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가 먼저다라는 와타나베 쇼이치의 말이 나에게 훅 들어왔다. 지적인 생활을 위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밤은 엄마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내 삶을 정돈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청각과민증을 의심했던 나는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조용한 정적을 좋아한다. 거실 한쪽에 자리한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의 책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나를 대면하기에는 이만한 물건이 없다. 책상 하나만으로도 나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 공간은 고요하고 진지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책상 앞에 앉는 것은 나에게 급한 일은 아니지만 제법 중요한 일이 되었다. 계속 책을 읽도록 유인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부모다움’에 대해 늘 고민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내면서 불필요한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책은 똑바로 서 있지 못한 나를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멋진 엄마라고 다독여 주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책 읽기는 어느새 ‘나’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해주었다. 어느 날부터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문장과 단어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나의 소소한 기쁨이자 행복이 되었다.
책 속의 섬세함을 발견하는 일은 늘 흥미롭다. 몇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섬세한 필력에 빠져들어 그간의 사소한 걱정들은 잠시 잊는다.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다 보면 취향이 담긴 책을 만난다.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을 낯선 문장도 밤에는 선명하게 다가온다. 거창한 의미를 담지 않아도 나의 감정을 훅 건드려주는 문장을 만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나의 매일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문장 수집을 시작한다. 한 글자 꾹꾹 눌러쓰다 보면 글을 진지하게 대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글로 옮겨 적고 싶은 문장들이 쉽게 눈에 띈다. 글을 적는 동안에는 뒤엉켜 있는 생각들을 잠깐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다.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안내해 준다.
책을 넘기는 이 밤, 나의 지적 생활이 깊어진다.