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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8. 2018

01. 맥아더상 수상자와 창의력

<천재들의 생각 수업>



‘안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창의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상을 수상하게 되셨습니다. 
이 상으로 이제 당신은 향후 5년간 어떠한 조건도 없이 수십만 달러를 받으실 겁니다.’
 
이 책의 기획은 신문의 단 한 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장난스러운 시작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집에서 뭔가를 고심하고 있을 때 이런 전화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안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창의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상을 수상하게 되셨습니다. 이 상으로 이제 당신은 향후 5년간 어떠한 조건도 없이 수십만 달러를 받으실 겁니다.’ ”나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그 기사는 놀라웠다. 5년 동안 매년 3만에서 7만 달러라니! 몇몇 운 좋은 사람들은 이 돈으로 여생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상은 지원서도 필요 없고 어떤 후속 조치나 책임도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특권이다. 
  
지속적으로 체크 수표가 우편함에 놓이는데 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거나, 예금하거나, 혹은 그 순간 화가 나서 찢어버리거나, 이건 온전히 당신의 결정이다. 이 수표를 어떻게 사용하든 설명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처음 내가 맥아더상에 끌렸던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특권 때문이었다. 맥아더상을 받음으로써 거기에 따른 경제적인 여유, 시간이라는 선물, 유명세를 즐길 수 있는 특권 말이다. 맥아더상을 받게 되면 그 길고도 험난했던 시간들,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 같은 고통, 이 모든 것들을 이제는 뒤로할 수 있다. 
  
맥아더상을 받게 되면 지지와 축하의 메시지를 담은 전화가 끊임없이 울릴 것이다. 자유, 돈, 시간, 선택, 확인 등 이 모든 것들은 애초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훨씬 더 흥미로운 것, 더 인내해야 하는 것, 더 중요하고 폭발적인 것이 놓여 있다. 
  
그것은 창의력 그 자체에 대한 아이디어, 창조 본능(creative impulse)에 대한 발화이다. 인간의 가장 창조적인 순간을 통해, 바퀴나 나사, 재봉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문화적 진보 같은 창조적 결과물이 나왔다. 창의적인 성취를 통해 우리는 인권의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창의력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각자의 독특한 천재성에 불을 지피는 게 가능할까? 나는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이 이야기는 존 D. 맥아더라는 이름의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는 돈을 버는 탁월한 재주를 가진 영웅으로 평가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러 면에서 조잡하고, 품위 없고, 논란거리가 많은 구두쇠로 여겨진다. 그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광적인 복음 전도사였던 그의 아버지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지옥불의 연기로 가득하다고 봤는데 특히나 일곱 명의 자식들 중 막내인 존에게 그런 모습이 많다고 생각했다. 열혈 복음주의자인 존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방랑하는 무일푼의 삶을 강요했다. 집에서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사탄의 화염에 휩싸일 수 있는지, 또는 식초에 담근 가죽끈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존의 아버지는 푼돈을 벌어 와서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음식을 나누어 주는 위인이었다.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수중의 쌈짓돈을 절약해서 아이들에게 베풀었다. 어머니는 존이 14살 때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에 그의 형들 중 오직 한 명에게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애정과 시간을 쏟으셨다. 오로지 그 아이만이 자신이 사랑했던 문화적이고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삶을 공유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비춰 보면, 존 D. 맥아더는 뭔가를 이룰만한 기회가 분명 적었다. 8학년 중퇴, 실패한 기자, 캐나다 공군에 입대한지 두 달 만에 훈련 도중 세 대의 비행기와 끔찍하게 충돌한 이력의 비행조종사, 군 복무 중 탈영한 탈영병, 세 번의 사업 실패, 대여섯 개의 정부기관이 줄기차게 쫓았던 허접한 인간, 소송을 즐거운 스포츠라 떠벌리며 동시에 최대 3천5백 건의 소송을 당한 사람, 외동아들 로드릭과 오랫동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불화에 휩싸인 아버지…. 그에 관한 이런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그의 인생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존은 궁핍했던 38살에 35달러를 빌려 당시 무너져가는 시카고 보험회사인 뱅커스 라이프 앤 캐쥬얼티(Bankers life & Casualty Co.)를 인수한다. 그리고 경제 대공황이 끝나갈 무렵 한 달에 1달러로 보장을 받는 보험을 우편으로 판매하기 시작하고, 8년 후 처음으로 100만 달러를 벌게 된다. 1978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할 당시 존은 미국에서 두 번째 부자였는데 이는 아마도 가장 적은 돈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부였을 것이다. 그는 항상 이등석을 타고 다녔고, 옆 승객이 먹다 남긴 샌드위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으며, 먹다 남은 샐러드를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다. 또한 반쯤 피운 담배를 아껴두고, 생일 케이크를 매년 재활용하기 위해 조각으로 나눠 냉동 보관했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뻔뻔한 사업가였던 그는 자신이 소유한 팜비치 가든 호텔의 지저분한 커피숍 탁자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여러분들은 아마 존이 약 42,000에이커의 부동산이 딸려 있는 그 호텔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팬트하우스 스위트룸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와 두 번째 부인인 캐서린, 두 마리 푸들 강아지와 함께 주차장이 보이는 평범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과장이든 아니든, 존의 전기에서 상투적인 문구가 되었을 정도로 자주 회자되는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비범한 사업가 기질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 사망 당시 뱅커스 라이프 앤 캐쥬얼티 회사의 모든 주식이 그의 소유였다. 당시 이 회사는 상해보험회사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였다. 존은 또한 플로리다에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고 호화로운 PGA골프장과클럽하우스를 자산으로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여러 곳에 동산과 부동산을 소유했다. 시카고와 신시내티에도 막대한 재산이 있었고, 아리조나, 일리노이, 조지아, 콜로라도, 미시간에도 농지와 목장지대를 소유했다.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에 해양구조대, 뉴욕에 음반회사, 뉴멕시코에 유정, 위스콘신에 리조트를 두었고, 서독과 아르헨티나 등지에 부동산, 식당, 비행기, 리무진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평소 정부 관료를 무시했던 성향이 있었던 존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25억 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제국’을 그와 부인의 이름을 건 재단 설립에 쾌척했다. 당시 이 재단은 포드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재단이었다. 이 재산과 함께 그는 보험회사 임원진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을 남겨 두었다. “나는 돈을 버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여러분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좋은 교육은 받았지만,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의 대담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괴짜로 소문난 그가 거대한 자선사업을 남겨둔 모순, 그리고 의지가 강한 폭군인 그가 관리에 관해 어떤 지시사항도 남기지 않고 재단을 만든 아이러니에 관해 궁금해 한다. 맥아더상(상으로 prize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award나 fellowship이라고 도불린다. 이는 이 상의 성격이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후원하는 의미 두 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은 재단이 하는 수많은 사업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상에 책정된 금액은 한 해에 대략 900만 달러 정도로 재단 전체 1년 지출의 10%도 안 된다. 해석은 여러 가지겠지만 처음 이 상의 아이디어는 툴레인대학의 조지 버치 박사의 사례에서 시작되었다. 조지 박사는 지식에 실로 경이로운 진보를 가져다줄 연구를 위한 지원을 받기 위해 애를 썼지만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5년간 존 D. 맥아더의 변호사였던 월리엄 T. 커비는 재단 설립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이를 다듬었으며, 존의 아들 로드릭은 이 일에 열정적이었다. 로드릭 자신도 그의 아버지만큼이나 독특한 괴짜이며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였다. 
  
하지만 아버지 존과 달리 로드릭은 낭만적이고 예술적이며 비전 또한 있었다. 로드릭은 미국 사회에서 자선사업의 역할이란 모험이 필요하고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정치와 사회사업은 무관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는 ‘개성이 강한 천재들’이 있다고 확고하게 믿었기에, 이 프로그램이 시작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일했다. 결국 이 사업은 만장일치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고 1981년 6월 첫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드디어 맥아더 장학금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아쉽게도 로드릭은 몇 년 후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사업이 얼마나 훌륭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미처 보지 못했다. 맥아더상이 수여되는 방식은 이러하다. 재단 관계자가 여러분에게 다가올 뿐 여러분이 재단에 지원할 수는 없다.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 전역에서 특별히 임명된 추천자 그룹에서 추천을 받는 것이다. 대략 100명에서 1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에 후보를 추천한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익명으로 일하기 때문에 추천자들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모은다. 그리고 후보 선정의 다음 단계를 위해 이 정보를 재단 직원에게 제출한다. 이 상은 희귀본 제본, 공예술, 기후학, 결정학, 국제안보와 무기규제, 유전학 등 특정 분야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희극 배우도 이 상을 받았다. 다만 경쟁력, 창의적 잠재력 외에 별도의 규정이 있다. 미국 시민권자이거나 영주권자여야 한다는 것과 선출직 또는 지명직 공무원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한 후보자에 대한 다양한 잠재력을 평가한 파일이 어느 정도 쌓였다면 이사진에 의해 선임된 선발위원회에 그 파일을 보낸다. 매달 열리는 선발위원회의 비밀 모임은 마치 전반적인 모든 것을 토론하는 대학원생 세미나 같다. 이 모임에서 격렬하게 토론하고 악의 없는 불평들을 늘어놓는다. 1년에 한두 차례, 새로운 수상자에 대한 최종합의가 이루어지면, 특정한 날짜 없이 수상자를 발표한다. 이 상이 나오자마자 언론에서는 머리기사로 이 상을 소개하면서 ‘천재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재단과 대부분의 수상자에게는 거슬리는 지나치게 화려한 표현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이 상의 목적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상의 가치는 재능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창의적 사고를 도약시켜 주는 데 있다.



또한 이상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일에 다시 몰두할 수 있게 하고, 추상적으로 보이는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하며 심지어 자신의 분야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인이 된 로드릭은 종종 말했다. “과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기 위해지원금 신청서를 쓸 수 있었을까?” “메디치 가문처럼, 우리는 미래의 미켈란젤로를 후원할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위대한 예술품을 만든다면, 이 모험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나는 이 상이 인간의 본능이 가진 숭고한 가치와 높은 의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데 강한 흥미를 느꼈다. 이 기이하고도 색다른 상이 주는 호기심으로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무식하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나는 창조 본능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알아내고 싶었다. 이런 창조 본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창의적일까? 창의성은 키울 수 있는 걸까? 이러한 질문은 아주 오래전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질문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창의력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어디서부터 살펴봐야 할까? 과학, 예술, 철학을 아주 깊이 있게 고찰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그물을 너무 넓게 쳐서 방향을 잃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는 꼴이 되기 쉽다. 또한 단어의 정의에 관한 문제도 있다. 창의력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창의력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독창성’, ‘발명’, 그리고 ‘상상력’ 같은 단어에 기댄 사전적 정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1875년에서야 ‘창의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다른 사전에서도 이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았더니 파일 한가득 찾을 수 있었다. 
  
창의적인 천재란 자신의 일상보다는 자신의 일에서 더 영리한 사람이다. 창의력이란, 문제를 비틀어 볼 수 있는 능력이며 창의적인 사람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즐기는 사람이다. 창의적인 기업은 놀랍도록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다. 수플레를 잘 굽는 일부터 시작해서 승산 있는 주식 포트폴리오를 짜는 일까지 무엇이든 잘하는 것에 우리는 공경의 의미를 담아 ‘창의적인’이라는 말을 쓴다. 창의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뭔가 다른 걸 본다. 
  
창의적인 행동은 보잘것없는 부분들을 이용해서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전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의력’은 표현하기에는 뜻이 너무 많아 제대로 나타내기 힘든 개념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창의적인 결과물을 알아낼 수 있을까? 창의력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접근했던 아주 오래된 방식은 사람들이 창의적이라고 널리 여기는 아이디어나 결과물을 보고 과연 그러한 것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창의적일까? 대표적으로 18세기 셰익스피어는 작품이 세련되지 못하므로 작가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19세기 바흐의 음악은 딱딱하고 영혼이 메말라 있다고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에디슨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고, 제임스 조이스는 조롱을 받았다. 인상주의자들은 모욕을 당했고 그들의 작품은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사람들의 취향은 변하고 존경의 대상은 그때그때 다르다. 한정된 맥아더 수상자들을 통해 창의력의 미스터리를 알아내고자 하는 나의 시도는 맥아더상으로 범주를 좁힘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졌다. 상의 권위와 영향력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나 예술가, 학자나 사업가 등 모든 분야에 맥아더 재단은 상을 수여해 왔다. 맥아더상의 명확한 정의에 관해서 맥아더 재단이 특별하게 고수하는 것은 물론 없다. 창의적 재능을 입증하는 일에 관해서는 선출위원회가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내가 할 일을 덜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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