 환자분이, 존엄 치료를 받은 직후부터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그때 죽지 않길 잘했다’고까지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환자분도 질문을 통해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했던 게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를 생각함으로써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이나 친구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저 대화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편지를 쓰면서 자기 생각에 가까운 내용이 되도록 수정을 거듭하는 동안에 인생의 의미, 소중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더 명확해지는 것이죠.
  
존엄 치료를 하는 두 번째 목적은 환자분이 쓴 편지를, 남은 분들이 마음의 버팀목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어 하는가.
  
그것이 명확히 전해지면 남은 분들도 ‘고인은 정말 행복했을까?’, ‘후회나 아쉬움은 없을까?’ 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거나 괴로워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존엄 치료는 인생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사람뿐만 아니라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거나 자신, 혹은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을 노트에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래에 질문 내용을 소개할 테니 여러분도 꼭 한 번 해보세요.
     
     
존엄 치료에 사용하는 아홉 가지 질문


• 당신의 인생에서 특히 기억에 남거나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당신이 제일 생기 있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 자신에 대해 소중한 사람이 알아주거나 기억해줬으면 하는 일이 특별히 있나요?
  
• (가족, 직업, 지역 활동 등) 당신이 살아오면서 맡은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왜 그것이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이루었다고 생각하나요?
  
• 당신이 이룬 가장 중요한 성취는 무엇인가요?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가요?
  
• 소중한 사람에게 꼭 말해두거나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나요?
  
• 소중한 사람에 대한 당신의 희망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 당신이 인생으로부터 배운 것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남기고 싶은 조언이나 깨달음의 말은 어떤 것인가요?
  
• 장래에 소중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남기고 싶은 말이나 당부 등이 있나요?
  
• 이 영구적 기록을 남기면서 더 넣고 싶은 사항이 있나요?
  
출전: 고모리 야스나가(小森康永), 하비 맥스 초치노프(Harvey Max Chochinov), 『존엄 치료: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자』
  
그대는 알까
며칠 뒤 우편함에 담길 사연과
손마디 끝에서 묻어나온 떨림
그 흔적이 흥건하게 젖은
부끄러운 한 사람의 끄적거림을
_윤종환, <우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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