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와 함께하는 문학여행, 니스 번외 편 01. 에즈
(문학여행 에세이의 니스 편은 끝났다. 하지만, 니스에 머물면서 둘러본 다른 도시들을 살짝 번외 편으로 다뤄본다. )
오늘은 니체의 산책로를 따라가 본다.
젊은 프루스트의 시절, 대표적인 지식인 니체. 유럽의 천재라 불렸던 철학자.
니스에서 출발한 기차가 멈춘다. 멍하니 니스 해변가에서 보내던 나날은, 오 분의 짧은 기차여행도 크나큰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 두근거리며 내려서니, 노란 꽃밭이 화창하게 눈을 밝혔다. 기분 좋은 시작점. 그곳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인적 드문 해안가 찻길이었다. 당황하여 헤매다가 젊은 외국인 둘이 길을 건너 언덕을 오르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지나간 아스팔트 언덕 아래, ‘니체의 길’이라고 적힌 플레이트가 세워져 있었다.
아스팔트는 곧 흙과 바위로 바뀌며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걷기 편하게 인위적으로 정리한 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놔둔 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생긴 듯한 오솔길.
뜨거운 햇살을 등에 맞으며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코발트블루의 하늘이 뒤집혀 푸르름의 무게를 응축하고 있었다. 그곳의 지중해는 니스의 그것과는 다른 선명한 옥색을 보이며 바람에 흔들렸다.
모든 것은 부서지고,
모든 것은 다시 재생된다.
존재의 그 같은 구조는 영원히 창조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삼 권의 한 구절이 길가의 표지판에 영어로도 적혀있었다. 이곳에서 재생의 상징인 바다를 바라보며, 니체의 철학이 탄생한 걸까.
산을 오를수록 울퉁불퉁 경사가 더 가팔라지며 나무가 우거졌다. 고개를 들면, 멀리 마주치는 산기슭. 희고 붉은 암석처럼 드문드문 박힌 집들이 보인다. 누가 저런 곳에 사는 거야, 그런 의문과 함께. 걷고 걷는다. 가파른 산길. 익숙지 않은 산행에 두 개의 폐가 뒤집어지는 기분. 어딘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우물이 나타난다. 정체 모를 우물을 지나며, 이런 경사진 산길인 줄 알았으면, 마실 물 좀 준비했을 텐데, 후회한다. '산책길'이라길래 만만히 여기고 오다니… 도대체 니체는 어떤 체력으로 이런 산길을 일곱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단 말인가.
(사랑에 차인 후, 그런 미친 산책의 결과물이 '차라투스트라...' ...)
검게 그림 자진 우물을 지나쳐 좀 더 오르자 앞에 바리케이드가 막아선다. 거기서 걸음을 멈추면, 사유도 멈추리라… 그런 니체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바싹 마른입을 굳게 닫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빙글 돌아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서자, 조망이 좋은 절벽 모퉁이가 나타난다. 그곳에 하나 있는 벤치에는 중년의 부인이 독서 중이었다.
한 걸음, 절벽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돌리자, 꿈같은 광경이 나타났다.
하얀빛에 둘러싸인 가파른 절벽 위의 정원.
순간, 빛이 가슴속에 고인다.
사라진다.
과거를, 세상을 잊고, 순간의 행복을 마주한다.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니체
이어진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돌아온 현실, 인공의 아스팔트 길 위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니체와 함께한 짧은 듯 긴 산책은 그것으로 끝났다.
덧붙임...
에즈 산책을 마친 니체는 자신이 머무는 니스로 돌아간다. 그는 그렇게 매일 에즈 산책길을 돌아다니며 긴 사유의 산책을 하였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삼 권을 니스에서 쓰기 시작해, 일 년 후 탈고한다.
우울증과 정신이상을 겪던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니체는 초인을 만들고, ‘차라투스트라...’ 를 지필한다. 그리고, 주변 도시 토리노에서 미쳐가며 숨진다.
(예고: 다음 편에는 피츠 제럴드의 흔적을 찾아 앙티베 Antibe로 떠난다.
참고로 본 여행은 2017년 봄에 이뤄졌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 방콕의 답답함을 지난 여행 에세이를 끄적이며 이겨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