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한다.
봄엔 벚꽃이 피는 곳을 찾아가고 가을엔 바다가 보고 싶어 드라이브한다.
"엄만 왜 운전하는 걸 좋아해?"
운전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딸이 내게 묻는다.
언제부터 였을까?
처음 운전을 배우고 장거리 운전으로는 주말에 시댁에 가는 길이었다. 추월도 하지 못하는 1차선에서 난 40km로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게 아니라 차를 가지고 걷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운전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엔 너무나도 두려웠다.
여러 번의 접촉사고와 새 차를 뽑자마자 주차장에서 운전석을 들이 받은 적도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어두워져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공허하고 스산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땐 차 안에서 음악을 틀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들어갔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어느날,
답답한 마음에 바다가 보고 싶어서 지인에게 부산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보고 무작정 차를 가지고 나섰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부산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이라고 빨리 차를 돌리라는 말에 휴게소에 차를 세워 물을 사러 갔다.
점원은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그럴까?
차 안에 들어와 룸미러 보는 순간,
운전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마스카라가 잔뜩 눈언저리에 번져있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차 안이었다. 차폐되어 있는 공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 내가 하고 싶은 건 맘대로 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다.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어 울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얼마든지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임형주의 울게 하소서를 크게 틀며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했다. 나의 음역대는 한정이 되어있지만 임형주의 울게 하고서는 내가 원하는 높은 음까지 대신해 주었다.
차 안이 들썩할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힘겨웠던 날들을 버티며 살아내게 해준 드라이브. 외로움의 시간들은 나를 입체적으로 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고독의 터널을 지나온 나는 이제 인생의 본편을 시작한다.
자동차의 유리창은 나만의 스크린이 되고 벚꽃은 발랄한 음악과 함께 바람에 흩날린다
황홀한 나는 창밖으로 손을 뻗어 봄날의 드라이브를 떠난다.
"외로움을 넘어 고독의 터널을 관통한다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에
나오는 문장에서 처럼 결,과 시선을
품은 꽤 넉넉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나 비로소 인생의 본편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
혼자가 혼자에게/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