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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Nov 17. 2015

책을 가벼이 보기로 했다

사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애먼 책이 쌓여 간다.

책장에도, 식탁 위에 책상 위에도, 티끌 쌓이듯

태블릿에도 착실하게 전자책이 쌓인다.


흘러가는 계절 수의 곱절로 책이 는다.

알라딘이 싸니까, 마침 할인전을 하길래,

표지가 땡겨서, 좋아하는 작가라서,

몇 단락 읽었는데 소장병이 돋아서(!)


읽는 속도는 도무지 쫓아 가질 못한다.

일이 바빠서, 페북 보느라, 팟캐스트 듣고 싶어서,

미드 보느라, 응팔이 재밌어서,

읽는 책이 어렵고 속도가 안 나서....


책이 많아지면 죄책감과 함께 든든해지는 이 이중적인 마음, 높아져 가는 책탑의 주범이다.


나는 숙독자 또는 그 신봉자 중 하나다. 밑줄은 끊임없이 그어대고, 노트에 수집하고, 곱씹고 정리하고 뜯어 삼킨다. 화두로 놓고 언쟁하기도 하고, 사석에서 은근 써먹기도 하고, 글감으로 발표주제로 다루고, 초콜릿 줄 때 좋은 문장 골라 적은 엽서를 같이 껴주고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 그 문장들을 공유할 생각이다;;ㅋㅎ.)

내 노트와 에버노트엔 강박적일만큼 문장들이 박제되어 있다


반면 나는 매섭게 읽어치우는 열독가는 못 된다.

그래서 없는 시간도 패고 쪼개서 책 읽는 고관여 독자가 아니라, 손이 가야, 생각이 나야 비로소 책을 펴드는 보통 사람의 독서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문장 한 문장  받아넘기면서 큰 자양분이 되어 준 책들이 많다. 그 책의 은덕을 몇 년이고 먹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찾아온 정체. 그것은 컨텐츠가 넘쳐나는 인터넷 시대와도 함께 왔고, 내가 사회생활에 내던져져 내 것을 토해내야 하는 시기와도 맞물렸다.


A는 말한다. 쉬운 책을 읽어야 습관이 잘 든다고.
B는 반박한다. 책 한 권을 골라도 좋은 책을 곱씹어 읽어야 한다고.
다시 A는 말한다. 책을 멀리 하느니 뭐라도 읽는 게 낫다고.
또다시 B는 반박한다. 안 읽는 게 나은 책도 있다고.

이 끝없는 논쟁의 초점은 '책'이다.

어떤 책이냐, 모든 책이냐 또는, 독서 습관이냐 의지박약이냐의 싸움이 되어 버렸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는 나름 타당한 이 말 저 말에 휩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나니 답이 좀  분명해진다.


읽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성장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다.


잘 읽히는 책을 감각적으로 잡아 채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책 안에 정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책과 감응하면서 우리 안에 떠오르는 영감에 답이 있기 때문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독자, 그리고 문화적인 인류가 그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들을 짚어보면 대략 이렇지 않을까 싶다.


a. 경쟁 콘텐츠가 너무나 많다, 심지어 독서만이 정답이 아니기도 하다

유튜브만 뒤적여도 좋은 강연, 멋진 세계의 모습들이 쏟아져 나온다. 영상은 책으로 접한 세계보다 생생하고 더 강렬한 경험을 준다. 우리는 그것을 '신서유기', '그래비티' 같은 콘텐츠를 통해 체험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실로 각인된다. '팟캐스트'는 능동적 라디오 청취자를 가능하게 했다. 'TED'는 석학들과 우리를 바로 이어준다.

팟캐스트는 꽤 자리잡은 플랫폼이다


페친 중에 여준영이라는 분이 있다. 현재 프레인이라는 PR에이전시 창업자이자 경영자로 재직하고 계신데, 예전 Hunt라는 블로그(http://prain.com/hunt/)에서부터 현재 페북까지 부지런히 좋은 글을 풀어낸다. 이 분은 독서를 경계하는 타입으로 알고 있다. 활자 그대로는 옮기지 못하지만 '독자는 저자를 넘어설 수 없다, 독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유'라는 주장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무조건 긍정하긴 어렵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건  그분의 글에서 맡을 수 있는 남다른 사유의 냄새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사유의 근육이 형성되면, 독서 중에도 순순히 따라 읽기 보다는 나만의 생각의 갈래가 뻗어나가 버려 독서에 방해를 받는 적이 자주 있다. 독서에 곱게 순종하면 버려질 생각들이지만, 이 생각의 길을 따라가 보면 꽤 좋은 생각, 나만의 생각들로 여무는 경우가 많다. 착한 독자보다 외로운 사유자가 되어 보는 건 '나의 생각'을 묻는 이 시대에 필요한 훈련이다.


b. 환경적으로, 책보다 온라인이 글과 사유에 더 효과적이다

잘 적힌 글들은 정말 쉽게 찾아지고, 심지어 같은 커뮤니티 같은 게시판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쓰는 공간이 열린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검증받는다. 글을 즐겨 쓰는 사람들은 피드백의 중요성을 안다. 꽁꽁 숨겨둔 글이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에, 소통으로 완성시켜야 하는 도구인 것이다.

글 감각이나 생각의 훈련을 책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지난 주말 예능이, 퇴근길의 웹툰이 더 큰 영감과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때문에 SNS는 지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고, '소통과잉'이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는 거고, 소설 <마션>도 탄생할 수 있었다. 블로그에 연재하여, 팬들이 주는 피드백을 바로바로 섭취하면서, 전문지식도 채워나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의 힘으로, 모두의 감각과 지성으로 마크 와트니 박사는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고, 수많은 관객들은 극장으로 몰려 갔다.

너무 걱정 마션...네티즌이 너를 구원하리니..


c. 콘텐츠의 속도가 빨라졌다

생각이 콘텐츠화 되고, 콘텐츠가 반응을 얻고, 진화해서 또 다른 소통의 코드로 연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서적은 인쇄 잉크가 마르자마자 독자의 손에 전해진다 해도 이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물론 서적의 수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양과 스토리텔링, 정보를 관통하는 통찰은 분명 존재한다. 독서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독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책에서 빠르게 취사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가 늘릴 수 없는 재화는 '시간'이므로, 우리는 빨라진 시대에 맞는 섭취를 해야 한다. 이젠 블로그 콘텐츠, 웹툰, SNS의 글들이 거꾸로 책으로 탄생해 베스트셀러 선반을 채우는 시대가 됐다. 빠르게 캐미가 일어나는 가장 나다운 콘텐츠를 소화하면서 나다움을 날카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해진다.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은 나날이 얇아지고 있다. 억지로 삼킬 필요가 없어진다.

조금 얄팍하나마 쉽고 재밌는 공부는 얼마든지 널렸다


'이 많은 책 중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는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다. '내 한정적이고 소중한 시간을 무엇과 보낼 것인가'의 싸움이다. 책은 이제 그 고결한 상아탑에서 내려와 수평적 경쟁에 들어갔다. 이것은 당위성을  무력화시키는 냉정한 현실 그 자체다. 예능보다 재밌는 서사, 다큐보다 예리한 통찰, 블로그보다 깊이 있는 정보로 싸워 이긴 책들만 남을 것이다.


깊이에 대한 논의는 늘 있어왔다. 새로운 매체로 갈수록 그 깊이는 얕아져 간다는 것이다.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만드는, 우리를 웃고 울리는 콘텐츠들을 본다면, 그런 차등을 두는 것이 편견이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어른들은 읽기에 능했을지 몰라도 표현하고 창조하는 데 서툴다. 반면 뉴미디어로 배운 그들은 표현이 풍부하다.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의 간극이 좁다. 과연, 우리가 배운 방식이 우월하다 할 수 있는 걸까.


책이라면 그저 스승으로만 여기던 마음을 잠시 끌러 놓고, 조금은 더 빠르게, 냉정하게, 영악하게 책을 훑어보려 한다. 모든 콘텐츠를 편견 없이 양분을 따져볼 것이다. 나의 시간을 유혹하는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 속에서 이제는 순종적이지 않은 편식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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