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남자의 향, 여자의 향, 와인의 향 (마지막 회)

<슬픈 날엔 샴페인을>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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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와인에서 풍겨 나오는 향은 많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기와 접촉하면서 신비한 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욕망과 느낌이 축적되어 있는 무의식의 기억 창고를 열어주는 것이다. 흙, 짚단, 버터, 검은 딸기, 삼겹살, 풀, 약초, 가죽, 계피 같은 표현은 성적인 얘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막상 알코올의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인 효과가 더해졌을 때는 그 냄새가 바뀌면서 아무리 마음에 안 들었던 상대라도 김태희나 권상우 같은 모습으로 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이 꼭 비싼 와인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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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가능성은 당신과 상대방 사이를 연결하고 반응하는 화학적 메시지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 화학적 신호를 페로몬(Pheromone)이라고 부른다. 페로몬은 그리스어로 ‘운반하다’라는 뜻의 ‘pherein’과 ‘자극하다’라는 뜻의 ‘hormone’의 합성어로, 같은 종의 동물들이 서로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화학적 신호를 말한다. 체외 분비성 물질이며, 경보 페로몬, 음식 운반 페로몬, 성적 페로몬 등 행동과 생리를 조절하는 여러 종류의 페로몬들이 존재한다.

최근의 연구조사와 약간 과장된 미국의 어느 마케팅 광고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포도, 특히 피노 느와에 있는 페로몬은 유난히 인간의 성(性) 페로몬과 흡사하다고 한다. 피노 느와에서 느낄 수 있는 냄새들 즉, 매콤함이랄지 흙이나 야생동물 또는 볏짚 같은 것들에서 나는 냄새가 테스토스테론이라고 불리는 남성의 기본적인 체취와 유사한 냄새라는 것이다. 새로 만든 참나무통 속에서 숙성되었을 때 맡을 수 있는 나무냄새와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은 테스토스테론과 유사하다. 이것이 참나무통에서 깊게 숙성된 와인이 왜 전 세계적인 열광을 받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썩은 것 같은 바닐라와 나무냄새가 풍기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유명해진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의 기본적인 냄새라면(여성에게서는 아주 조금만 생성된다) 여성의 냄새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미국 의사인 존 아무어가 개최한 ‘인간의 후각에 관한 세미나’에서는 여성의 기본적인 냄새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트리에틸아민(Triethylamine)과 이소발레르산(Isovaleric acid)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생선이나 치즈냄새 같다는 뜻이다. 생선 냄새는 와인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소발레르산 같은 것은 어떤 와인에서나 특히 발포성 와인과 치즈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2005년 연합뉴스 기사에는 여성들이 배란기에는 무의식적으로 강한 남성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되었다. 체코 프라하의 연구진이 48명의 남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지배적인지를 스스로 판단해보라고 주문한 뒤 겨드랑이에 면으로 된 솜을 24시간 동안 끼고 있게 했다. 그리고 65명의 여자들 앞에 그 솜을 내놓고 냄새의 강도와 성적 매력, 남성성을 평가해보게 했더니 배란기에 있는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지배적이라고 평가한 남성들의 냄새를 가장 섹시하다고 답했다. 배란기 중인 여성들, 특히 평소에 성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들일 경우 그러한 답변이 두드러졌고 배란기가 아닌 여성들에게서는 그런 패턴을 발견할 수 없었다. 반대로 배란기가 아닐 때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적절한 다른 조건의 남성을 선호했다.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의 닉 니브 박사도 사람의 체취나 페로몬은 남녀 관계에서 매우 복잡한 역할을 한다면서 여자들이 지배적이고 강한 남자에게서 나오는 페로몬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한 잔의 훌륭한 샴페인이나 부르고뉴 와인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다. 만약 한 잔의 와인에서 풍겨 나오는 페로몬 성분의 특징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 와인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성적인 행위 역시 그저 단순한 동물적 행위로만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와인과 성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와인을 지성적으로 즐길 때에 즐거움이 더욱 깊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 지성적이란 이해를 뜻한다. 와인은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서 6월의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걸친 옷을 모두 던져버린 채 완전한 누드가 되어 태양 아래 누워보는 것처럼 온갖 격식과 체면을 던져버리고 아무 선입견이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즐기는 것이 훨씬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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