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제 재구성>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즈음, 노후자금 15억 원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얼마씩 준비해야 한다며 ‘개인연금 마케팅’이 유행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개인연금 유지율은 어느 정도일까요? 딱 51%입니다. 절반이 도중에 해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0년도 유지하지 못한 개인연금,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무리한 주택 구매로 대출 원금을 갚느라 해약했을 수도 있고, 고학년 자녀의 학원비가 부담이 되어 해약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상한 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 해약하고 차를 구매했을 수도 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돈이 필요해 해약했을 수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해약자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10년 가까이 불입하다가 해약했다면 이자는 날리고 본전만 겨우 찾았을 테고, 3년이 되었다면 해약할 때 보험사에서 또 떼어 가 30% 이상 손해를 봤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무리한 연금가입을 종용한 보험 설계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부부와 둘러앉아 훈훈한 분위기에서 합리적으로 재무 상담과 설계를 했지만 계약 후 관리를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고, 고객과 가정이 겪을 불확실성의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을 미리 알 길은 없지만, 보편적인 위험 요인을 예측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고 있는 보험 리모델링이나 상품 판매 중심의 재무 설계 방식은 이러한 위험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TV나 신문에 가끔 소개되는 ‘맞춤 재무 설계’ 사례를 보면 현재 소득과 주거생활비, 교육비는 얼마인데, 변경 후에 보험료와 저축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식입니다. 현재 남은 잉여자금을 갖고 금융상품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는 것이 주요 화두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돈’ 이야기는 있으나 정작 ‘사람’ 이야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분량이나 지면의 제한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어떤 삶의 비전을 가졌는지,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을 대비해서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등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종잣돈을 마련하는 방법이나 대출 전략은 가르쳐주지만, 그 가정에 언제 집이 필요한지, 10년 이상 대출금을 상환할 때 어떤 재무 위험이 생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현재 월수입과 지출을 바탕으로 변경 전과 변경 후만 짚을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가정하는 중·장기 현금 흐름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금 흐름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도 경영 분석을 할 때 ‘현금 흐름 분석’이 필수입니다. 기업의 예상 매출과 손익 분석, 투자 계획을 바탕으로 부채의 상황 가능성을 평가하는 일련의 가정이죠. 가정경제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현금 흐름 분석이 필수입니다.
월간 중·장기 현금 흐름 방식 비교
재무 설계 업계에서 중·장기적인 현금 흐름 분석을 꺼리는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미래의 현금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하거나, 실상 그렇게 예측하고 보여주는 것이 ‘설계를 통한 상품 가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물론 보유 자산의 수익률을 가정해서 미래의 자산 상황을 가정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해당 연도별 수입과 지출의 균형입니다. 연간 총수입에서 연간 총지출을 빼면 연간 수지가 나타나는데, 이 수치는 미래 예상(기대)하는 소득과 생활비, 자녀교육비, 주택담보대출의 상환액 등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경제적인 수준입니다.
흔히 익숙한 월간 수지 분석은 현재 남은 돈(잉여자금)을 가지고 자녀의 대학자금, 노후자금 등 보편적인 목적자금을 설계하는 방식이지만 중·장기 현금 흐름 분석은 경제적인 소득 외에도 가족 구성원이 가진 돈에 대한 태도와 습관, 비전 등 내적인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 삶을 계획하고 다양한 삶의 위험 요소를 대비하는 생애 설계 방식입니다.
다음 ‘중·장기 현금 흐름 분석하기 예시’를 보고, 직접 나의(가정의) ‘중·장기 현금 흐름 예측하기’ 표를 만들어보세요.
중·장기 현금 흐름 분석하기 예시
중·장기 현금 흐름 예측하기
집을 구매하거나 이직, 퇴사 등 재무적 결정에 따른 미래 현금 흐름의 변화 추이를 예상해봅시다. 긴 안목으로 재무 목표의 우선순위와 완급을 조정하고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혼부부라면 당분간 전세대출금을 갚는 것에 집중하면서 출산 후 맞벌이가 가능할 때 저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노후 준비는 빨리할수록 좋다는 말에 변액연금을 무리하게 가입했다가 2년 뒤에 전세가 만기 되었을 때 보증금이 부족해 해약하는 흔한 경우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중년 세대는 남편/아내의 갑작스러운 조기퇴직이나 임금피크제에 대비하여 가정경제 활동을 계획하도록 제안합니다. 갑자기 소득이 줄어도 소비는 쉽게 줄이지 못하기 때문에 중·장기 현금 흐름 분석을 통해 적자로 돌아설 위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미 검소하게 사는 가정은 국민연금, 주택연금 등 공적연금을 통해 기본적인 생활비를 해결하는 안정적인 노후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인생을 길게 볼 때 ‘누가 얼마만큼 오랫동안 현금 흐름을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출을 관리하고 기회비용을 잃지 않도록 재무 목표를 잘 잡고 합리적인 투자로 인생의 다양한 목표를 준비한다면,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보험상품에 가입한다고 해서 가정경제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연금상품에 가입한다고 해서 노후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현금 흐름이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