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SNS에서 언러키 스타트업의 리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너무 웃긴단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도 있다.
주인공은 직원이 5명인 스타트업에 다니는 김다정 주임이다.
사장은 박국제라는 매우 '얕고 좁은' 인간이며 김다정과 다른 직원들은 박국제의 변덕과 비위를 맞추느라 직장과 시집살이의 경계를 탄다.
소설은 김다정의 박국제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점철되어 있으며
박국제의 '얕고 좁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갖가지 우아하지 못한 사건들을 해결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스타트업 직원들의 해프닝을 그린다.
언러키 스타트업의 직원들은 박국제를 비웃으면서도 그의 언어 폭력에 썩소를 지으며 인내하거나,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변덕스러운 업무 지시를 "알겠습니다. 근데 사장님. 이렇게 하면 나중에 ~~ 가 되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라며 마치 유치원 교사 차럼 얼르고 달래며 일을 처리한다. 오직 김다정 주임만이 박국제에게 삐딱선을 타거나, 말대꾸를 한다.
악연 같은 박국제와의 인연은 언러키 스타트업 직원이 TV쇼에 출연하면서 끝난다. 이 TV 쇼에서 다정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을 이룬다. 꾹꾹 밟아 누른 울분과 경멸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걸, 다정 자신도 막을 길이 없다. 박국제도 반격을 하지만 김다정이 수만 번은 맘 속으로 리허설했을 그녀의 준비된 멘트엔 속수무책인걸. 뒤늦게 화풀이를 해보지만 사태를 악화시킬 뿐. 이미 언러키 스타트업은 flush를 내린 변기의 물처럼 몰락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정지음 작가의 문체 (writing style)은 직관적이며 요즘스럽다. 마치 '놀라운 토요일'이나 '지구특공대'의 작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통 튀며 팡팡 터진다. 특히 박국제의 pettiness를 묘사하는 대목들이 일품이다. 물 흐르듯 읽었고 책을 덮고도 기분이 좋았다.
밀리의 서재의 한줄평은 너무 재미있다. 책으로 이렇게 웃기기 힘드는데 그걸 해냈네, 술꾼 도시 여자들보다 더 재미있다 등의 칭찬 일색이다 간혹, 씁쓸하다는 독자도 있다.
나는 미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대기업에서도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왠지 급부상한다는 이 회사가 무한한 가능성과 역동성을 가졌을 것 같아 업계 20위 정도의 회사를 선택했다.
제조업을 하던 이 회사는 문어발 식 M&A 를 통해 갑자기 계열사를 22개나 거느리게 되었다. 정보통신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이 계열사에선 유학생을 뽑고, 경쟁사에서 인재를 빼왔다. 회사는 급격히 성장했지만 누구도 정보통신 회사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몰랐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언러키 스타트업과 비슷했다.
1년이 지나자, 나를 비롯한 정보통신 직원들은 이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깔끔한 이력서 서식을 서로 교환하고, 갑작스러운 병가나 집안일을 당한 직원을 서로서로 마크했다. 경쟁사에서 경력직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동기는 경영전략팀의 김 과장을 만났다고도 했다. 우리는 언러키 스타트업의 직원들이었다.
나는 차출되어 본사에 유학생들로 구성된 팀에 배정되었다. 부장, 과장, 사원들 모두 유학생 출신들이다. 그 당시엔 흔치 않은 구성이었다. 부사장 직속팀이라 업무 보고도 부사장에게 직접 했다. 해외 출장도 부사장과 함께 갔다. 이 부사장은 그냥 부사장이 아니었다. 이른바 로열패밀리. 우리 팀의 소위 '끗발'은 굉장했다. 부사장과의 출장에선 롤스로이스를 탔고, 배를 타고 섬에가서 식사를 했으며, 해외기업들이 부사장 옆에 앉고 싶다며 나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나의 과장은 출세욕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런 그에게 유능한 부장은 걸림돌이었을까? 틈만 나면 부장 돌려 까기를 시전 하는 과장이 나는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부장은 부사장의 오른팔인 까닭에 해외 출장이 잦았다. 그의 부재 동안 일어나는 험담과 모함은 내 정신건강을 좀먹어갔다. 나의 과장은 박국제인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박 부장 말이야. 능력도 없으면서 이 프로젝트를 맡은 것, 주제넘은 것 아니야?" 술자리에서 시작된 부장의 험담에 나는 김다정처럼 폭발하고 말았다.
"과장님. 부장님 안 계신 곳에서 험담하시는 것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순간 술자리는 얼어붙었다.
서로 붉어진 얼굴로 파한 회식.
다음날부터 김 과장의 '나' 괴롭히기가 시작되었다. 학교 선배라며 다른 계열사에 있는 나를 빼와 부사장 직속 팀에 꽃 아준 은혜를 상사 들이받기로 갚은 나는 배은망덕 그 자체였으리라. 박국제 저리 가라의 치졸함과 유치함으로 고안한 다양한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난 다시 원래의 계열사로 쫓기듯 돌아갔고, 그 후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짧지만 다소 드라마틱했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났다.
요즘의 직장 문화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직장 내 괴롭힘, 상사의 비 인간적인 처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용 불안정은 직장인들에게 떨칠 수 없는 불편함과 두려움이다.
21세기 김다정의 직장생활은 20세기 나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
22세기가 되어야 달라지려나....
*박사 과정중에 배운 조직관리와 심리학 이론이 바로 바로 이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모두 나의 전 직장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