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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8. 2018

03. 너무 완벽하려 하진 않습니까?

<잠깐 생각 좀 하고 가겠습니다>



#너와 나, 수학처럼

‘수학 천재’

학창시절 나의 별명이다. 수학은 모호함이 없다. 딱 떨어지는 답을 찾아낼 때의 성취감이 좋았다. 인간관계도 수학적으로 풀릴 줄 알았다. 분별력 있게 가려서 만나고,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사람들과 적당히 섞이는 것이 싫었다. 그들이 내 영역으로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불편했다. 그들의 말에 억지 동조하거나 반응해야 하는 부자연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 쟤들이 문방구에서 물건 훔치는 거 봤어요.”

하굣길에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는 급우를 목격하고는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알렸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나는 밀고자가 되었다. 나는 공공의 적이었다.

종례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후에야 가방을 쌌다. 돌아가는 길에 나를 주목하고 있는 무리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목덜미를 잡혀 끌려갈지 모를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지만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을 대하는 경계심과 떨쳐낼 수 없는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말 없는 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이런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캠퍼스에서 나는 ‘이상한 애’로 통했다. 늘 혼자 다니고 혼자 밥을 먹고, 어쩌다 울분이 가시지 않는 일이 있으면 걸어가면서 혼잣말을 해대는 통에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저만치 피해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익숙하지 않은 자리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이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가며 관심을 보여야 하는 그 상황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스물이 되었지만 이런 성격은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연습이 필요해.” 재열이 형이었다.

대꾸도 하지 않던 내게 유일하게 농담을 던진 사람이었는데 학과 사무실 앞 벤치에 앉아 있던 내게 서슴없이 다가왔다. 눈초리를 흘기며 경계의 신호를 보냈지만 능글맞게 옆자리에 턱 하니 걸터앉았다.

“너 그거 알아? 너 엄청 튀어.”

그 말에 눈을 흘기자 웃음으로 막아선 선배는 벤치에서 몸을 돌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너 튄다고. 널 드러내고 싶지 않거든 보통 아이들처럼 행동해. 그게 더 편할걸. 억지로 섞이고 얘기하지 않아도 돼. 얘기하면 들어주고, 애들이 웃으면 따라 웃어줘.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선배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가세요.”
“너 아침에 옥상에서 한번 내려다봐.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누가 누군지 구분이나 되니? 다른 친구들 눈에도 네가 그렇게 보인다고. 너도 평범한 학생 중 한 명으로밖에 안 보여. 네가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고 어려워하는 거 아는데, 예민하게 굴수록 네가 힘들어지잖아. 누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면 하나쯤은 쓰고 살아.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너 말고 너를 지킬 가면 하나쯤 써도 돼. 멍청아, 순진해 빠져가지고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다르지 않다고? 평범하다고? 뭐지 제멋대로인 이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선배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자 초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타인의 계절을 보내면서도 나의 계절은 겨울뿐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사라진 자리 위로 바람이 불자 언 바닥에 가는 물길 하나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가면을 쓰고 나도 그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여전히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지만, 이미 작은 희망 하나가 움트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울다가 웃다가. ‘아,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또 울다가 웃다가 한다.

“완벽하려 하지 마세요.
솔직한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민낯을 드러낼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적당히 꾸미고 자신을 숨겨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린 조금씩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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