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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마크 Jul 09. 2023

디테일의 격이 다른 동네서점은 무엇이 다를까?

12년의 내공, 땡스북스의 제안

동네서점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책방들이 있다.

이 책방들은 단순히 지역을 대표하는 동네책방을 넘어 이제는 전국구 서점이 되었다. 마치 대전의 성심당처럼, 여행할 때 꼭 들려야 하는 하나의 코스가 된 곳들.


서울 땡스북스

강원 동아서점, 문우당서림

제주 소리소문, 소심한 책방

통영 봄날의 책방


오늘 이야기할 서점은 12년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땡스북스다.


땡스북스는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이기섭 대표가 운영하는 동네서점이다.


사연을 들려주면 책을 처방해 주는 컨셉을 가진 사적인서점의 정지혜 대표, 아무튼 시리즈의 드럼을 쓴 손정승 작가 또한 땡스북스가 배출한(?) 인물이다.


땡스북스의 시작은 빈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될지 제안해 달라는 클라이언트(건물주)에게 서점을 제안했다가, 직접 서점을 운영해 보라는 클라이언트의 역제안이 지금의 땡스북스를 있게 했다.


땡스북스 앞을 매일 지나쳐 온 사람들이라면, 서점의 풍경이 매월 달라진다는 것은 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시원시원한 통 창 밖으로 보이는 스토리텔링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 마저 땡스북스로 끌어당긴다.


땡스북스의 기획공간은 매달 새로운 주제로 운영되는데 이 공간은 신인 작가, 출판사에게는 독자와의 만남을 연결해 주는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도 작용되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서점 안으로 유도하게 하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매달 새로운 주제로 구성되는 땡스북스의 기획전시 공간


땡스북스는 공간의 디테일도 남다르다.

다양한 책을 제안하는 것만큼 서점의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


책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소비자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또한 서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으로 비유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어떤 앱이나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바로 이탈하지 않고

오랫동안 탐색하고 머무를 수 있게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


땡스북스는 다소 층고가 낮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고 동선이 깔끔하다.


매대를 중앙으로 배치해서 일렬로 정렬했다면 여백이 없어 상당히 답답해 보이고 재미가 없었을 텐데, 오히려 매대를 사선으로 배치함으로써 동선도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시선이 분산되어 층고가 낮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선으로 배치한 매대 덕분에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공간이 재미있어졌다.


보통 카테고리 분류 안내표(에세이, 소설, 여행 등)가 없는 책장에서 책을 볼 때, 품이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 분류가 되었는지 고객 스스로가 추측하고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공통적으로 묶이는 주제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제안한 칸인지 알 수 없어 금방 그 자리를 이탈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땡스북스는 카테고리 분류 안내표가 없지만 어떤 주제로 묶인 칸인지 3권의 책 제목만 봐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책 제목만 봐도 어떤 주제인지 알 수 있도록 쉽게 제안했다.


좌(여행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묶인 책장) / 우(각 칸마다 음식, 계절, 주거 등의 주제로 묶인 책장)


또한 중간중간 책을 옆으로 눕혀두어 책을 찾아보는 사람의 호흡을 조절해 주기도 한다.


빽빽하게 꽂힌 책장은 다소 책을 찾는 게 어렵기도 하고, 뭘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 길을 잃게도 한다.

세로로 꽂아둔 책을 단순히 눕혀뒀을 뿐인데, 약간의 여백으로 잠깐 숨을 고르게 한다.


또한 매대 위에서 아래로 시선이 떨어질 때도 책 정보를 쉽게 확인 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책을 발견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디테일에 감탄을 하며 찬찬히 공간을 뜯어봤다.

책을 눕혀둔 덕분에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에도 책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매년 수많은 동네서점, 독립서점이 생기고 사라지길 반복하는데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중간에는 책바를 마련해 두었는데, 사람들이 서서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가방을 편하게 놓아둘 수도 있고, 책장 앞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동선이 꼬이지 않고 혼잡하지 않도록 동선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


나였다면 앉을자리를 더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텐데, 현재 공간의 컨디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심플하게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역시, 고수들은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쉽게 쉽게 생각한다.)

길게 뻗어있는 책바. 가방을 올려둘 수도 있고, 턱을 괴고 기대어 책을 천천히 음미해 볼 수 있다.


땡스북스는 독립서점이 아닌, 일반 동네서점이기에 독립출판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반 서점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이 다양하고 홍대라는 지역적인 특성에 맞게 책의 주제 또한 광범위하다. 특히 예술 분야의 전문 서적이 눈에 띈다. (영화, 디자인, 그림 등등)


인기 작가의 경우, 신작이 나오면 기존 책들과 함께 연계해서 매대 위에 제안하는 센스도 남다르다. 역시 사람들이 뭘 궁금해할지 너무나도 잘 아는 땡스북스다.


일본 츠타야서점의 최고 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팔지 말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라.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치는 계속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제 오프라인 매장은(서점뿐만 아니라)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절대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날 집 앞으로 내가 주문한 책이 배송되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안을 할 수 있는가가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땡스북스의 제안은 매우 흥미롭다.


12년 동안 책을 찾고, 읽는 사람들을 무수히 관찰해 온 땡스북스의 디테일은 앞으로 또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된다. 부디 이곳이 20년 뒤에도, 30년 뒤에도 온라인에 대체되지 않는 동네서점으로 남아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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