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처럼 대담하라>
건안 4년 당시 원소는 공손찬을 제압한 덕분에 황하 이북의 청주와 기주와 유주 및 병주 등의 4주에서 모병한 수십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허도를 치려고 했다. 여러 장수가 이들을 대적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자 조조가 말했다.
“나는 원소라는 위인을 잘 알고 있소. 그는 뜻만 크고 지혜는 부족하며(志大智小) 겉으로 엄하나 속으로 담이 작은(色厲膽薄), 현능한 자를 시기하며 꺾으려 드는 인물이오. 비록 병사는 많지만, 장수들의 역할 분담이 명확지 않고, 장수들 또한 교만해 명령이 일치하지 않고 있소. 비록 토지가 넓고 양식이 풍부하다고는 하나 내게는 마침 우리를 위해 차려놓은 제물쯤으로 여겨지오.”
_ 『삼국지』 「위서, 무제기」
같은 시대 다른 운명의 영웅들
- 손에 다 넣은 천하를 ‘건달 출신’ 유방에게 바친 항우
- 막강한 세력으로도 ‘환관 집안 출신’ 조조에게 무너진 원소
난세의 영웅들은 종국적인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서 우선 큰 뜻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초한전 당시의 항우와 삼국시대의 원소 역시 영웅에 속한다. 큰 뜻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손에 다 넣은 천하를 ‘건달 출신’인 유방에게 고스란히 바쳤고, 원소는 그 막강한 세력으로도 ‘환관 집안 출신’인 조조에 의해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뜻만 컸을 뿐 지혜가 부족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조조가 「무제기」에서 뜻만 크고 지혜는 부족한 원소의 지대지소(志大智小)를 통렬하게 꾸짖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지러운 시대에 세상을 공략하려면 반드시 ‘큰 뜻(大志)’ 위에 ‘큰 지혜(大智)’를 겸비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원소가 끝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환관 집안 출신인 조조에게 패해 피를 토하며 죽었다. 명문가 출신 항우는 시골의 건달 출신 유방에게 손에 넣은 천하 강산을 고스란히 바치면서 후대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조조와 유방은 ‘뜻’과 ‘지혜’를 겸비했고, 원소와 항우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변화무쌍한 21세기 세계 경제 위기상황에서는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조가 생전에 보여준 일련의 리더십이 그 정수에 해당한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때는 전쟁터의 장수처럼 매사를 신속히 결단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결단이 늦어지고, 선택과 결단의 중요한 때를 놓치면 조금 위험하던 사안도 심각한 사태로 변한다. 패망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 / 중국 한나라 출신 사상가, 진시황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했을 정도로 재능과 생각이 뛰어났다. 한비자는 리더에게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 한비자만큼 인간의 속성을 파악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는 사람관리법에 통달한 사상가는 없었다.
제갈량이 죽기 직전에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올린 글에서 반드시 『한비자』와 『손자병법』 등을 숙독할 것을 권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진수는 정사 『삼국지』에서 조조를 당대 최고의 전략가로 꼽았다. 『한비자』의 술치술(術治術)과 『상군서』의 법치술(法治術), 『손자병법』의 무치술(武治術)을 통달했다고 평가했다.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속마음을 냉철히 통찰하라.
- 이해관계를 명확히 읽어 의도를 파악하라.
- 상대의 태도를 변화시켜 이해관계를 구분하라.
- ‘관계’를 배제하고 ‘이해’를 중심으로 사고하라.
객관적으로 볼 때 진수가 지적했듯이 조조는 전국시대 말기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의 사상적 제자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는 위기 상황에서 온몸을 내던져 돌파하라고 주문했다. 한비자는 모든 인간관계를 이해관계로 파악했다. 부모·자식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가깝다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이해관계가 얽히면 다른 셈법을 하기 마련이다. 『한비자』 「내저설 하」에 이를 경계하는 일화가 나온다.
하루는 위(衛)나라에 사는 어떤 부부가 기도를 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저희가 공짜로 삼베 오백 필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남편이 힐난했다.
“어찌 그리 적은가?”
부인이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앞으로 첩을 사들일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부부관계는 부모·자식처럼 혈육으로 맺어진 게 아니다. 자식을 둘지라도 그 점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한비자』 「설림 상」에도 유사한 일화가 나온다. 하루는 위나라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이같이 가르쳤다.
“반드시 사적으로 재산을 모아 두도록 해라.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됐다가 내쫓기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죽을 때까지 해로하는 것은 요행이다.”
딸이 부친의 말에 따라 은밀히 돈을 모았다. 시어미가 며느리의 개인 재산이 많다고 생각해 내쫓았다. 자식이 친정으로 돌아왔을 때의 재산이 시집갈 때 갖고 간 것의 갑절이나 된 것을 보고 그 아비가 크게 좋아했다. 딸이 소박을 맞았는데도 재산이 늘어난 것만을 좋아하는 천박한 모습에 한비자는 이같이 질타했다.
“아비는 딸을 잘못 가르친 데 대해서는 전혀 죄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총명해서 재산을 늘렸다고 생각했다. 지금 관직에 있는 자들 모두 이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다.”
군주에게 아첨하며 지극히 충성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관원들의 가증스러운 모습을 통렬히 지적한 것이다. 『한비자』 「비내」는 초나라의 역사서인 『도올춘추(檮杌春秋)』를 인용해 이같이 경고했다.
“군주가 병으로 죽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비명횡사가 절반 이상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부인이나 자식이 개입한 경우가 많다. 본인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지적이다.
“후비(后妃)와 부인, 적자로서 태자가 된 자들 가운데 간혹 군주의 조기 서거를 바라는 자가 있다. 부부는 골육의 정이 없다. 사랑하면 가깝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멀어진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어미가 사랑스러우면 그 자식도 품에 안아준다.’고 했다. 반대로 뒤집으면 ‘어미가 미우면 그 자식도 버린다.’는 얘기가 된다. 후비나 부인, 태자가 무리를 이루며 군주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군주가 죽지 않으면 세력이 클 수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군주를 증오해서가 아니라 군주가 죽어야 이익을 볼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군주는 평소 자신이 죽었을 때 이익을 볼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남자는 50이 되어도 호색하고, 여자는 30이 되면 미모가 쇠한다.
부부 역시 늘 서로를 배려하며 자상한 마음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부관계 역시 이해관계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비내」에서 이같이 충고했다.
“남자는 나이 50세가 되어도 호색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고 여자는 나이 30세가 되면 미모가 쇠한다. 미모가 쇠한 부인이 호색하는 군주를 섬기면 그 자신이 내몰릴까 염려하고, 천시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자식이 보위를 잇지 못할까 염려한다. 후비와 부인들이 군주를 독살하거나, 은밀하게 목을 졸라 죽이거나 목을 베는 이유다. 군주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을 사람이 많을수록 군주는 위험해진다!”
부모·자식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실례로 춘추시대중엽 초성왕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애초 초성왕은 태자 상신을 내쫓은 뒤 서자인 왕자 직을 태자로 삼고자 했다. 태자가 모반할까 우려한 그는 먼저 태자를 제거할 구실을 이리저리 찾기 시작했다. 이내 궁중에서는 초성왕이 태자를 미워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상신이 스승인 반숭을 찾아가 물었다.
“요즘 대왕이 나를 태자 자리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오. 불안해서 잠을 못 잘 지경이오.”
“우선 그 소문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찌하면 그것을 알아낼 수 있겠소”
“대왕의 여동생으로 강나라로 출가한 고모 강미가 친정인 초나라로 온 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직 강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강미가 이 소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연회를 베풀어 고모를 초대하도록 하십시오. 이후 고모가 오거든 고의로 불경스런 태도를 보이십시오. 그러면 성미가 급한 고모가 화를 내며 뭐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인은 화를 내면 바른말을 하는 법입니다.”
상신이 곧 연회를 베풀어 고모 강미를 청했다. 그는 강미에게 술 석 잔을 바친 뒤 문득 태도를 바꿔 시종 대신 주방장을 불러 강미를 시중들게 했다. 강미가 말을 걸어도 못들은 체하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강미가 크게 화를 냈다.
“참으로 천하기 그지없구나. 군왕이 너를 죽이고 왕자 직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강미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곧바로 수레를 타고 가버렸다. 상신이 반숭을 찾아갔다.
“소문이 사실이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태자는 능히 직을 왕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그리할 수 없소.”
“그러면 외국으로 도망갈 수 있습니까?”
“그리할 수 없소.”
“그러면 큰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
“해낼 수 있소.”
이해관계는 부자지간도 원수로 만든다.
상신이 마침내 야음을 틈타 태자궁을 지키는 시위 군사들을 이끌고 가 초성왕이 머무는 왕궁을 포위하자 반숭이 칼을 들고 장사들과 함께 궁 안으로 들어가 초성왕을 깨웠다. 초성왕은 매우 놀랐다.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대왕이 왕위에 있은 지 이미 37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물러갈 때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새 왕을 모시고자 합니다. 보위를 태자에게 전하고 자진토록 하십시오.”
초성왕이 말했다.
“그리하겠다. 내가 조금 전에 주방에 명해 곰 발바닥을 삶아오도록 명했으니 그것이나 먹은 뒤 죽으면 원이 없겠다.”
본래 곰 발바닥은 삶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성왕은 이 틈을 타 태자 상신에게 반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반숭과 상신은 초성왕의 속셈을 읽고 이를 허락지 않았다. 결국, 초성왕은 포위된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아 끝내 스스로 목을 매어 자진하고 말았다.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부자지간에도 원수가 되는 것은 다반사다. 21세기라고 크게 달라졌을 리 없다. 현실의 역사는 결국 승자의 편이다. 원소가 조조에게 패한 뒤 ‘뜻은 커도 얕은 지혜’의 조롱 대상이 되고, 조조가 승리를 거둔 뒤 이와 반대되는 ‘큰 뜻과 큰 지혜’의 화신으로 칭송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타계한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곰팡이 핀 빵에서 페니실린이 만들어지듯, 누구나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큰 꿈을 꼭 추구하라고 강조하면서도 자신과 주변 관리의 중요성을 이렇게 지적했다.
“당신의 진을 빼는 것은 올라야 할 산의 높이가 아니라 구두 속의 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