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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5. 2018

08. 그 나뭇잎, 얼마면 팔래?

<미친 발상법>



쓰레기 팔아
떼돈 버는 마을?

상식이란 18세까지 몸에 익힌 편견의 컬렉션을 가리킨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나뭇잎이 돈이 되는 이유!

지천에 깔린 게 나뭇잎인데 그걸 시장에 내다 판다고? 게다가 그 나뭇잎을 비싼 가격에 사가는 사람이 있다고? 살다 살다 별일을 다보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나뭇잎을 판매해 이익을 내면서 이를 비즈니스로 승화시킨 마을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도쿠시마현 가미카쓰 마을이다. 이른바 ‘나뭇잎 비즈니스’로 인해 일본은 물론 해외 매스컴에서도 주목하면서 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매년 4,000명 이상이 작은 마을을 찾고 있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인 저출산과 고령화를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나뭇잎 비즈니스 담당자는 여성과 고령자로, 그 주역은 마을 할머니들이다.

가미카쓰 마을은 일본의 여느 산촌처럼 젊은이는 모두 직장을 찾아 외지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오지 중의 오지다. 가미카쓰는 시코쿠(四道,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섬)에서도 가장 작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2012년 12월까지 마을 주민 1,701명 가운데 65세 이상의 인구가 절반을 차지할 만큼 고령화가 진행된 이곳은 원래 귤 재배가 번성했던 곳이었으나, 1976년에 몰아닥친 한파로 마을의 귤나무 대부분은 고사했고, 오렌지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주요 수입원마저 사라졌다.

이런 와중에 귤 산업의 대안으로 등장한 게 바로 나뭇잎 비즈니스다. 이 사업은 당시 영농 지도원으로서 가미카쓰 농협에 근무하던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의 제안으로 1987년부터 시작되었다. 요코이시는 현재 나뭇잎 비즈니스 ‘이로도리(彩)’의 대표를 맡고 있다.

‘나뭇잎 비즈니스’란 요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나뭇잎(꽃) 장식, 일명 ‘쓰마모노(妻物)’를 판매하는 걸 말한다. 한마디로 산과 들을 물들이는 각 계절의 나뭇잎과 꽃, 산채 등을 판매하는 농업 비즈니스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사업이 가능했던 걸까? 또한 이런 형태의 사업이 과연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하긴 필자도 어린 시절 서울 사람들이 고향 마을에 널린 감나무 잎과 아카시아 잎을 사간다기에 이게 웬 횡재냐며 포대 가득 잎을 딴 기억이 있긴 하다.

일본 요리는 맛은 물론, 요리를 담아내는 그릇의 색상과 형태, 음식 배열 등 외형의 아름다움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일본 요리는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시각적인 조화를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나뭇잎(꽃) 등으로 장식된 ‘쓰마모노’가 필수적이고, 일본 내엔 이를 거래할 틈새시장이 존재한다.

현재 가미카쓰 마을의 나뭇잎 비즈니스는 30년 가까이 되면서 시장 규모가 2억 6,000만 엔까지 성장해 마을의 주요 산업이 되었고, 그중에 연간 1,000만 엔의 수입을 올리는 할머니도 등장했다. 이곳에서 출하되는 나뭇잎은 일본 쓰마모노 시장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2012년엔 일본에서 나뭇잎 비즈니스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져 공개되기도 했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단행본까지 출간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다!

요코이시 대표가 나뭇잎 비즈니스를 떠올리게 된 배경은 이랬다. 1986년 어느 날, 그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 손님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어머, 이 나뭇잎 귀엽다. 가지고 갈까?”

이때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뭇잎을 판매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각광받는 사업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갖은 난관을 뛰어넘어야 했다. 특히 마을 주민과 고객의 공감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나뭇잎을 팔아 돈을 벌자고 제안했을 때 마을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쓰레기를 주워 팔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 않다”며 요코이시 대표를 비난했다. 그들은 나뭇잎을 상품으로 여기지 않았다.

요코이시 대표는 마을 할머니 몇 명을 어렵게 설득해 1987년 처음 상품을 내놓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당황한 그는 한 요리점 주방장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요리점 현장이 어떤지 알기나 해?
현장도 모르면서 장사는 무슨!”

그때부터 요코이시 대표는 전국 요리점을 돌며 본격적으로 현장을 익혔다. 그는 ‘어떤 나뭇잎 모양이 아름다운가? 이 요리에는 저 모양의 나뭇잎이 어울리지 않을까? 언제쯤 이 나뭇잎이 필요할까?’ 등 다양한 현장 정보를 습득한 후에야 나뭇잎을 조금씩 팔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효율적인 주문 처리를 위해 마을 농가 간 경쟁심을 촉진하는 대책을 세웠다. 각 농가에 고령자 전용 컴퓨터와 산과 들에서도 곧장 일 처리가 가능한 태블릿 PC를 도입했다. 그로 인해 농가별로 하루 매출액 및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농가 할머니들 사이의 경쟁심은 매출액 향상의 자극제가 되었고, 더불어 품질 저하를 막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덕분에 가미카쓰 마을은 IT 활용 모범 사례로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현재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후계자 육성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나뭇잎 비즈니스가 성공했을지라도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져야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마을에선 청년들이 참여하는 인턴십(체험형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00여 명의 청년들이 마을을 찾았고, 20여 명은 아예 이사를 왔다. 그 가운데 일부는 가미가쓰에서 창업을 해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 중이다.

참고로 ‘나뭇잎 판매’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사업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첫째, 계절을 한발 앞선 상품 개발이 가능해야 한다.
주요 소비처인 고급 요리점(요정) ‘쓰마모노’는 계절을 조금 앞질러 간다. 늦여름엔 가을을 연출할 수 있는 빨갛고 노란 단풍잎을, 겨울엔 봄 향기를 가득 뿜어줄 복숭아 잎을 사용한다. 도심 생활로 계절 감각이 무뎌진 손님들에게 계절감이 물씬 풍기는 나뭇잎(쓰마모노)을 보며 식사를 즐기게 하겠다는 요리점의 배려다. 계절에 맞춰 산이나 들에서 수확한 나뭇잎은 (시기를 놓쳐) 상품화가 불가능하다.

결국 계절을 한발 앞질러야 한다는 점과 동시에 나뭇잎(꽃)의 색감과 모양이 아름다워야 한다.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가미카쓰 마을에선 해당 나무를 직접 재배해 수확하고 있다.


둘째, 수요와 공급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나뭇잎 비즈니스는 철저한 틈새산업이라 수요와 공급이 합치될 때 비로소 성립되는 사업이다. 소비자가 은행잎을 원하는 시기에 단풍잎은 별 가치가 없다. 하지만 제때 은행잎이 공급된다면 더욱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쓰마모노’ 자체는 필수품이 아니라 지나치게 비싸면 외면당할 수 있다.

만약 은행잎을 수요 이상으로 공급하면 반대로 가격이 폭락해 공급 농가는 큰 타격을 입는다. 수요와 공급의 절묘한 균형이 시장 성립에 더없이 중요하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시간에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느냐가 목표 매출액 달성의 관건이다.

가미카쓰 마을에선 독자적인 정보 인프라 ‘이로도리 네트워크 시스템’과 각 농가에서 보유한 컴퓨터, 태블릿 PC 등 최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상품을 적절한 양만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셋째, 고용 창출과 부담 없는 작업 환경이 필요하다.
이 사업의 주역은 70~80대 할머니들이다. 중노동으로 알려진 귤 재배에 비해 상품 자체가 경량인 나뭇잎은 고령자들도 다루기 편한 아이템이다. 또한 딱히 수입이 높지 않은 산촌의 고령자들에겐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가미카쓰 마을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고령자 중심의 비즈니스는 고령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가미카쓰 마을의 1인당 의료비는 도쿠시마현에서 가장 적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일이 있으면 그만큼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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