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journalism #22《인권이 없는 직장》
이 책에 나온 사례가 익숙하다면 당신은 한국의 노동자가 맞다. 하지만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부분의 직장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참고 넘어가거나 무엇이 문제인지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동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합리한 노동 행태를 그저 관습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태도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개별 갑을노동의 사건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다. 왜곡된 노동 문화에 매몰돼 ‘학습된 악습’을 답습하는 사람을 악으로 규정해 처벌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갑을 관계가 구조화된 한국 노동 시장의 ‘갑질’의 주체는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노동 문화 자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의 공동 저자도 강력한 규율의 신설을 갑을노동 문제의 최우선 해결책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가 노동은 사람이 하는 일임을 되새기고 인권 보장이 노동이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노동을 규율하는 제도인 노동법에 인권의 가치를 불어넣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유다.
저자들은 불합리한 갑을 관계를 아홉 가지 형태로 분류하고 이를 갑을노동으로 개념화했다. 노동법을 연구하며 현장에서 다룬 실제 사례를 통해 갑을노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두루뭉술한 담론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하는지 날카롭게 지적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의 참고서를 제시하고 있다.
괴롭힘, 상사의 성희롱, 열정 페이, 노동 감시.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갑을노동 문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아직 불거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갑을노동도 이미 노동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선택한 노동으로 고통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올바른 노동’을 말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노동은 무엇인지, 노동을 통해 완성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서재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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