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 부부는 크고 작은 이슈를 헤쳐 나아가며 2025년 상반기를 보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어두운 터널을 씩씩하게 걸어나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저 터널 끝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며 우직하고 씩씩하게.
그런 와중에 최근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면 바로 북꿈이네 오픈 톡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재테크 하는 신혼부부의 블로그인만큼 주식, 부동산, 공모주 등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들어와주고 있다.
앞으로 재테크와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서로 물린 종목과 앞으로 물릴 종목을 이야기하며 도란도란 눈물 흘리는 그런 공간, 비자금 조성하다 와이프한테 걸린 사람들이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래서 이름을 [북꿈이네 재테크 반상회]로 지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오픈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와주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오는 분들마다 인사를 건네본다.
[18층 새댁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닉네임 뜻이 궁금하다.
정말로 아파트 18층에 살고 있는 사람인걸까.
아님 특정 주식 18층에 물려있는 사람인걸까.
일면식도 없는 익명의 새댁이지만 왠지 내적 친밀감이 느껴진다.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져본다.
비밀이 많은 그녀.
괜한 것을 물어봤나 보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다.
.
.
.
[뀨우님이 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분이 입장하고,
다짜고짜 삼성전자는 언제쯤 오르게 될지 묻는다.
그걸 알면 나도 벌써 부자가 됐을 텐데.
뀨우님의 다급한 말투와 한숨이 인상적이다. 주식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 이번에도 내적 친밀도가 확 상승한다.
이때다 싶어 뀨우님은 삼성전자 몇 층에서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봐본다.
그녀들은 비밀이 참 많다.
내적 친밀도가 높다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아찔하다. 나는 솔로 영식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안이 벙벙하네.
.
.
.
[복꿈님이 들어왔습니다.]
하다못해 이제는 사칭범도 들어온다.
복꿈 볶음 별게 다 나온다.
아.
이렇게 놀림받을라고 만든 거 아닌데.
진짜 이러다 김치북꿈 오징어북꿈 다 나올 기세.
오징어북꿈은 좀 그렇네.
다리 꼬고 발을 까딱까딱.
무언가에 집중할 때 나오는 와이프 특유의 자세. 다행인 것은 최근 와이프의 쇼핑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창때는 현관 앞 공용 공간에 쌓인 택배 때문에 싱크홀까지 생길 뻔했었는데.
그녀가 요즘 집중하는 것은 무엇일까.
슬그머니 다가가 뭐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별거 없다.
유튜브 숏츠를 빠르게 넘겨가며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와이프에게 요즘 나의 근황을 브리핑해 본다.
"여보, 내가 요즘 북꿈이네 오픈톡방을 한 번 만들어 봤거든? 근데 벌써 150명 정도가 들어왔다? 대박이지."
와이프가 별 관심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렇네~ 대박이네~"
"그런데 여기 사람들 좀 웃겨. 복꿈도 있고 볶음도 있어. 그리고 다들 비밀이.."
와이프가 신이 나서 떠드는 내 말을 단칼에 자르고, 근엄하게 한 마디 한다.
"북꿈아, 나 지금 이거 보잖아.. 자꾸 말 거니까 집중이 안 돼."
며칠 뒤.
와이프에게 카톡이 하나 온다.
"여보 여보, 저번에 뭐 카톡 방 같은 거 만들었다 했었지? 회사 동생이 거기 들어가 있더라? 아까 같이 있다가 얼떨결에 봤어ㅋㅋㅋ"
며칠 전 내 말을 집중해서 듣진 않았어도 듣긴 들었나보다. 내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와이프 회사 동생이 내 톡방에 들어와있다고?
이런. 가끔 내 블로그를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잠입을 한 거지.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하나다.
"아 진짜? 닉네임은 뭐야? 닉네임 못 봤어?"
아쉽게도 닉네임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와이프에게 다음번에는 꼭 닉네임을 알아와주길 부탁해 본다.
"닉네임은 왜? 나중에 아는 척하고 잘 해주려고~?"
아니.
프락치를 남겨둘 순 없지.
5월의 어느 주말 이른 아침.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최근 들어 주말마다 비가 내리는 듯하다. 5월 중순이 되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다.
"카톡"
내 핸드폰과 와이프 핸드폰에서 동시에 카톡 알람이 울린다. 일심동체 부부는 카톡도 동시에 오는구나.
핸드폰을 집으려는 찰나, 옆에 있는 와이프 핸드폰의 미리보기 화면이 눈에 띈다.
저 범생이처럼 생긴 오타쿠 캐릭터..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설마..
와이프가 내 톡 방에 들어와있다고?
오싹한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고, 아직 자고 있는 와이프 몰래 핸드폰을 열어 카톡방에 들어가 본다.
닉네임 뀨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검색 기능을 이용해 닉네임 뀨우의 활동 내역을 살펴본다.
들어오자마자 삼성전자 언제 오르냐고 닦달을 했던 그 비밀 많은 여자.
그 여자가 와이프였다니.
그때 물어본 그 삼성전자가 우리 삼성전자였다니.
더 소름이 돋는 것은 저 이야기를 나눈 시점은 톡 방을 만든 직후였다는 것. 그렇다면 저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이나서 비자금 얘기라도 나누며 낄낄거렸으면 모든 사유재산을 몰수당했을 것이다. 아찔하다.
며칠 전 회사 동생이 들어와있다는 이야기로 내 반응을 살피며 혼자 속으로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이 악성 프락치를 가만둘 수 없다. 맘 같아서는 인민재판을 받게 하고 싶지만 조용히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와이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서둘러 회사로 출근을 하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행동을 개시한다.
그렇게 와이프는 민간인 1호 강퇴 대상자가 되었다.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Feat. 아직 프락치 한 명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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