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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Apr 07. 2018

화해의 힌트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우연히 3회를 보게 됐는데, 바로 꽂혀서 1회부터 정주행했다. 꽤 단단한 이 드라마가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찾은 이름이 안판석이었다. 밀회에서 말도 안 되는 불륜 커플을 말 되게 그렸던 총연출이 다시 등판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리고 다시 연상 연하 커플 이야기다.

남주여주가 존나 선남선녀인 게 흠이라면 흠


좋은 드라마의 두께

연출의 훌륭함을 구구절절하게 칭찬하고 싶지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드라마는 흔한 드라마들과 달리 주인공의 인적 네트워크를 폭넓게 보여준다. 조연을 단지 병풍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사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이 드러난다.
빠른 전개를 노리는 작위적인 설명 없이도 여유있고 노련한 연출을 통해 우리는 윤진아(손예진)의 직업과 그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엔 어떤 어떤 업무가 있는지, 그 부담감이 어떤 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하루 하루만 들여다 보아도 피곤해져서, '일'이라는 우리 삶의 큰 조각이 어떻게 쉽게 우리 삶을 순간 순간 찌르고 버겁게 헝클어놓는지 알 수 있다. 그 안에 펼쳐지는 우정과 사랑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 수 있다. 왜 이 드라마는 그렇게 남다르게 넓게, 깊이 들어가는 것일까.
이 드라마엔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감당해내는 여성들이 있다. 때론 여자가 여자를 방패로 내세우고 짓밟고 올라서기도 하지만 이 폭력적인 사회에 생존하기 위해 누구는 적응하고, 누구는 회피하고 누구는 저항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돈 간에 집안, 재력을 중심으로 매겨지는 여자의 상품 가치, 직장 내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관문, 군대식 억압 문화에 적응을 할 수 있는지 점치는 시험들. 그렇게 혼기 이후의 여성들은 이 사회에 삐져나온 못처럼 불편한 존재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남자 못지 않게 '힘겹게 생존해내고' 있다. 이것을 꽤 설득력 있게 담아내면서 이 작품은 페미니즘적 요소도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복잡하지 않은 인물 사이에 촘촘하게 정서가 들어선다
클로즈업의 힘

시련과 갈등은 잡초처럼 끊임없이 지독하게 돋아난다. 점주가 파업해서, 회식 2차에 참석하지 않아서, 전남친이 집에 들이닥쳐서, 흉부에 두 개의 미사일이 있어서(;;;), 그 나이 먹도록 시집도 안 가고 있어서, 이사 결재가 펑크나서. 그정도면 꽤 치열하고 선량하게 살고 있는데, 빡치게 구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 전쟁터에서 진아(손예진)와 그녀 절친의 친동생 서준희(정해인)가 로맨스를 시작한다.
전작 밀회에서도 연상 연하 커플, 불륜, 여러가지 말들이 뒤따랐지만, 여성 시청자들이 부지런히 TV 앞을 지킨 게 나이 반토막 만한 어린 남자랑 바람피고 싶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남자들이 김희애 처럼 돈 많고 예쁜 사모님 꼬셔보고 싶어서 본 것도 아니다. 요약해 놓고 읽어 보면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관계가, 어느새 이해가 되어 버리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시청자를 끌고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두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의 무게와 고민 속으로 같이 들어가기 위해 충분히 러닝타임을 쓰는 것이다. 내로남불을 그저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너무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 일어난 일들의 수많은 맥락들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누구나 자신의 일에 단호하지 못한다. 남들은 다 내다보는 비극을 나만 모르고 불나방처럼 말려든다. 감정에 휘말린다. 내게 일어난 모든 과정을 남들도 경험한다면 누가 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들여다 보기를 통해 치유받고 위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안판석의 이런 실험은 성공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남주 연기가 특히 훌륭하다. 자연스럽고 서툴고 멋있음의 황금비율


화해의 힌트일지도 몰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림자만 봐도 짜증나는 사람, 가치관이 너무 다른 연인, 사사건건 충돌하는 가족, 주댕이만 열면 꼰대 냄새가 역겨운 상사, 굽힐 줄 모르고 건방진 후배...내 주변에 한 사람씩 꼽으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정말 힘들때 위로가 되어 줄 사람, 어떤 상황에도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해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의 경계는 그렇게나 자명하고 불변한 것일까? 그 사람이 내게, 혹은 내가 그 사람에게 한 걸음, 반 걸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우리는 진정한 남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만연한 갈등이 있다. 이념, 성, 계층, 세대, 종교 간의 갈등이 있다. 나도 나름 성실하게 질문에 답하면서 대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 속 편하게 결론내면서 살아온 거 같기도 하다. '이만하면 한 만큼 했다'면서. 화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화해답지 못한 화해에 애먹는 사람이 있다면, 파업 점주 집에 온종일 함께 보내면서 작은 일부가 되어 주는 이 예쁜 누나가 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세상의 어떤 사람도, 사람이다

나이드는 여성에 대해 불편하게 정의한 뒤 사회에서 소외시키려 한 게 아니라 그들을 섬세하게 들여다 봄으로써 삐져나온 못이 아닌 또 하나의 생 임을,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인생임을 조명해주었다는 점에서 감탄했다. 컨텐츠를 구상하고 만드는 입장에서 더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내게 그녀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면 그저 단순하게 그들을 불편한 존재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새삼 부끄럽다.
어떻게 그들이라고 행복을 모르겠는가. 사랑을 모르겠는가.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자 사는 사람은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돌아 돌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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