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은 자신의 근기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네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가르침이 허공 가득히 비처럼 내리고
중생은 자신의 근기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네" (의상대사)
신라 '의상대사'께서 화엄경 80권의 가르침을 210자의 시로 요약한 '법성게(法性偈)'의 구절이다. 두 번째 줄의 '근기'는 '그릇(器)'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과 이익이라도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 담긴다는 의미다.
김천 직지사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조그만 문이 보인다. 문을 나서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미로 모양의 돌담이 펼쳐진다. 돌담의 높이는 무릎정도다. 돌담 입구에 새겨진 의상대사의 시를 한 번 읊고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금방 읽은 구절들이 머리에 새록새록 새겨지면서 나는 생각에 빠졌다.
미로 밖에서 볼 때는 길을 잃을 것 같아서 겁나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길이 보인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헤매지 않고 어느 순간 탈출한다. 이 길의 또 다른 특징은 돌아가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삶이 그렇다. 길 안에 들어가면 길이 보이고, 한 번 들어선 인생은 물러날 곳이 없다.
직지사에 2박 3일 머무는 동안 나는 미로를 세 번 걸었다. 걷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 머문 구절은 '나의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내 그릇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의 이익이 넘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조금 모자란 듯이, 손해 보는 듯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돌고 돌았다.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찾아간 직지사는 부산에서 멀지 않았다. 자동차로 2시간 반 정도 결렸다. 시내와도 멀지 않았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내는 근처를 한 바퀴 돌고, 나는 나무 그늘 아래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주차장 근처 식당의 비빔밥이 별미였다. 아내는 매달 오자고 했다.
직지사는 숙박시설도 최신식이었다. 방마다 선풍기와 에어컨, 샤워실이 완비되었다. 템플스테이 팀장은 화엄사 다음으로 가장 맛있는 식사가 제공된다고 자랑했다. 무, 배추, 나물이 매 끼니마다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다. 나는 마지막 점심식사를 마치고 공양주 보살에게 맛있게 잘 먹고 간다, 고 인사드렸다.
아무리 채식이 좋아도 고기가 땡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집에 오기 하루 전, 아내에게 삼겹살을 주문해 두었다. 딸은 '치킨 먹고 싶어서 담 넘은 건 아니지'하고 놀렸다.
직지사에는 보물이 여러 개 있다. 앞마당에 있는 3층 석탑, 대웅전 안에 삼존불 탱화, 석조여래좌상 등이 있지만, 비로전에 있는 천불상이 인상 깊었다. 조선 효종 7년(1656년) '경잠 스님'이 시작해 정조 8년(1784년)에 천불을 봉안했다. 경주 옥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천 개의 불상 표정이 다 다르다.
화엄사, 완주 송광사에 이어서 올해 템플스테이 사찰로 직지사를 가게 된 이유는 아내 때문이다. 저녁 요가를 마친 아내에게 유튜브 알고리즘은 KBS 다큐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스님이 되기 위한 수업과정을 촬영한 내용이었다. 삼천배, 만 배를 하면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졸음을 참지 못하는 교육생에게 죽비가 내리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이 사찰의 고요함 속에 화면을 채웠다. 어느 순간 슬그머니 나도 소파에 앉아 보게 되었다. 아내가 말했다.
직지사에서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었다네 !
일 년에 한 번 가는 템플스테이를 올해는 두 번 가볼까 한다. 절이 만든 고요함 속에서 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가 물결처럼 밀려나는 느낌이 좋았다.
템플스테이 팀장이 안동 '봉정사'를 추천했다. 거기에 2년 정도 팀장으로 있었다고 한다. 경치도 좋고 산세도 좋단다. 팀장과 차를 한 잔 하게 되었다. 퇴직하면 절에 오란다. 최저 임금에 휴가도 준단다.
거사님이나 되어 볼까?
D-546일
<이틀 동안 아침마다 한 시간 동안 앉아있던 곳>
<비로전의 천불상>
<의상대사의 '법성게'>
<대웅전에서 바라 본 직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