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journalism #16《다시, 을지로》
을지로가 낯설어졌다. 소위 ‘아재’들만 가득하던 노가리 골목엔 언젠가부터 젊은 단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즐길 거리가 넘치는 종로나 광화문을 옆에 두고 굳이 열한 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 을지로를 멀리서 찾아오기도 한다. 죽어 가는 제조업 지역 혹은 오피스타운으로 불리던 을지로는 이제 가장 ‘핫’한 지역이 되었다.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과 달리, 을지로의 풍경은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 소문을 듣고 을지로를 처음 찾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이름난 카페나 식당은 보이지 않고 자재상과 인쇄소, 철공소만 빼곡히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들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몇 번이고 헤맨 후에야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겠다는 듯 숨어 있는 가게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을지로의 모습은 어딜 가나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연남동이나 성수동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즘 뜨는 동네의 트렌드는 낡은 건물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빈티지’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을 활용했다는 공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원래의 용도나 지역성과는 무관한 카페와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어느 동네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비슷한 공간들에서는 다른 공간과 구분되는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오래도록 쌓여 온 ‘장소’로서의 구체적인 경험과 기억은 사라지고 물리적 영역, 즉 ‘공간’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반면, 을지로에 새로이 입주하는 이들은 제조업 상공인들의 세월과 경험, 기억을 존중하며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함께 그려 나간다.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온 ‘오래됨’의 가치를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키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 끌어올 방법을 고민하며 가장 ‘을지로다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장인들의 시간과 청년들의 시간이 얽히면서 만들어 낸 을지로만의 장소성은 을지로를 그 자체로 의미 있게 한다. 동시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에서만의 특별하고 구체적인 기억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다.
밋밋하고 평평한 도시에 싫증 난 사람들이 을지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밀려든다고 이곳만의 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단단하게 지탱해 줄, 을지로만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동네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다.
송수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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