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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4. 2016

00.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연재 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 젤로>

과학과 영혼을 추구한 두 거장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인문학의 발전으로 중세와의 단절이 이루어졌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인문학이 가능했던 것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 시인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가 일찍이 고전에 대한 이해에 앞장섰고 인간의 지식 전반에 걸친 성찰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는 인문학의 발달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술에 있어 르네상스는 과학의 정신을 가진 레오나르도와 순수예술론을 가진 미켈란젤로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적하자면 우선 레오나르도는 정신보다는 물질이 근본이라고 생각한 유물론자이며 미래가 아주 밝다고 생각한 낙천주의자이다. 미켈란젤로는 이상주의자로 물질을 하찮게 여기고 물질에 앞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형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정신만을 귀하게 여겼으므로 매우 진지하며 고독한 사람이었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경멸했다. 두 사람의 이런 본질적 상이함은 작품에도 자연히 나타났다. 미켈란젤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체를 통해 순수하고 영원한 영혼의 모습을 관람자가 볼 수 있기를 바란 데 반해 레오나르도는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여러 종류의 인간이 사는 세계를 확인시켜주려고 했다. 레오나르도가 현실주의자라면 미켈란젤로는 환영에 사로잡힌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 부분, 1478~80년경 _이 두 작품은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개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려고 한 레오나르도는 광야에서 종교적 시련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제롬의 고난을 신앙의 승리로 보기보다는 거룩한 체험에 지친 혼으로 표현하였다. 성자에 대한 허상적 이미지를 배척하고 성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뇌의 늪에서는 지친 모습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 <로마 피에타> 부분, 1498~9 _미켈란젤로에게는 레오나르도와 달리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 없었다. 그는 명상을 통해 환영의 세계를 관조하면서 최상의 즐거움을 종교적 희열에 두었다. 현실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고 지고의 신앙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을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천국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이러한 신앙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레오나르도에게는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있었다. 그는 전통적 도상이나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지식과 믿음을 배척하고 논리적·분석적인 해석과 판단을 통해 과거의 오류에 대한 반성을 요구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예로들면 그는 전통적인 도상을 무시하고 야만 시대의 종말과 이성 시대가 열리는 역사적 분기점을 표현하려 했다. 제목이 성서적이고 성모자의 모습이라서 종교화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당시의 신학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이다. 

철학과 문학의 요람에서 교육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당시에도 난해한 단테의 『신곡』을 해설할 정도로 박식했지만, 학문에 치우친 협소한 시각을 가졌다. 그는 일찍이 시각적 현상과 기교에서는 독보적인 면을 과시했지만 내용에서는 전통을 받아들였다. <로마 피에타>를 예로 들면 대리석을 밀가루 반죽 다루듯 쉽게 사실주의 방법으로 표현했고,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신의 어머니이자 딸로서 품위를 지키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청순하고 우아한 자태로 표현하는 놀라운 기교를 시위했지만 이는 당시의 신학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인체와 영혼에만 집착할 뿐 그 외의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레오나르도는 목욕탕 구조에서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복지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골고루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형태를 알기 위해서 해부를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알기 위해 해부하고 심근경색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을 밝혀냈다. 

레오나르도는 멋진 옷을 입고 오늘날의 스포츠카에 해당하는 값비싼 말을 탔다. 손수 악기를 만들고 작곡과 연주를 하면서 풍류를 즐겼다. 그는 인생을 즐겁게 살기를 바랐고 물질이 주는 풍요로움을 즐겼다. 중세적인 도덕관에 젖어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명성이 드높아 많은 돈을 벌었지만 물질이 주는 풍요로움에 빠지는 것을 죄라고 여겨 검소하게 생활했다. 레오나르도는 상류사회에 접근하여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미켈란젤로는 현세의 안락보다는 내세의 영생을 소망했기에 일찍이 자신이 속했던 상류사회를 벗어났다. 미켈란젤로는 거의 아흔 해를 사는 장수의 복을 누렸지만 인생이 길어지면 죄를 더 많이 짓게 된다고 보고 스스로 염세주의의 짐을 졌다. 그의 삶은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삶과 같았다. 

두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레오나르도는 미래의 사람이고 미켈란젤로는 과거에 속한 사람이다. 레오나르도의 언행에는 경박함이 있었지만 유쾌한 사람이었고 비관적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했다. 또한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발명가로서 분주한 생을 살았다. 그는 인체도 기계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슨다고 생각했으므로 늙어서도 끊임없이 드로잉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겼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과거 철학자와 신학자의 사상에 심취해서 언행에 신중을 기했으며 많은 작업을 피하고 자신이 맡은 작업에는 완벽을 기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고상한 생각을 정해놓고 작업했으므로 늘 작품에 불만이 많았다. 따라서 근심이 많고 우울했으며 자책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지나치게 형이상학을 신뢰한 그가 나중에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생을 마쳤고 동성연애자로 알려졌다. 동성애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폭넓게 이루어졌다. 발랄한 성격의 레오나르도는 동성애로 기소당한 적이 있고 주변에 잘생긴 젊은이들이 있었으며 그들과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행동에 앞서 사고하는 기질의 미켈란젤로도 동성애자로 알려졌지만 단서가 될 만한 행동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의 삶은 닫혀 있었고 가문과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꺼려했다. 레오나르도는 엄청난 양의 글을 남겼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열린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미켈란젤로가 남긴 수많은 편지와 시는 모두 철학적인 내용이라서 그의 정신세계를 아는 데는 좋은 자료가 되지 않았다. 그의 구체적인 생활상은 알려지지 않아 후세 사람들에게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나이차가 스물세 살이나 되다 보니 레오나르도가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미켈란젤로가 아직 예술의 세계에 발을 내딛지 않았을 때였다. 피렌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피렌체에 돌아와 잠시 머문 적은 있지만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그곳에 뼈를 묻었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와 로마에서 주로 활약했으므로 두 사람의 삶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겹쳐지는 때가 별로 없어 두 사람을 한 환경 안에 두고 책을 구성하기는 힘든 일이다. 자연히 이 책의 후반은 레오나르도의 사망 후 미켈란젤로의 남은 45년의 활동으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을 한 쌍으로 묶은 이유는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르네상스라는 지평 위로 떠오른 별들이라는 데 있다. 이 두 별이 길을 내고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를 환하게 밝혔으므로 뒤이어 라파엘로와 티치아노라는 또 다른 별들이 떠오를 수 있었다. 

르네상스 운동은 이탈리아의 부흥에 그치지 않고 유럽 전역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서양미술의 기본 패러다임이 되어 5백 년을 존속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몇 점의 작품만으로 르네상스를 논한다거나, 미켈란젤로의 우울하고 심각한 작품만으로는 미술의 재탄생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경외하는 미켈란젤로의 진지함이 레오나르도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과학에 근거해서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려 한 레오나르도의 행위가 미켈란젤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준다. 근대가 요구한 것은 둘 모두였다. 두 사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물질문명의 발전만이 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성찰하고 부덕한 행동을 금하는 데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저자 l 김광우

저자 김광우는 뉴욕 시티컬리지와 포담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예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많은 예술을 접하면서 현대미술과 비평에 관심을 가져왔다. 뉴욕미술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가와 친구들 시리즈를 소개하는 1997년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인 미술비평과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가 소개하는 작가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갈등하며 거기서 피어난 작품 이야기를 담고 있어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저서로 대가와 친구들 『폴록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 『뒤샹과 친구들』을 비롯하여 『백남준 VS 앤디 워홀』, 『프랑스미술 500년』,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가 있다.

역서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와 『앤디 워홀 타임캡슐』, 『컨템퍼러리 아트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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