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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Dec 05. 2024

내일을 위한 내 일 찾기

강사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오늘 참석하신 분 중에 퇴직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내용을 교육생에게 공유해 주실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주십시오.”

“(일동 조용)”     


  나는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퇴직 후 ‘내 일을 찾기’ 위해 기술경영학 과정에 진학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경험과 20년 넘게 꾸준히 독서와 독후감 쓰기를 해오면서 쌓은 노하우를 집필하여 출판사와 계약한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학위는 당장 쓸 일이 없고 책은 2년 전에 계약만 하고 진척된 사항이 없으니, 그냥 다짐에 불과한 것처럼 들릴 수 있을까 봐 나는 주저하였다. 시간은 흐르고 교육생 중, 누구도 자신의 퇴직 설계 사례를 발표하지 못하고 첫 시간 수업은 끝났다.      


2023년 2월, 공무원연금공단(이하 ‘공단’이라고 한다.)이 주관하는 ‘은퇴설계교육’(7차) 과정을 신청할 때, 내 마음은 어수선했다. ‘2년 10개월 지나면 공로 연수에 들어가야 하는데…. 직장에 다니는 동안 뭐라도 일거리를 찾아둬야 하는데….’ 나는 아직 손에 잡히는 게 없어서 조바심이 났다. 휴대전화기에 퇴직일에 맞춰 ‘D 데이’ 기능을 설정해 두었다. 매일 숫자를 확인하면서 ‘무엇이든 준비해야지’ 마음먹었지만, 세월만 보낸 셈이다. 공단에서 시행하는 교육 공문을 발견하고 재빨리 신청했다.     


  나는 퇴직 후, 강사를 하고 싶었다. 나는 독서경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독서 방법’을 주제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 강연장에서 청중과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면서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겠는가? 나의 바람과는 달리, 공단 교육 오기 전만 해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교육 첫날 ‘은퇴 설계의 필요성’이라는 수업에서 강사님의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사님은 연단에 서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알려줬다. 첫 번째는 학위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강의 분야의 저서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는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 조건을 내게 적용하면 한 가지는 이루었지만, 나머지는 어중간한 수준이었다. 천안상록리조트에서 교육받은 4일은 나의 퇴직 설계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박사학위 취득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퇴직을 염두에 두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위를 취득하는 일이었다. 요즘은 박사학위도 흔한 자격으로 인식되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력직 채용 공고를 보면 ‘박사학위 소지자’라고 명시된 조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행히 석사 학위는 가지고 있었던 터라 공부할 분야와 대학을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  

   

진학을 고민하던 시기에 나는 시청에서 연구개발사업 지원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기술개발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때마침 지방 국립대학교에서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개설했다. 박사학위 주제를 먼저 정하고 공부를 시작하면 빠르게 학위를 취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관련 보고서와 논문을 미리 읽기 시작했다. 책 읽고 요약하는 훈련을 20년 넘게 해온 터라 빠르게 사전학습이 가능했다. 주제는 지역 대학의 연구개발이 제품개발로 연결되는 ‘기술사업화’ 분야로 정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 나는 전 헤비급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떠올랐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얻어맞기 전까지는!’ 박사학위는 자신감만으로 덤빌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50대 초반에 시작된 박사학위 공부는 얼마 남지 않는 나의 젊음을 소진시켰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삐걱거렸다. 논문 속 깨알 같은 글자 때문에 한 시간만 글을 읽어도 눈물이 났다. 토요일은 늘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과제 발표를 준비한 탓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고난은 계속되었다. 내가 학회에 제출한 논문은 연거푸 거절당했다. ‘난 원래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좌절감은 자기 의심으로 증폭되었다. 지도교수가 다시 방향을 잡아준 덕분에 무사히 논문을 게재하고 학위논문 심사도 청구할 수 있었다. 나는 3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의 학위가 ‘기술경영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미미하지만 퇴직 준비를 하는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나는 학위 과정을 통해 공부의 방법을 깨우쳤다. 나의 주장을 위해 사용할 도구, 즉 연구방법론을 익혔다. 1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권 쓴 일은 내게 자신감을 부여하였다. 문장 하나하나를 순전히 내 손과 머리로 써나갔다. 공부에 관심이 있는 후배에게 나는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갈 것을 권한다.  


계약하고 2년 묵혀 둔 출판 계약서를 꺼냈다   

  

  강사가 되기 위한 두 번째 조건, 즉 ‘저서’를 나는 가지지 못했다. 나는 공단 교육 수료 후, 삶의 변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출판계약까지 마치고 나의 책이 없다는 사실에 자책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30대 후반부터 시작한 독서 활동과 독후감 쓰기가 누적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20년 넘게 꾸준히 독서를 할 수 있었던 방법을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여기에 더하여 ‘독서를 시작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서 나의 성공 요인을 독서에서 찾았다. 50여 개의 출판사에 초안을 투고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공단에서 교육받는 2월 말까지 출판사와 추가로 진행된 일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출판사에서 저자에게 계약금까지 지급했는데 방치하지는 않겠지? 아이디어만 받아놓고 그냥 묵혀두는 것은 아닐까? 하기야 은퇴를 앞둔 지방공무원이 독서와 관련된 책을 썼다고 해서 누가 돈을 주고 사서 읽겠는가,라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은퇴 설계 교육을 다녀오고 나서 마음을 다잡았다. 먼저 출판사에 연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었으니 도서 홍보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부추겼다. 나만의 독서 카드 작성법을 특허로 출원했다, 는 소식도 알렸다. ‘특허독서법’이라는 브랜드로 홍보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나의 서기관 승진 소식도 알렸다. 팀장에서 부서장이 되었으니 관계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몇 번의 적극적인 구애(?) 끝에 드디어 출판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반기부터 콘셉트를 가다듬고 제목 선정을 시작했다. 원고 수정작업을 거듭했다. 디자인도 나왔다. 공단 교육을 다녀온 2023년 12월,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RHK)라는 책이 서점에 진열되었다.   

  

나를 알리는 일의 수고로움     


  책이 출판된 후, 신문에 기사도 나고 TV와 라디오 방송 인터뷰가 몇 건 이어지면서 조금씩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강연 문의도 이어졌다. 출판과 동시에 저자에 관한 관심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거라고 나는 예상했다. 나만의 채널, 즉 나를 알리는 소통창구가 필요했다. 나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주목했다.       

채널만 개설해 두고 띄엄띄엄 영상을 올렸던 유튜브에 정기적으로 독후감을 편집해서 올렸다. 인스타그램에도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나만의 독창적인 특허독서법을 시각화시켜 게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진심으로 책 이야기를 쏟아내면 구독자가 알아주겠지! 착각이었다. 

    

구독자 수는 ‘한여름 가뭄에 콩 나듯’ 증가했다. 얼마 전 딸이 내게 핀잔을 주었다. ‘매일 한두 명 늘었다가 줄어들기도 하는 구독자 숫자를 외우고 다니는 사람은 아빠가 유일할 거야!’ 언젠가는 나도 일천 명의 구독자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쉬지 않고 메마른 땅에 물을 대고 있다.     


찬란한 내일을 위한 내 일’ 찾기      


  올해(2024년) 상반기에는 공단에서 시행하는 ‘금융전문’ 과정 교육을 다녀왔다. ‘당신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평소 아내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이번 교육을 통해서 개념을 챙겼다. 퇴직 후 돈의 흐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실천이 가능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 나의 최종 목표는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공단 교육을 계기로 강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갖추었으니 본격적으로 강연을 해볼 계획이다. 나의 강점을 강조하는 강연 마케팅도 해야겠다. 아직 명함이 있을 때 부지런히 다녀 볼 계획이다. 퇴직 준비를 하면서 내가 배운 교훈은 ‘퇴직하면 하자’고 미루면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다.     


최근에는 노인센터에서 ‘시니어를 위한 책 읽기와 글쓰기’ 강연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며칠 전, 지역 대학병원에서 독서경영을 컨설팅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기업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독서교육을 시행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독서와 관련된 창의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보겠다.     


공단 교육을 마치고 나서 퇴직 준비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시청 내 퇴직준비 모임을 만들었다. 명칭은 ‘Senior Life Campus(약칭 ’SnL캠퍼스‘)’다. 자체적으로 가입비와 회비를 내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퇴직 후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자발적 모임이다. 지금은 15명이지만 향후 더 많은 인원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한다. 혼자 하는 퇴직 준비보다는 함께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고 믿는다.     


  가끔 나의 책을 사서 서명을 해 달라는 분이 있다.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문장은 ‘The best has yet to come!’이다. 아직 최고의 날(The best)은 오지 않았다, 는 의미다. 나의 찬란한 내일을 위한 ‘내 일’ 찾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는 65세부터 70세 사이에 나의 ‘최고의 날’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도 공무원연금공단 교육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첫 수업에 나도 당당하게 손을 들어 ‘허 과장의 은퇴 설계 사례’를 공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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