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처럼 대담하라>
건안 5년 봄 정월, 동승(董承) 등의 모반 사실이 누설돼 연루자 모두 죄를 자백하고 형벌을 순순히 받아 죽는 복주(伏誅)를 당했다. 조조가 친히 동정(東征)에 나서 유비를 치려고 하자 여러 장수가 말했다.
“공과 천하를 다투는 자는 원소입니다. 지금 그는 바야흐로 쳐들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를 버려둔 채 동쪽으로 갔다가 그가 뒤에서 퇴로를 차단하면 어찌하려는 것입니까?”
조조가 말했다.
“무릇 유비는 인걸(人傑)이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 근심이 될 것이오. 원소는 비록 대지(大志)를 품고 있으나 형세 판단이 늦어 틀림없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_ 『삼국지』 「위서, 무제기」
의견을 경청하여 판단하고 다시 확인하라.
건안 5년인 200년 정월, 조조를 암살하고자 하는 음모가 발각되었다. 주모자 동승(董承)의 딸은 한헌제의 귀인(貴人)으로 있었다. 조조는 동승을 죽이면서 동귀인 또한 주살하고자 했다. 동귀인은 이때 임신 중이었다. 한헌제가 동귀인을 구할 생각으로 조조에게 여러 번 사면을 청했으나 조조가 이를 듣지 않았다. 마침내 동승과 동귀빈이 주살되자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됐다. 그러나 조조는 늘 암살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여포와 원소 중에 누굴 먼저 칠 것인가?
사방에 조조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당시 조조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두 명의 숙적이 있었다. 북쪽의 원소와 동쪽의 여포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이들의 군사가 휘두르는 창칼에 목이 달아나게 될 운명이었다. 조조가 모든 움직임과 책략을 이들 두 숙적을 없애는 데 집중시킨 이유다. 남쪽으로 장수를 쳐 후방의 위험을 없애고 동쪽으로 원술을 토벌한 것도 이들이 서로 협력해 협공을 가하는 위험을 미리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당시 상황에서 원소와 여포 가운데 누구를 먼저 치는 것이 옳았을까? 당시 원소는 기주를 비롯한 4개 주를 보유한 것만 믿고 내심 황제의 명에 불복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황제의 명은 형식일 뿐 사실 조조의 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소는 조조가 제1차로 장수(張繡)의 정벌에 나섰다가 완성(宛城)에서 패하고 돌아오자 더욱 오만해졌다. 이는 조조가 회군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원소가 조조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조는 크게 분노했다. 그 또한 사람인지라 순간 냉정함을 잃고 여포와 원소 중 어느 쪽을 먼저 쳐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때 곽가가 여포를 먼저 칠 것을 건의했다. 순욱도 원소가 비록 강하나 곧바로 군사를 움직일 염려는 없으니 먼저 여포를 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언했다. 당시 원소와 여포는 조조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협공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곽가와 순욱은 이들의 연합을 우려했다. 조조는 이들의 건의에 따라 애초의 생각대로 먼저 여포를 치기로 했다. 그러나 내심 걱정이 되어 여러 장수를 불러 물었다.
“내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원소가 관중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강족(羌族)과 연결해 난을 일으키고, 남쪽으로 익주의 유장과 형주의 유표를 부추겨 우리 영역을 침범할까 하는 점이오. 그리되면 나는 홀로 연주와 예주를 가지고 천하의 6분의 5와 싸워야 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최후의 결과’를 항상 염두에 둔다.
- 선택으로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
- 당장 급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최종 목표를 기억하며 멀리 보라.
먼 곳과는 손을 잡고 가까운 곳은 공격하라!
순욱이 건의했다.
“관중의 장수는 겨우 10여 명에 불과하고 서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인데 오직 한수와 마등만이 강력합니다. 그들은 전쟁이 나면 반드시 각자 군사를 거느리고 지켜볼 것입니다. 지금 은덕을 베풀어 그들을 다독이고 사자를 보내 강화를 맺으면 공이 산동을 안정시킬 때까지는 변치 않을 것입니다.”
조조가 이를 받아들였다. 여포를 토벌하기 위한 유화책을 먼저 구사하다가 강경책으로 선회하는 선약후강(先弱後强)과 먼 곳과 손을 잡고 가까운 곳을 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기본 방침을 수립한 배경이다. 당시 조조는 기본 방침이 정해지자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여포를 포획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그가 전개한 작전을 시간대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먼저 관중을 안무하고 나섰다.
먼저 종요를 장안으로 보내 한수와 마등을 설득하게 했다. 종요가 조조의 서신을 보이며 설득하자 마등과 한수가 각기 자기 아들을 허현으로 보냈는데, 이는 사실 일종의 인질이었다. 그러나 마등과 한수는 이를 전혀 눈치 못했다.
둘째, 원소를 안심시켰다.
조조는 원소에게 최고의 관직을 수여하고 영예를 부여했다. 이는 적에게 약한 것으로 내비쳐 화해를 구함으로써 원소를 태만하게 만들려는 책략이었다. 이때 조조는 하북 쪽을 향해 조그마한 군사적 움직임도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는 원소가 마음 놓고 공손찬을 공격하게 하여 자신의 배후를 칠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셋째, 본격적으로 여포의 내부를 와해시키고 나섰다.
건안 3년인 198년 봄에 원술이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여포는 돌연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원술와 통교하고자 했다. 이때 진규가 아들 진등을 조조에게 사자로 보내려 하자 여포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마침 조조가 여포를 좌장군에 임명하자 여포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진등을 사은사(謝恩使)로 삼고는 자신을 서주목으로 임명키를 청하는 서신 한 통을 조조에게 전하게 했다. 진등은 조조를 만나서 여포를 용맹만 있고 꾀가 없는 데다가 믿기 힘든 인물로 비난하면서 속히 그를 제거하라고 촉구했다. 조조가 진규 부자를 불러 은밀히 세력을 규합해 장차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포는 진등의 말을 사실로 믿고 조조에 대해 아무런 방비도 취하지 않았다.
넷째, 조조는 여포의 힘을 소진한 뒤 고립무원의 상태로 몰아갔다.
이는 여포와 원술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결과였다. 여포는 원술을 격파하면서 적잖은 병력을 소모했다. 더 큰 문제는 장차 자신의 원군이 될 수도 있는 원술군을 격파함으로써 스스로 고립무원의 상태를 조성한 것이다. 이때 조조는 여포의 잠재적인 지원세력인
유비를 원술 및 여포와 대치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 조조는 유비를 예주목으로 천거해 여포를 치게 하였다. 유비가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여포는 잇단 싸움으로 힘을 크게 소진하게 됐다.
이 모든 작업이 은밀히 진행됐다. 원소는 물론 마등과 한수, 여포, 유비 모두 조조가 장차 여포를 치기 위해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군웅이 모두 조조의 은밀한 작전에 말려든 셈이다.
건안 3년 9월, 조조는 마침내 군사들을 이끌고 여포 토벌에 나섰다. 이때 여러 장수가 입을 모아 건의했다.
“유표와 장수가 뒤에 있는데 여포를 치게 되면 반드시 위기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순유가 단호한 어조로 조조의 결단을 지지하고 나섰다.
“유표와 장수는 이번에 격파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여포가 반기를 든 지 얼마 안 된 시기를 틈타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그에게 귀의하지 않은 것을 이용하면 가히 여포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결국, 조조는 여포 토벌에 나선 지 불과 석 달 만에 숙적 중의 하나인 여포를 제거하는 쾌거를 이뤘다. 본래 여포는 서주와 회하 사이에 웅거하며 남쪽으로 원술과 연결되고, 북쪽으로 원소와 통하고 있었던 까닭에 제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조조는 은밀한 행보로 군웅들을 모두 착각에 빠뜨려 여포를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뒤 최후의 일격을 가해 드디어 제거한 것이다.
조조의 여포 토벌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의 용병술이다. 조조는 여포를 치면서 전선을 길게 펴지 않고 한 곳에 집중시켰다. 조조는 지금의 하남성 회양에서 출병해 유비와 합세한 후 곧바로 여포의 근거지인 팽성을 함몰시켰다. 이어 진등을 선봉으로 삼아 여포를 하비성 안으로 몰아넣고는 군사들이 하비에 이르자 성 둘레에 참호를 판 뒤 기수와 사수의 물을 끌어들여 성안으로 흘려보냈다. 구원병도 없는 상황에서 식량마저 떨어지게 되자 여포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당시 형주의 유표와 강동의 손책, 익주의 유장, 농서의 한수와 장로 등이 있었으나 이들의 세력은 원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아가 조조가 원소와 결전을 벌이게 되면 중립을 취할 가능성이 컸다. 조조는 여포의 제거로 순식간에 장강 이북의 양주·서주·연주·예주 등 4개 주를 모두 손에 넣고 기주·청주·유주·병주 등 4개 주를 옹유하고 있는 원소와 하북의 패권을 놓고 결전을 벌일 수 있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결국, 원소를 굴복시키고 하북 일대를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