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알고 지내는 한 집안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 그 집 식구들은 대부분 고학력에다 일류 기업에서 임원을 맡는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었고, 장애와는 전혀 무관한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장애아가 생겼다는 사실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꽤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가족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아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었다. 뭔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던 할머니도 소탈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등,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아이가 여섯 살쯤 됐을 무렵, 우연히 가족과 함께 있는 아이를 볼 기회가 있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인사한 아이는 내가 입고 있던 케이프를 보고 “멋져요!”라며 눈을 빛냈다. 벗어서 건네주었더니 작은 어깨 밖으로 자꾸 미끄러지는 케이프를 두른 채 빙빙 돌며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가족도 나도 모두 온화한 공기에 둘러싸였다. 그때 저절로 ‘이 가족에게 천사가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의 일체감과 그 순간의 행복했던 분위기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최근 인간의 가치를 학력이나 수입, 생산성, 나이, 외모 등으로 판단하는 풍조가 현저해졌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처럼 세속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다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사람’이 아닌, ‘자연’이라는 더 큰 척도에 의한 가치, 혹은 역할이 아닐까?
그 아이는 존재 자체로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그때까지 협소했던 가족 구성원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더 넓고 깊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해준 것 같았다. 가족들도 자신들의 변화를 깨닫고 새로운 가치관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
장애로 인해 겪는 생활상의 어려움이나 갈등은 비장애인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실제로 돌봄의 현장, 의료 현장을 체험하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것을 체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인간의 가치가 있다.
어떤 처지에 있건,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 세상에 필요한 역할이 있다. 물론 그 역할을 깨닫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얄팍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가치가 없다”는 둥, “세금 낭비”라는 둥 하며 쉽게 타인을 공격하곤 한다. 그러나 이때 가치가 ‘없다’는 건 아직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곱씹으면서 그래도 포기하거나 내팽개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돌봄 노동이나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와 가족을 보며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