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4일
에피파니의 날, 2025년 7월 14일 월요일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결정적 순간'이 있다. 2025년 7월 14일, 나는 작가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작가 승인 메일을 받은 순간은 내 인생에 있어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었다. '작가'라는 단어는 아직 조금 낯설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게 내 이름 옆에 그 단어를 놓아본다.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을 '에피파니(Epiphany)'라고 표현했다. 어디서 본 것도, 누구의 권유도 아닌, 어느 날 문득 야구 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고 느꼈던 그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세상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먼저 감지한 신호. 그것이 하루키의 소설가로서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축하 파티를 한 것도 아니고, 축하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이도 없다. 그저 '작가 승인'이라는 메일 한 통을 받았고, '안녕하세요, 작가님!'이라는 설레는 호칭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가슴 어딘가 몽글거리는 느낌이었고, 마음은 조금 더 반짝였다. '그래, 이젠 나도 써도 되겠구나'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나를 붙들고 있던 건 ‘허락되지 않은 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감히 작가라고 불릴 수 없을 거란 의심, 누군가에게 보일 글을 쓸 자격은 없다는 자기 검열.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자격으로 시작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키의 말처럼, 그것은 아주 사적인 결정이고, 세상이 아닌 내가 나에게 내리는 허락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브런치 '작가 승인'이라는 허락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한 번의 도전으로 받은 그 작은 허락 덕분에 좀 더 자신감이 생긴 느낌이다.
‘에피파니’라는 말의 어원은 신이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뜻한다. 인간의 시야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한순간 찬란히 드러나는, 그 빛의 시간. 오늘 내가 경험한 것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었는지 모른다. 세상 밖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던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마침내 나를 향해 얼굴을 드러낸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작가'라는 이름 앞에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시작은 작고 조용하지만, 모든 길은 그렇게 열리는 법이니까. 브런치 작가 승인 소감문을 이렇게나 거창하게 쓰는 것도 어쩌면 나름의 다짐인 셈이다. 이제 읽는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걸 수 있는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오늘, 나의 에피파니는 시작되었다.
언젠가 이 시작점을 이야기하게 될 날이 오겠지.
내 작가의 길은, 어쩌면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